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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7-03 21:55
모란시장 이야기/ 경기 성남시 전국 쵀대 5일장
 글쓴이 : ilman
조회 : 3,727  
 
모란 시장 이야기

모란시장
오늘은 6월 29일, 간다 간다 별러오던 모란시장 장날이다.
한국콘텐츠창작가협회(KCC) 네 분의 회원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이분들은 송파구 오금동주민센터 컴퓨터 교실에서 매주 만나는 컴퓨터 동화상(動畫像)의 한국 고수(高手)들이다. 여기서 동화상이란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지 사진이나 캠코더로 촬영한 동화상에 각종 기술을 더하여 동화상앨범을 만드는 작업이다.

모란장은 경기도 성남시 성남동 대원천 하류 복개천 위 약 3,300여 평 장터에 서는 전국 최대의 5일장이다.
그런데 왜 ‘장이 열린다.’ 하지 않고 ‘장이 선다.’라고 하는 것일까?
5일 장터에도 붙박이로 열고 있는 상설지장이 있지만, 대개의 농산물전, 어물전, 옷전, 가축전 등과 같은 ‘전(廛)’들은 5일마다 열린다.
그래서 그때마다 천막을 치고 물건을 올려놓을 대를 만들어 세워 놓고 전(廛)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가게를 ‘연다’고 하지 않고 ‘선다’고 하는 것 같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가다가 수서에서 8호선(분당선)으로 갈아타고 4 정거장을 더 가니 모란역이고 그곳이 바로 모란 시장이었다.
평소에는 공영주차장으로 쓰이다가 4일과 9일이 들어가는 날인 매월 4, 9, 14, 19, 24, 29일 5일마다 매월 6번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서는 장이다.
이 모란시장은 1960년대에는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지금의 모란예식장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가 1970년 이후에는 성남시외버스터미널 대로변에 서던 것을 1990년 9월 지금의 장터로 옮겨왔다. 옮겨 올 당시 그곳 상인들과 성남지역 노점상들을 약 850명을 추첨하여 현재의 자리를 배정하였다 한다.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살짝 물어보니 한 달에 15,000원 정도의 저렴한 이용료를 내고 있다고-.

5일장 이야기
‘장(場)’이란 말은 시장(市場)이나 장시(場市)의 준말로 우리들은 이를 일반적으로 시장(市場)이라 한다. 옛 선조들은 이런 장을 ‘시(市), 저자, 시상(市上), 장문(場門)’ 등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이 중 ‘장(場)’은 특정한 시설이 없는 장소에 정기적으로 행상과 주민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말하였다.
열리는 때에 따라 시장의 종류는 ‘정기 시장’(5일장)과 ‘상설 시장’(재래시장, 전문 상가, 백화점) 둘로 나뉜다.
5일장은 물론 5일마다 한 번씩 서는 정기시장이다.
이러한 장(場)은 조선시대 15세기 말부터 전국적으로 개설되기 시작하다가 임진왜란을 지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17세기 후반 무렵에는 10일 장이었던 장시가 오늘날처럼 5일장으로 단일화 되었다.
옛날에 10일장이 5일장으로 단일화된 것은 시대에 따라 인구가 늘어난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만, 5일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은 사람들이 넓은 지역에 드문드문 흩어져 살던 시절이어서 몇몇 사람들을 위해서 동내에 상설시장은 운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군 단위로 3~4군데 정도였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라서 보부상들도 장터로 옮겨 가는데 필요한 시간이 5일 정도였을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던 농수산민들도 자기네가 쓰고 남은 농수산물을 장에 팔러 가지고 나갈 물건도 5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5일장이 생긴 것이다.
이 5일장을 오늘날에는 민속학적인 차원에서 ‘민속장’이라 불러서 이 장도 ‘모란민속장’이라 부른다.

‘모란’의 유래
그런데 모란 시장의 ‘모란’이란 멋있는 이름의 유래는 어디서 온 말인가.
‘모란꽃’에서인가. 아니면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의 시에서 따온 말인가.
대개의 모든 시장 이름은 그 고장의 지명을 따오던데 모란장만은 그 유래가 유별나다.

- 평양 출신의 실향민이던 32세의 김창숙(金昌淑) 예비역 육군대령이 있었다.
제대 후 가난한 제대군인 50여 명과 함께 이 일대에서 황무지 개간 사업을 하였다. 동네가 형성 되자 그분들은 동내 이름을 무어라고 할까 함께 숙의하게 되었다.
당시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 군부가 집권하던 시절이어서 김창숙 씨는 광주군수로 특채되기도 한 분이었다. 그 김창숙 씨가 동료들과 함께 멋지고 알맞는 명칭을 찾다가 1·.4 후퇴 때 이북 평양에 두고 온 그리운 어머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떠오르는 어미 ‘母’(모)와 자와 함께 자기의 고향인 평양 대동강변의 ‘牡蘭峰’(모란봉)이 생각났다. 그래서 '모란'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개척 사업을 함께 한 제대군인들의 생활 여건을 조성해 주기 위해서 1962년경부터 이 부근에 자연적으로 열리던 장을 지금 자리로 옮겨 5일장으로 개설한 것이 오늘날처럼 전국 최대 민속시장으로 자리 매김하게 된 것이다.

모란봉(牡丹峰)은 평양의 북쪽에 있어 평양과 대동강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주봉이 최승대(95m)인 야산이다. 그 산의 모습이 모란꽃과 같다고 하여 모란봉이라고 불렀다는 산이다.
옛날에는 금수강산(錦繡江山) 같이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금수산(錦繡山)’이라 하던 산으로 을밀대, 청류정, 칠성문 등이 있는 고려시대나 청일전쟁 무렵의 평양성을 지키던  북쪽의 요새였다. 을밀대, 청류정, 칠성문 등 고구려 시대 유적이 그 기슭에 있다.
모란봉은 평양과 대동강을 굽어보며 그 기슭 기암절벽인 청류벽 위에 우리의 귀에도 익은 부벽루 등이 진달래, 모란, 무궁화가 대동강 건너편 능라도를 보며 피고 지고 있다.

모란장의 먹거리
수도권의 고추 시세가 결정된다는 곳이 모란장이다. 전국 개고기의 유통의 30%를 취급하는 곳이 모란시장이라 한다.
견공(犬公)에게는 지옥 같은 이 개시장이 이를 혐오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장의 끝 북쪽 측면에 고양이, 염소, 닭, 오골계, 오리 등 조금류(鳥禽類)와 함께 시장을 열고 있다.
2008년 초 수도권을 휩쓸고 지나간 조류 인플루엔자가 모란민속장에서 구입한 조류였다는 것이 추정되면서 모란시장의 위생관계가 문제시 되었다. 그 위생 문제와 시장보다 더 중요한 도로 기능을 위해서 2013년 말까지 이전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이전 장소가 성남시가 마련한 모란시장 인근인 성남동 4784번지 일대 2만2천575㎡ 부지다.

예로부터 장은 단조로운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다 주는 문화의 광장이었다.
장터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나 친지를 만나거나 사돈을 만나 시집간 딸의 안부를 듣던 곳이기도 하던 만남의 광장이요, 신문· 잡지가 없던 시절 각종 정보의 마당이기도 하였다.
사고 팔 물건이 없어도 그냥 장구경이나 하러 장날을 기다리다 찾아오가던 사교의 마당이었다.

그래서 장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먹거리장이다.
우리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입구의 화훼부나 잡곱부, 약초부, 생선부, 야체부는 대충 둘러보고 먹거리장으로 직행하다 보니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 간판이 있다. 우리들은 빨려 들 듯이 그 간판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짜 안주 오리고기 공짜
안주 공짜 막걸리 1잔 2,000원/ 소주 4,000원 1인 1병”

5명이 야외 천막 밑 의자에 앉으니, 1인당 소주 1병씩 “5명×6,000원=3만원”을 내란다.
우리는 소주 1병, 막걸리 4병을 마시며 장터의 반나절을 보내고 있다. 물론 오리고기는 리필이 되었다.
나 혼자였다면 2,000원 주고 막걸리 두어 잔에 공짜 돼지고기 안주해서 더 먹고 싶었지만 우리들의 다음 먹거리는 동동주를 안주한 잔치국수가 되었다.
이때 ‘뻥-’ 한 방 쏘는 호인이 있다. 호주머니로 쏜 갑장 윤경태(?) 님의 호기의 소리였다.

최원익 10-07-04 05:35
 
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머물어 가옵니다 강건하시지요
최길하 10-07-04 11:32
 
어제 뵐줄 알았는데 아쉬웠습니다. 선생님 발품 덕에 선생님 눈도 귀도 입도 마음도 호강! 
저는 그림에 떡. 비는 오고 고추 애호박 숭숭 썰어넣고 빈대떡 붙쳐서 막걸리 한 잔 하면 좋은 날씨군요.
ilman 10-07-04 14:38
 
아아, 어제였군요. 홈 공지사항은 거의 보지 않고 지내와서  서울에서 열리는 줄을 몰랐군요. 아까워라. 삼보가 있었였으면 귀띰을 받았을 터인데. 손자들이 온다해서 그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리 결례를 하였군요. 미안 미안합니다.
파르나스이순옥 10-07-04 23:06
 
장날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ㅎ저의 어머니는 아직까지 횡성장(1일, 6일)을 보십니다.ㅎ장에 다녀오시면 생선굽는 냄새가 언제나 진동했어요.. 저는 그 냄새에 질려서 생선을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 마음이라든가 풍경은 늘 그립습니다. 일만선생님 깊은 연구에 감동이 됩니다. 5일이 걸려야 모든것을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봅니다. 농수산물이 새롭게 자라는 시간인가요?저도 5일만에 마음 한뼘씩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ㅎ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장중식 10-07-06 00:29
 
과거 , 1970년대 쯤 강원도에는 돌아가며 5일장이 섰더랍니다.
한양의 관문 제천에서 느릅재 넘어 단종의 애환 서린 영월로,
삿갓 대신 초립 쓴 장돌뱅이들이 주천 섶다리를 건너려다, 다시 메밀꽃 피는 대화와 봉평,
그리고 장평 너머, 진부까지~~~~
지금도 대전 유성에는 5일장이 섭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직도 건재한 건 5일장 인심이랍니다.
훌훌 말은 국밥에다 탁배기 한잔도 있구요.
1장에 4000원 하는 녹두부침이 좀 비싸 보이긴 해도 하루 매출이 몇 백은 너끈하다 합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헛배가 부어오르고......
해질녘 천막을 걷는 그 사이로 하품을 해 대는 강아지를 보면,
"내일은 또 어느 곳에서 주인을 만나려는지~~"

일만 선생님 덕분에, 오래토록 고향 생각에 젖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늘 강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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