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진흥회
HOME    공지사항    이야기마당    음악감상실    회원리스트    최신글보기    일정관리    운영진코너  

 

 


113
109
3,539
2,224,977

 

제작자 사이트가 뜹니다

 

 
작성일 : 12-03-26 00:19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뒤엔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글쓴이 : (사)시진회
조회 : 4,206  
피렌체 공화국토스카나
토스카나 대공
피렌체 통령
우르비노 공작
느부르 공작
건립 14세기
몰락 1737년
메디치 가문의 문장
Coat of arms of the House of de' Medici.png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
 
이 작은 마을에서 천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수많은
천재들이 태어나서 중세 천 년의 암흑의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빛의 시대로 바꾼 곳.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모두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르네상스라는
아름다운 시대를 열었던 곳
 
이런 천재 예술가나 학자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이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피렌체의 위대한 예술가들과
천재학자들을 후원하고, 지도해서 지금의 르네상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변화시킨 메디치 가문
(1397~1743)
 
메디치 가문은 16세기에 교황 두 명(레오 10세와 클레멘트 7세)과
프랑스의 왕비를 2명이나 배출합니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494년도에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범하게 되어
전쟁을 하게 되어 원수 지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국의 중산층 계층의 여인이 프랑스 왕실로
시집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 메디치 가문이 어떤 공헌을 남겼을까요?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서 오페라가 탄생했고, 카테리나 메디치가
말을 타는 것을 계기로 여성용 바지가 등장했으며,
 
음식을 손으로 먹던 유럽 사람들이 식사할 때 포크와 나이프의
식사 예절은 메디치 가문의 식탁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또한 키가 작은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키가 큰 프랑스 여자와
경쟁하기 위해서 신기 시작한 것에서 하이힐이 탄생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천재 예술가를 후원했고,
‘정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아벨리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갈릴레이의 과학적인 발견,
 
그리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신대륙( 아메리카는 그의 이름 )
지리적 발견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도대체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었을까요?
 
메디치가문은 한적한 시골의 작은 농장주였는데 피렌체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고 자산을 정리하고 피렌체로
이사하여 조그만 환전상을 시작했습니다.
메디치는 ‘은행사업의 성공 비결은 예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용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메디치은행을 창립합니다.
이것이 피렌체에서의 메디치 가문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메디치 가문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을까요?
 
1. 한번 맺은 신의(인연)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요한23세가 눈을 감을 때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을 초청해서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메디치가문의 사람들이여 내가 잘못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
내가 폐위를 당해 내가 갈 곳이 없을 때, 나를 환대해주었고
엄청난 돈을 아무 조건없이 빌려주던 당신들에게 너무 감사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한 개를 여러분께 남기고 갑니다”
 
3,4년이 지난 후에 그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교황과 왕과 군주와
귀족들이 거래은행을 모두 메디치은행으로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우리가 잘 되었을 때도 잘못 되었을 때도
그 신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2. 정면 돌파의 모범을 보여라!
위기가 닥쳤을 때, 메디치 가문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걸고
앞으로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3. 인내하고 때를 기다려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행동으로 실천,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해서
진정한 기회가 올 때 까지 자신을 낮추는 기다립니다.
 
4. 당나귀를 타고 가던 코시모를 기억하라! (겸손)
코시모는 왕관을 내려놓고 늘 겸손하게 행동했는데 길을 갈
말을 타면 시민들과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혼자서 걸어가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신분이 낮은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넬 때에도
모자를 벗어서 다시 인사를 하였고, 취직이 안 돼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농장의 문지기라도 시켜 줄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국부’로 불렀습니다.
출장을 갈 때 다른 사람들은 멋진 말을 타는데, 코시모는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메디치 가문은 15c-300년간 유럽의 예술,문화,과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변화시켰던 메디치 가문은  350여년간  지속됩니다.
 
그 후 세계 정세가 변함과 더불어 메디치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후손들의 군림하는
자세로 인해 가문은 몰락하게 됩니다.(1397-1743).
 
코시모는 “내 무덤은 사람들이 밟고 설 수 있게 땅바닥에 깔아라!”
 
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가 임종했을 때(1464년)에 그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습니다.
 
- 코시모 데 메디치에 대한 추도사 -
 
" 세상 사람들의 빛이여,
상인들의 빛나는 귀감이여,
근로자들의 진실했던 친구여,
피렌체인들의 명예여,
가난한 자들의 친절한 봉사자여,
고아와 과부들의 자비로운 구원자여,
토스카나 지방의 철통같은 방패여!"

月亭오병두 12-04-13 19:44
 
감동입니다. 우리 모두의 빛이 되기위해 노력하렵니다.
 
 

Total 5,081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한국시조문학 봄호 표지 운영자 03-19 3301
공지 21. 겨울호 표지 운영자 02-04 3305
공지 한국시조문학 표지 여름호와 가을호 운영자 10-17 2996
5061 금단도끼 보련 스팸 올리지 마시오. 운영자 11-21 215
5060 괭이밥 / 백승훈 (사)시진회 11-19 196
5059 겨울 개나리 (사)시진회 11-17 209
5058 다투는 꽃 (사)시진회 11-17 192
5057 물매화 (사)시진회 11-10 214
5056 쑥부쟁이 꽃과 글 /백승훈 (사)시진회 10-20 407
5055 한국시조문학 표지 여름호와 가을호 운영자 10-17 2996
5054 혼자가 아니야 (사)시진회 09-28 225
5053 나는 무엇으로 기억 될 것인가 (사)시진회 09-13 227
5052 문화 읽기 1 (사)시진회 09-10 209
5051 미타리꽃과 글 (사)시진회 09-01 222
5050 으아리 꽃/ 백승훈 (사)시진회 08-25 227
5049 류병호의 스팸을 지우다 운영자 07-09 285
5048 세계 10위 초고층 빌딩: 롯데 월드 타워는? (사)시진회 07-06 288
5047 청춘 / 사무엘 울만 (사)시진회 05-10 358
5046 복사꽃 (사)시진회 04-08 365
5045 필리핀 배낭 여행(2)/ 신혼여행의 천국 ‘세부(CEBU 막탄 섬(Mactan l… (2) ilman 03-27 2318
5044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뒤엔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1) (사)시진회 03-26 4207
5043 힐링캠프 차인표 효과 (2) 慈軒 이정자 03-23 2288
5042 필리핀 배낭 여행(1) (6) ilman 03-23 188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