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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03 19:34
나의 별장(別莊)
 글쓴이 : ilman
조회 : 2,382  
나의 별장(別莊)

  지난 5월부터 나는 원하지도 않는 별장(別莊) 한 채를 갖게 되었다.
별장(別莊)이란 경치 좋은 바다나 계곡나 호수 같은 곳에 여름 피서지(避暑地)로나 겨울에는 피한지(避寒地)로 사용하기 위해서 따로 마련한 휴양주택(休養住宅)이다.
서민들에게는 꿈 같던 별장은 우리나라 발전과 더불어 생활이 자동차화(Motorization)하면서 서민들도 전원주택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의 별장(別莊)은 제2의 주택, 주말 주택으로도 불리는 것들이 더 많다.
별장 운영에는 그 관리비가 많이 들어서 종래에는 서민들이 넘볼 수 없는 비교적 여유 있는 분들이 누릴 수 있는  세계였다.
그러나 현대 와서는 별장 분양처에서 관리하여 주거나 현지 인근 주민에게 의뢰하고 있어 별장 하나 가졌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게 한다. 
 
그러나 나의 별장은 도심지 한가운데 그것도 전철역 출입구를 굽어보는 곳에 있는 아파트다. 소형 아파트라서 관리비도 월 8만원 정도이니 내게는 안성맞춤의 별장인 셈이다.
젊은 시절의 갸륵한 절약이 나의 노후를 위해 퇴직(退職)할 무렵 마련하여서, 아내에게는 연금(年金) 전액을 주고, 나는 소형 아파트 한 채를 사서 그 임대한 월세로 용돈을 써오던 집이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바람직하지 않은 임차인을 만나서 6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시달리며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월세를 제 때 주지 않고 몇 달치씩 밀리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수없이 되풀이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내 집 오기 전 10년 동안 9번 이상이나  이사를 다니면서 갖가지로 선량한 임대인들을 괴롭혀 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라서 그런가. 계약 기간이 지나도 영 나가지 않고 버티면서  항상 3 개월  이상 금액을 한꺼번에 드린다고 큰소리 치더니 그 이상이 되니 말이 달라진다.
그래서 보증금(保證金)이 소진되기 전에 서둘러 명도소송(明渡訴訟)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송은 시간과의 한없는 싸움이었다. 소송 6개월만에 첫 재판이 열렸고 2번째 재판 때까지  월세를 10개월이나 내지 않고 버티던 그들이 8개월 되는 3번째 재판 직전에 나간다고 잔금을 받아 가고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지막 약속한 날에도 나가지 않았다. 
재판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그동안 참아오던 격정적인 큰소리로 악을 쓰고 말았다. 고성에 놀라 모여든 동네 사람 앞에서 구체적인 나의 성토(聲討)가 시작되자 그제야 서둘러 쫓기듯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집을 안 나가고 계속 버티면 집 주인이 제풀에 지쳐서 월세를 안 받거나, 아니면 감해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집이 팔리면 돈이 없다고 산 사람이 이사 오는 날 버티면서 비워 주지 않고 버티다가 돈을 챙기어 나가려는  의도가 엿보여서 그 사람을 둔체 집을 팔 수도 없었다.
피고가 재판 판사에게 제출한 ‘청구 취지에 대한 답변서’는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고의 월세가 연체되었을 당시 원고는 연체된 월세는 받지 않아도 되니 아파트를 명도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
명도소송을 당하고도 끝까지 태연히 버티는 것을 보고 그런 소송에 유경험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나 같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로 하여 고된 싸움을 계속하여 왔던 것이었다..
소송에 든 모든 비용은 내가 물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티다가 쫓겨 가는 뒷모습을 가숨 아프게 바라보면서 ‘다시는-’ 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팔기로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절기로 비수요기에다가 유례가 드문 불경기라서 아파트에 발길이 끊긴 지 오래였다. 싸구려 급매물을 찾아다니는 사람 몇이 다녀 갔을 뿐이다.
집값은 실수요자(實需要者)가 아닌 투자(投資)나 투기(投機)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오르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벌써 오래 전의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자식들 다 여의고 아내와 단 둘이 내집에서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별장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비워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워서 우선 간단한 나의 짐을 옮겨 놓기로 했다.
잘 수도 있게 등산용 침랑과 책상을 겸해서 커다란 밥상과 의자, 커피보드, 등산용 코펠 그리고 아령 같은 운동 도구 등을 준비해 놓았다.
여기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심심하면 운동도 하고 때로는 친구를 불러다가 앞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가서 실비로 안주를 사다가 술 한 잔 기울일 생각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집은 전철에서 멀어서 서울에 볼 일이 있으면 그 동안은 자전거로 전철역까지 와서 거기에 묶어 놓고 오 가곤 했다.
다행히 이 나의 별장은 전철역이 바로 3분 거리라서 나의 주차장(駐車場)으로도  쓰기로  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는 앞뒤가 건물들로 꽉 막힌 곳인 데다가 알뜰 아내 때문에 웬만한 집에는 다 갖추어 있는 에어컨이 없다.
게다가 먼지가 들어온다는 아내의 성화에 한 여름에도 마음 놓고 문을 열어 놓지 못하고 꼭꼭 닫고 지내야만 했다. 집에 있으면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르는 중형 아파트였다.
그러나 나의 이 별장(別莊)은 뒤로는 후곡 마을로 통하는 공원길이 훤히 열려 있고, 앞으로는 호수공원(湖水公園)으로 향한 공원길이 확 티어 있다.
이곳은 아내 잔소리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영역이라 마음 놓고 문을 열어 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마음까지 더하게 하였다.
게다가 창 가까이서 살아야 하는 소형(小型) 아파트라서 창으로 눈을 주기만 하면 세상이  열린다. 그래서 베란다(veranda)에 의자와 망원경(望遠鏡)까지 갖추어 놓았다.
  그동안 여기서 쓴 글이 지금 쓰고 있는 ‘나의 별장(別莊)’까지 6편이나 된다. 
‘여보(시조)’, ‘이장(移葬)’(시조), ‘한국의 산하 우리들에게’(축시), ‘야구(野球) 이야기(수필)’, ‘인천(仁川) 지명 이야기’(수필), ‘나의 별장(別莊)’(수필)
 이런 글을 쓰다가 아침에는 백화점의 전철역 출입구로 뛰어가는 부러운 직장인들을 보며 옛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버스정류소에 머물다가 떠나가는 지붕이 파랑, 노랑, 빨강의 버스들이 어떻게 다른 종류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저 큰 길 건너 짓다가 말고 10년 이상 방치하고 있는 흉측한 대형 몰(Mall) 건물 앞의 줄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을 보며 요즈음의 불경기를 읽기도 한다.
 왼쪽 건물은 8층으로 궁전관광나이트클럽이 5색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밤에 눈을 켜면, 그 바로 아래 7층에 있는 호텔(모텔)의 간판이 반짝인다.
이를 보다 보면 ‘나도 애인이 있다면 나 혼자만의 이 별장이 얼마나 유용한 아지트가 될까?’ 하는 부질없는 음흉한 마음을 품어 보게도 한다.
그 건물에는 내가 좋아하는 호프집도, DVD 영화관도 있지만 음치(音癡)인 내가 가기 싫어하는 노래방도 있다.
영어교회(ILSAN ENGLISH CHURCH), 제7안식교회도 위 아래로 있어 ‘세상을 걱정하던 종교가, 사람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요즈음 신문의 화두(話頭)를 떠올리게도 한다.
 
과거 우리의 선인들의 별장이 자연의 풍광을 벌려 놓은 곳에 있었다면, 나의 별장은 세상을 벌여 놓은 삶의 경치가 있는 곳에 있다.
 옛날 퇴근하여 귀가하는 길에 만난 버스기사 아저씨가 하던 푸념이 생각난다.
 “저  날아가는 새를 보세요. 새들도 집이 있는데 저 같은 사람들은 내 집이 없어요.”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이 내 집뿐이리-.’

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서울에서만도 40%가 내 집이 없는 가구라던데 과분하게도 나는 집을 2채씩이나 갖고 별장이니 뭐니 하며 이렇게 노닥거리는 것이 집없는 서민들에게는 죄스런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박봉에 노년을 걱정하며 준비하던 나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크다는데 이곳에 살다가 내게 쫓겨나듯이 나간 그 부부에게 내가 너무했나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마지막 그 젊은 부인이 사겠다는 점심 값을 대신 치러주며 서로의 미움을 푼 것이 그 중 잘한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이런 말을 나누었다.
 “축복해 주시겠다니 고마워요. 꼭 연락해 드릴께요, 우리도 집을 샀다고.”
지금 나는 그분들에게 남은 보증금을 주느라고 더욱 가난해진 나의 주머니에다가 다달이 받던 월세마저 받지 못하는 빈 집을 '나의 별장'이라고 자위(自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등산(登山)과 여행(旅行)을 나의 별장이 팔릴 수 있는 가을이나  내년 봄  이후로 미루고 당분간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나의 별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때마다 조용히 읊조려 보는 시가 있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 ‘의자(倚子: 조병화)’

최길하 11-07-04 15:04
 
그동안 속을 썩인 집이었는데
이제 선생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겠지요
건강하세요
ilman 11-07-04 16:15
 
시진회도 그런 집이면 좋겠지요?
하시님 반갑습니다.
     
김영철 11-07-05 21:30
 
얼마나 좋을까요?
일만 선생님도, 시진회도.!!
ilman 11-07-05 05:36
 
*. 다음은 시진회 회원님께 한 마디 드리는 말씀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글을 시진회 홈피에 올리는 것은 시진회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6명이 다녀가면서도 그 반응이 미미합니다. 무관심하단 말'씀입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무시당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이트에 내가 글을 꼭 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얼마 동안 글을 올리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다시 '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활동하는 곳이 '한국수필작가회', 'kcc 콘텐츠 창작가 협회' 등인데 거기 올리면 읽고 가시는 분 수는 시진회와 비슷한데 글을 올리기 무섭게 서로 댓글로 따'뜻한 격려를 주어 글 쓰는 이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옥 전 이사장님께 이런 제 마음을 전한 일이 있었는데 '시진회가 달라졌다.' 하던데 지금 보니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운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식이라면 저도 앞으로 이 싸이트에 글 올리는 것을 삼가할 생각입니다.
옥경국 11-07-05 08:28
 
일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으 근황은 글을 읽어 보니, 한결 홀가분해 지셨군요.
저도 가끔, 일산에 갑니다. 선생님의 별장을 지나, 후곡마을 길로 쭉, 중산에 동생이 둘이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요사이 다른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소외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일이기도 합니다.
가을쯤이면, 청사진이 나오고, WORLD WIDE, GLOBAL한 조직이 될 것입니다.
창립 잔치를 할 때, 시진회 회원들을 초청하고, 시조전도 부탁할까 합니다.

폐 일언하고,
항시 말씀하시는 '댓글' 문제인데요, 해결 책은 이렇게 해 보는 것이 어떨지요?
시진 회원들은 댓글을 안 올립니다. 한, 두번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자기하고 다르다는 편견과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나 봅니다."

이번 기회에 시진회 홈페이지를 전면 개방하는 것입니다.
정회원과 인터넷회원을 구분하여 올리던 것을 LOG IN만 하면 어느 누구도 글을 올릴 수 있게 하면
소통의 장은 넓어지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또한 재미도 있겠지요.
반대로, 지탄의 글도 감수해야 합니다. 둘 다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는 SNS로 가야 하고, 그리되면,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어지니까요.
그 수가 늘고, 널리 퍼지면, 시진회도 APP.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과도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젠, '시진회 홈 페이지'가 우리 회원들만의 친목과 알림의 장의 기능은 능가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시조를 비롯해서 여러 작품을 서로 개방, 공유하고 창조해야 합니다.

경쟁(COMPETITION)의 시대는 지나 갔습니다.
협업(COLLABORATION)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RAINY DAYS AND SUNSHINE HEART!!!
장마철, 햇빛나는 아침에 선생님의 댓글을 보고, 저도 답답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김영철 11-07-05 21:33
 
편안하신지요?
이미 발표한 작품의 공유와 개방, 공감백배입니다.
     
최길하 11-07-05 23:52
 
"정회원과 인터넷회원을 구분하여 올리던 것을 LOG IN만 하면 어느 누구도 글을 올릴 수 있게..."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없다면 그것은 너무 폐쇄적입니다. 누구나 달 수 있게 개선 합시다.
          
(사)시진회 11-07-06 05:19
 
누구나 달 수 있게 개선 합시다.
답변/
현 사)시진회  '인터넷 회원과 '정회원 등급은 기본 "3 으로 되어있습니다.
등급 "3 은 사)시진회 '모든 글 '열람과 글 을 올리고 '답글 가능 (단 운영자방 출입은 등급"7 이상만 가능)
사)시진회 는 "누구나 답글 과 글을 올릴수 있게 되있습니다(인터넷 회원은 '독자 시조방에)
단)예외로 인터넷 회원중 '개인 정보를 허위 또는 '본명이 아닌 '스펨 형식 으로 가입 한 분 은
등급을 "1 로 강등하고 "접근 금지 조치를 '취 하고 있습니다 '관심 감사드립니다
오병두 11-07-05 11:44
 
마음 고생 속에  낙이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강령하시고 좋은 일만 즐비하시길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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