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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23 09:52
필리핀 배낭 여행(1)
 글쓴이 : ilman
조회 : 1,884  
 
필리핀 배낭 여행 (1)
(2012년 3월 12일~ 17일/ 마닐라- 세부- 마닐라/ 단독 배낭여행)

학창시절 나는 초등학교 때는 개성, 고등학교 때는 경주, 대학시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한 번도 함께 따라 가보지 못하였다. 대학 4년 동안도 내내 고학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것이 한(恨)이 되어서인가. 정년을 전후하여 경비가 많이 드는 남아메리카를 제외하고 5대주의 적지 않은 나라를 아내와 함께 다녔다.
나이 들어 시작한 해외여행인데다가 우리 부부는 둘 다 영어회화에 손방이었기 때문에 주로 여행사 따라 투어여행만을 따라 다녔다.
한번만 보는 경치와 단 한번만 듣는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해외 투어여행을 다니다 돌아와 보면 머리에 남는 것이 거의 없어서 여행에 투자한 돈이 너무나 아까웠다.
나는 정년 후를 준비하기 위해서 시와 수필로 문단에 늦깎기로 등단한 사람이라서 그 기행문을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행작가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해외에 가보고 싶은 사람에게 희망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추억을 심어 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난생 처음으로 필리핀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나 홀로.
지난 가을 서울 ‘청계천의 등불축제’ 구경을 갔다가 필리핀관광청 한국지사에서 실시하는 설문 조사서를 써 냈더니 그것에 당첨되어 행운의 마닐라 왕복 티켓과 세브의 호텔 2박의 숙박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여행작가이기 때문에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았다.
필리핀은 초행길이라서 아내와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주어진 비행기 표가 스텐바이티켓으로 자리가 비어야 떠날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어서 만약의 경우를 고려하여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살아 간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등록금을 안냈다고 담임선생님께 대학입학원서마저 쓰기를 거절 당하고 울부짓던 내가, 자식에게만은 이런 설음을 다시는 물려 주지 않겠다고 가슴치던 내가, 이렇게 홀로 훌훌 해외여행을 떠나다니-. 그것도 공짜로.

*. 필리핀 여행
혼자가 되면
‘나’와 ‘내’가 우리 되고
‘내’가 ‘나’와 친구 되어
마음이 부리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내 마음은 
날개를 달고
여행은
자유가 된다.
행복하고 즐거운 혼자가 된다.
                   -단독 여행

희수(喜壽)를 1년 앞둔 나이에, 치안이 불안하다는 그 먼 낯선 나라dml 초행길 필리핀을 달랑 배낭 하나 둘러메고 혼자서 비행기에 오른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앞서고 용기가 필요하였다.
영어회화에 자신이 없는 내가 믿는 것은 만국공통용어라는 보디랭귀지(body language)에다 한영사전 하나뿐이다.
그래서 일체 비행기 예약은 서울에서 하였고, 공항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여행자 보험을 드는 일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이라서 여행기간인 1주일에 19,000원을 내고 보니, 상해사망 후유장해에 5천만 원을 보증한다 한다. 해외 상해 해외치료에 2천만 원이라 한다.
휴대품 도난을 당했을 경우 현지 경찰서의 인증을 받아오면 50만원을 보상해 주는 모양이다.
만약 강도를 만나면 주려고 콤팩트 카메라를 하나 더 가지고 간다.
돈을 달라면 주려고 약간의 돈을 윗주머니에, 나머지는 가슴 깊이나 양말에 나누어 숨겨 갖고 간다.
내가 탄 비행기는 저가의 필리핀 국적기라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떠나 7시 30분에 비행기를 탑승했건만 아침 식사를 주지 않는다. 물 한 컵도 사 먹어야 했다.
캔 맥주 하나(300페소) 마시려고 500페소를 주었더니 거스름돈도 주려 하지 않는다.
목적지 필리핀 마닐라까지는 3시간 30분, 한국과의 시차는 필리핀이 1시간이 더 한국보다 이르다.

*. 필리핀 이야기
지도를 펼쳐 필리핀을 보면 그 모양이 커다란 문어 같이 생겼다.
머리 부문이 마날라가 있는 루손 섬(Luzon is.)이고, 세부가 있는 비사야스 군도나 남쪽의 민다야 섬 등 11개의 주요 섬들이 그 문어의 다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세 섬의 크기가 이 나라 전체 면적의 96%를 차지한다고 한다.
필리핀 군도는 크고 작은 7,109개의 섬으로, 1만3,677개의 섬나라인 인도네시아에 이어세계에서 두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전체 섬 중 이름이 있는 섬은 4,600여개뿐이고, 그 중 유인도는 1,000개 정도라는 섬나라다.
필리핀 군도는 홍콩 남서쪽, 싱가포르 북동쪽에 있는 나라로 북으로는 루손 해협, 동쪽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남지나해와 인접해 있는 섬나라다.
면적은 30만 440㎢로 한반도보다 1.3배가 큰 세계에서 17위로 큰 나라다 여기서 1억 가까운 9,000만 명이 사는 나라다.
필리핀은 마젤란 이후 517년간의 스페인, 48년간 미국, 4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던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그래서 필리핀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영어를 쓰는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아세아 유일의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동(銅), 니켈, 금, 등 매장량이 세계 8위의 자원부국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크롬 철 등은 낙후된 기술과 미약한 자본력 때문에 매장량 조사마저 절반도 이루어지지 못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 한국과 필리핀
  필리핀은 우리 한국의 영원한 우방국으로 미국과 함께 자고로 우리의 맹방이다.
대한민국이 건국하자 UN에서 5번째로 우리 대한민국을 승인해준 나라가 필리핀이었다.
6.25가 발발하자 공산주의로부터 Korea의 자유 수호를 위해 지상군 1대대 7,420명을 파병하여 그중112명이 우리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나라다. 무심히 지나치던 경기도 고양시 통일로 변에 영국 참전비가 이를 말해 준다.
나의 대학 학창시절인 1960년대 초에 한국은 필리핀은 물론 북한보다도 아주 못사는 아시아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장춘체육관을 지으려 하였으나 우리에게는 그런 건물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필리핀의 설계회사와 건축회사가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지어 준 것이 한국 최초의 돔 경기장인 장충 체육관이었다. 세종로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도 필리핀과의 기술 제휴를 받았다.
당시 필리핀은 일본과 경제력 1, 2위를 다투던 아시아의 경제 부국이었다.
다음은 1963년 무렵 국  GDP다.
일 본: 647$
필리핀: 584$
한 국: 78$
필리핀은 우리가 신지식과 선진 행정을 배워오던 우리의 선진국이었다.
당시에는 막사이사이상을 타는 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영광이었다. 그것이 바로 5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 가난한 우리나라가 이제는 10배나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어 필리핀에 초현대식 다목적 댐과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주는 나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근대 필리핀의 지도자들
근대 필리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영웅에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군을 정화하기 위해서 부패한 군인들은 철저히 처벌하고 정직하고 청렴한 군인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게 한 영웅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날 관용차인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버리고 중고차를 빌려 타고 입장할 정도로 검소한 대통령이었다.
임기 중 그의 가족 및 측근들에게 어떠한 비리 하나도 없게 하였고, 어떠한 도로나 다리 및 건물 등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게 한 정직하고 현명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게도 국민의 사랑을 받던 막사이사이대통령이 1957년 봄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마르코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필리핀은 오늘 날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21년 간이나 장기 집권하면서 독재와 부정부패로 필리핀을 아시아 선진국 대열에서 후진국으로, 부강한 국가에서 최빈국으로 추락시키고 말았다.
국민들에 의하여 하와이로 추방되기까지 한 마디로 대통령 영부인 아멜다 여사는 명품만을 탐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그가 수집한 명품 구두만도 수천 켤레나 된다는 일화를 남겼다.
  
마르코스와 박정희 대통령은 똑같은 1917년생 갑장으로 공통 되는 점이 많았다.
두 분 다 동남아시아 대통령이었고, 정권 유지를 위해 계엄령이라는 무리수를 쓴 독재자였다.
정적을 탄압하고 인권유린을 한 것도 그러 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친인척 관리에 철저하였고, 마르코스는 그러지 못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켜 절장보단(截長補短)한 긍정적인 대통령이 되었고, 마르코스는 경제를 파탄시키고 나라를 부패로 이끈 부정적 인물이 되었다.
그 두 대통령 때문에 한국은 1960년도에 한국의 80달러에서 2007년도에는 20.000달러의 부국으로 성장시키는 동안, 마르코스는 필리핀을 160 달러에서 1,100달러로 아세아 최빈국으로 후퇴시키는 원흉이 된 것이다.
필리핀 가정 중 1인은 해외에 나가서 옛날 한국의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부처럼 외화를 벌어 조국에 송금해 오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노동자로, 가정부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국에서 고생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벌어서 송금하는  외화가 필리핀 국가 GDP의 11%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그 외화를 국가 발전에 쓰지 않고 소비로 쓰는 것이 필피핀의 안타까운 현실인 모양이다. 그래서 필리핀은 가난의 악순환이 계속되는가 보다.
우리나라 위정자들도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명심 명심 경계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 (2)' 세부 여행'

慈軒 이정자 12-03-23 17:24
 
'행운의 마닐라 왕복 티켓과 세브의 호텔 2박의 숙박권'행운에 당첨되셨네요.  축하합니다.  여행작가로서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겠습니다. 두 나라간의 비교 자상하게 올리셨네요. 386 이후 세대들이 보고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정조 12-03-24 09:41
 
* 학창시절 나는 초등학교 때는 개성, 고등학교 때는 경주, 대학시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한 번도 함께 따라 가보지 못하였다. 대학 4년 동안도 내내 고학으로 마칠 수 있었다.

* 학창 시절,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인천 월미도나 송도 부근으로 기억이 납니다만 저는 못 갔습니다. 당시엔 경춘선이 춘천역, 남춘천역을 거쳐 성동역까지 가던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성동역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 (((성동역이라고 들어보았는가?
 지하철 1호선 제기역 근처 지금의 한솔동의보감 빌딩 자리에 있던 역이다. 이 역이야말로 낭만이 서린 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39년 7월 개통된 이 역은 경춘선의 시발역이었다. 대학생 MT나 야유회 장소로 대성리와 강촌이 각광을 받던 1960~70년대 주말의 성동역은 싱싱함이 넘쳐나는 젊음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형형색색 옷차림의 대학생들이 역구내에 진을 치고 앉아 기타에 맞춰 요란하게 노래를 불러대는 등 행락 분위기를 띄우느라 부산했다. 우리 역시 1971년 10월 성동역 폐쇄로 경춘선 출발역이 청량리역으로 이관될 때까지 몇 차례나 강촌 행 경춘선을 타기 위해 성동역에 집결했었다.

 성동역 서편엔 정릉천이 흘렀고 천변엔 판자집 여인숙이 즐비했다. 일금 3백원을 주면 하룻밤을 해결할 수 있는 천변 여인숙은 경춘선 차 놓친 서민들의 대기소였지만, 가난한 연인들이 몸을 포개고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 국민일보 논설위원 윤재석의 글에서 발췌 - 이래서 기록은 소중한 것입니다.))

중학교 때의 수학여행도 경제적 문제로 가질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엔 그 소중한 수학여행비를 납부했는데, 그만 수학여행단 열차 충돌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환불받고 말았습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 했듯이 어려움을 겪고 난 이후의 생업엔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 생활엔 지장없이 삽니다. 딸아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들놈은 수원에서 방 얻어 대학생활하고 있는데, 군대까지 다녀온 이후라  안심하고 있지만, 졸업 후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만족하면서 발전에 노력하고, 조금이나마 직장과 사회에 기여하는 정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안전한 여행에 멋진 추억과 기행수필로 남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정정조 12-03-24 09:54
 
지상의 성동역이 폐쇄되고 지하철 1호선 제기역이 지하로 들어갔군요. 바로 한 정거장 지나면 지상 청량리역과 지하철입니다.
정정조 12-03-24 19:01
 
인간 박정희는 이런 소박한 서민들의 꿈을 알고나 있었을까요? 모두 박정희 시대에 있었던 일인데.
이근구 12-03-24 22:24
 
일만 선생님 반갑습니다.
퇴직해서 마닐라에갔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말을 타고 활화산 구경도하고
팍상한 폭포에도 갔었는데 썬크림을 바르지 않고 무심히 갔다가
화상을 입어 한달을 고생했었지요.
운 좋게 공짜 배낭여행으로 구경을 하셨으니
일만선생님은 멋져버려.... .. ㅎ ㅎ ㅎ
月亭오병두 12-04-13 19:46
 
감동의 여행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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