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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0-27 08:57
 조회 : 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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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jw.er.to [1093] |
낙엽의 노래 / 홍윤숙(洪允淑)
헤어지자 -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달빛도 기울어진 산마루에
낙엽이 우수수 흩어지는데
산을 넘어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내 잊지 않으마
언젠가 그 밤도
오늘밤과 꼭 같은 달밤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어지고
하늘의 별들이 길을 잃는 밤
너는 별을 가리켜 영원을 말하고
나는 검은 머리 베어 목숨처럼 바친
그리운 이 있었다, 혁명이 있었다.
몇 해가 지났다.
자벌레처럼 싫증난 너의 찌푸린 이맛살은
또 하나의 하늘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는 것이었고
나는 나대로 송피(松彼)처럼 무딘 껍질 밑에
무수한 혈흔을 남겨야 할
아픔에 겨디었다.
오늘밤 이제 온전히 달이 기울고
아침이 밝기 전에 가야 한다는 너
우리들이 부르던 노래 사랑하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부르자.
희뿌연히 아침이 다가오는 소리
닭이 울면 이 밤도 사라지려니
어서 저 기울어진 달빛 그늘로
너와 나 낙엽을 밟으며
헤어지자 -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
낙엽의 노래 / 홍윤숙
중부지방은 낙엽이 절정을 향하여 치닫습니다.
남부지방은 다음 주가 그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낙엽이 지는 계절이지요.
서로 사랑했던 뜨겁던 사랑이 시들해져, 서로 헤어지는 모습을 지는 낙엽에서 보았군요. 작년 이맘때 어느 20대 여성이 실연의 충격으로 지하철에 뛰어들어 낙엽지듯 목숨이 스러졌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이런 세상에 이토록 가련하고 청순한 꽃도 있나 싶어 눈을 비비고 그 기사를 다시 보았었지요. 예전엔 뒤안 감나무나 뒷동산 참나무에 아니면 안방 시렁에 목을 매거나, 마을 옆 저수지에 몸을 던지거나 끔찍한 쥐약을 들이키거나.... 아무튼 자살 방법도 좀 낭만적인(?) 데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하철에 뛰어 들거나 분신까지 하는 극렬한 모습이네요.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20대의 앞날이 구만 리 같은 그 순정은 아련한 아픔을 주는 비련(悲戀)의 꽃이었습니다.
홍윤숙 시인의 이 시는 이별의 노래입니다.
'헤어지자'라는 담담한 어조 속에 배인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별이 가져다 주는 아픔 가운데 하나는 추억의 저편에 희미한 듯 선명히 남아 있는 사랑의 기억입니다.
더욱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검은 머리 베어 목숨처럼 바친 그리운 이'였을 때 실연(失戀)의 고통은 얼마나 커다랗고 처절한 것이겠습니까? 소소한 가을 바람이 부는 아침 지는 낙엽을 보며,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철에 몸을 던진 가련한 순정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 불타는 낙엽을 보며, 지는 인생의 의미도 겹쳐 생각하는 한 순간이 된다면 당신의 마음은 그만큼 더 성숙하게 되겠지요.
..........< 2004. 10. 27(수) 아침 만은(晩隱) 드림 >..........
* 홍윤숙(1925 - ) 여류시인. 평북 정주 출생.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 중퇴. <신천지>에 작품 발표로 문단활동 시작. 그의 시는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에 입각, 정감에 흐르지 않고 억제해 가며 사물이나 관념을 통해 존재로서의 자신을 서술적이면서도 극적인 표현으로 천착하고 있음. 대표작 '장식론', '낙엽의 노래', '타관의 햇살', '사는 법' 등. 시집 <여사 시집('62.)>, <풍차('64.)>, <장식론('68.)>, <일상의 시계소리>, <타관의 햇살>, <하지제(夏至際)>, <사는 법> 등.
* 만은 김종원 문학서재 : http://kjw.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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