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

달동네에서 달동네로, 밑바닥에서 밑바닥으로 철새처럼 이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빙판이었네.

열심히 살아도 자주 미끄러지고 깨지고 늘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네.  그래서 달동네 사람들은 골목에 쌓인 연탄재처럼 부둥켜안기를 좋아했네.  한 지붕 아래 따닥따닥 붙어살길 좋아했네. 

봉식이 아버지가 며칠 동안 일거리가 없어 봉지쌀도 구하지 못해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면 영희네가 활활 타는 밑불을 대어 주기도 했네.

세제 대용으로 연탄을 빻아 남포등 유리덮개의 그을음을 닦아 내던 아이들의 눈동자는 황소 눈처럼 늘 축축이 젖어 있었네.  눈물에도 재가 있는지 지아비를 여읜 뒤 청상의 나이에 연탄 지게를 지고 배달을 하신 어머니는 밤새 베갯잇에 떨어진 눈물의 재를 아침이면 대문간에 나가 훌훌 털곤 했네. 

쌓인 재를 제때 퍼내지 않으면 아궁이 구멍이 막혀 열기가 돌지 않듯이 굴곡진 삶에 치이는 동안 어머니는 눈물샘이 막혀 울지도 못하고 싸늘히 식어만 갔네.

빙초산과 김칫국물로도 깨어나지 않자 죽었다고 가마니를 덮어 놓았다던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있은 뒤로 나는 머리가 둔해져 셈을 잘 못했네.  그 일은 오히려 잘된 일이네.

셈을 잘했다면 내가 어찌 시인이 될 수 있었겠는가.  연탄에는 22개의 손가락 구멍이 있네.

어린 나는 캄캄한 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연탄구멍이 신기해 구멍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기도 했네. 

연탄집게는 엄마 몰래 강냉이 바꿔 먹고 손 집게로 연탄재를 나르곤 했네. 

새끼줄에 연탄을 꿰어 사들고 오다 그만 새끼줄 끈의 매듭이 풀려 연탄을 깨뜨리기라도 하면, 그날은 저녁밥도 굶고 대문 밖으로 쫓겨나 애벌레처럼 몸을 말고 앉아 '엄마가 슬퍼하게 팍 죽어 버리고 싶어'라고 별들한테 충격적인 말을 털어놓곤 했네.

사랑은 연탄 같은 것이네. 

안도현의 시처럼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어'주는 것이 사랑이네.

사랑은 화력이 중요하네.  화력이 약하면 사랑이 옮겨 붙지 않고, 화력이 너무 세면 잿덩이가 되어서도 떼어 낼 수 없는 집착이 되네.  사랑이 잘 연소될 수 있도록 22개의 마음 구멍을 서로 세심하게 맞추는 일은 기본이고 신뢰이며, 이 춥고 헐벗은 세상에 용기와 집념을 뜨겁게 불어넣어 주는 자비이네.

이기와 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