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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10 21:29
 조회 : 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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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st.kr [1219] |

아들과 딸 그리고 가족을 가진사람은 행복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다.
반면, 신부-스님-독신주의자는 불행할까? 불쌍할까?
가족을 가진 행복을 맛볼 수 없는데 비하면 당연한 일일터.
허나 그런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의 행복은 있을 것이다.
하느님-부처님 그리고 거칠것없는 홀로주의에 맛들면 그 이상의 행복이 있을리 만무다.
끊임없이 신부가 스님이 독신주의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고 부다 또한 그랬다(일부러 떨치고 집나간 분이니까). 그래도 결혼을 얘기한다.그것이 지극히 자연적인 행사임을 장려한다. 아이러니지만 해 보지 않은 일에 관해 말하는 것은 백문불여일견의 관행에 어긋나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그냥 믿어 의심치 않으려 든다. 그만큼 타성의 법칙이 크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느낀 일이 많다.
그처럼 불쌍한 분이 다시 있을까....라는 점이다.
평화와 사랑 희망의 하느님이신데 인류 머리위에다 전쟁과 질병, 기아와 무지를 뿌려 곤욕을 입힌다. 이를 바라보실 하느님은 정녕 행복하지가 않을상 싶은데 그것을 온당한 처사노라 대갈일성하실 때가 있다. 그 모든 부정적 현상을 타파하고 오로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버젼만을 강구하시고 싶으실 하느님 아닌가? 어떤 곳에서는 믿음마져 유일하게 재단한다. 오직 당신만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자부한다. 굳이 나쁜 일로 치부하려 들지 않으려한다. 원래 독단을 떠난 하느님이란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
운동선수가 상대를 때려누이고 이겼다는 감사기도를 올리고
적군을 죽여서 승리를 쟁취했다고 환호작약 하느님께 감사한다.
하고많은 하느님을 모신 종교의 전사들이 저마다 열듼 축원을 드리다 보니 하느님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 지 모를게 뻔한데도 사람들은 의당히 자기들 말과 소망을 반드시 들어줄 것으로 믿는다. 아하, 패하고 가슴아픈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만든 것도 하느님이라신다. 하느님은.그냥 다 들어 주고 싶고 또 그런 결론에 사시는 것이 상정인듯 싶다. 허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러자니 하느님의 존재에 흠이 생길까 걱정이 드는 것은 아닐까?.그냥 순리자연에 맡긴듯 행새하신다.
생각한대로 된다는 사실에 따르면 하느님은 그래서 불쌍하시다. 그것도 매우.
밤이 있으면 낮이 있듯이 하느님은 늘 그 불행스런 일면과 타협하며 함께 산다고 해야할까 보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뿌리를 두고 말이다. 희망이 있는 것은 불행이란 속성의 산물이란 점에서 하느님은 늘 불가항력인양 손바닥을 뒤집어 보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늘 공유하신다.
불쌍한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산다면 하느님은 매우 사람적이시다.
사람을 하느님이 동일한 버전으로 당신처럼 만드셨다는 점에서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산다면 사람을 가장 기쁘게하기 위해 사는 것 또한 사람의 할일이 아닐까 보다.
기쁘고 기쁨으로 감사하며 살란다
기도를 끌어안고 쉬임없이 가란다
불쌍한 그님함께면 기쁨펑펑 온단다 (12/11일 낮 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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