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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9 01:22
 조회 : 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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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한 펄기를
미나리 한 펄기를 캐어서 씻우이다
년대 아니아 우리 님께 받자오이다
맛이야 긴치 아니커니와 다시 씹어 보소서
<지 은 이>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경사(經史)에 밝고 성리
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전라감사 등을 지냈고, 선조 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말 뜻>
한 펄기 : 한 포기. 한 떨기. 한 묶음.
씻우이다 : 씻으오이다. 씻습니다.
년대 : 여느 데. 다른 데.
아니아 : 아니라. 아니어서.
받자오이다 : 바치옵니다.
긴치 : 긴(緊)하지. 대수롭지. 변변치.
아니커니와 : 않겠지마는.
<감 상>
미나리를 한 묶음 캐어서 맑은 물에 정성들여 씻습니다. 다른데가 아니라, 우리 님께
바치려고 말입니다. 맛이야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요마는, 그래도 다시 잘 씹어 보
십시오. 내 정성의 맛이 날 것이외다.
옛날에는 봄 미나리가 계절 식품으로서 참으로 신선하고 귀한 식품이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맛보게 했던 것이다.
지은이가 전라감사가 되어 완산(完山) 진안루(鎭安樓)에서 봉안사(奉安使) 박화숙
(朴和淑)과 함께 놀면서 지은 시조라고 한다. 옛스러운 순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 마치
고려가요를 읽는 맛이 난다.
바람도 쉬어 넘는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왔다 하면 나는 한번도 아니 쉬어 넘으리라
<말 뜻>
산지니 : 산진(山陳)매. 산에서 자유롭게 자란 해묵은 매.
山眞, 水眞은 잘못된 표기.
수지니 : 흔히 水陳이라고 쓰지만 手陳이 옳다. 손으로 길들인 매.
해동청(海東靑) : 송골매.
보라매 : 어미에게서 갓 떨어진 새끼를 잡아 길들인 후, 사냥에 쓰는 매.
'육(育)지니'라고도 한다.
장성령(長城嶺) : 고개 이름.
<감 상>
하도 높아서 바람도 쉬어서야 넘어가는 고개. 구름까지도 쉬어서 넘는 그렇게 높고
험한 고개. 산지니 · 수지니 · 해동청 · 보라매 같은 날쌘 매들까지도 단숨에는 못 넘고,
몇 번씩 쉬어서야 넘는 그런 높디높은 봉우리. 그 장성령 고개 너머에 만일 님이 와 있
다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어가서 님을 만날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도 사람에게 무한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인가 보다. 수다와 익살
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구수하게만 느껴진다. 과장이 틀림없는데도 역겹지가 않고
지나친 수다가 분명하건만 별로 밉지가 않다. 오히려 짜릿한 맛은 없어도 구수하기만
하다.
사설시조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엇시조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바람 불어 쓰러진
바람 불어 쓰러진 나모가 비온다고 싹이 나며
님 그려 든 병이 약 먹다 하릴소냐
저 님아 널로 든 병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
<말 뜻>
하릴소냐 : 병이 나을쏘냐? '하리다'는 '낫다'의 옛말.
<감 상>
거센 바람이 불어서 쓰러져 버린 나무가 비가 온다고 해서 되살아나며, 님 그려서 생긴
병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나을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님, 너 때문에 생긴 병이니 너만
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 제발 나를 사랑해 달라. 뱉듯이 다담하게 적어 놓은 것이 부담
엇이 읊을 수 있어서 좋다.
또 이런 것도 있다.
"북풍에 이운 나모가 찬비 맞다 새잎나며 / 상사(相思)로 들은 병이 약을 먹다 좋을
소냐 / 저 님아 널로 든 병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작자 미상)"
짝사랑에서 생긴 상사병의 처방은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없는가 보다.
바람 불어 쓰러진 뫼 보여
바람 불어 쓰러진 뫼 보며 눈비 맞아 썩은 돌 본다
눈정에 걸온 니이 슬커늘 어디 가 본다
돌 썪고 뫼 무너지거든 잊어 볼까 하노라
<말 뜻>
눈정 : 눈에 든 정. 눈에 든 모습.
겉은 : 겉으로. ' 겉음' '걸음'의 아이형.
슬커늘 : 싫어지는 것을.
<감 상>
바람이 불어서 쓰러진 산을 보았으며, 눈비를 맞아서 썩은 돌을 보았느냐? 산은 바람이
제아무리 불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쓰러지지 않는다. 또 그 단단한 돌이 눈비를 맞았다
며 해서 썼어서 없어지게 된다면, 나도 '눈정에 건' 님을 잊을지도 모른다. 즉 천지개벽을
한들 이 님을 잊을 수가 있겠느냐.
바람 불으소서
바람 불으소서 비올 바람 불응소쇠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내리소서
한길이 바다가 되어 님 못 가게 하소서.
<감 상>
바람아 불어라, 비야 오너라. 가라이가 억수 장마로 변하여 있는 대로 퍼부어라. 그래서
큰길이 바다가 되면 님을 언제나 내 곁에 붙자아 둘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 가뜩이나 차변된 (마음 변한) 님 길 질다고
아니올쎄라 / 저 님이 내 집에 온 후에 구년수(九年水)(중국 요임금 때 있었다고 하는 9년
에 걸친 홍수)를 지소서(작자 미상)"
온 님, 와서 내 품에 안긴 님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바람 불고 비 내리고, 한길이
바다가 되게 하라는 데 대하여, 이 경우는 온다고 한 님이 아니 올세라 바람아 불지 말며,
비야 오지 마라. 그러다가 님이 내 집에 온 뒤에는 막 퍼부어서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
다. 사랑의 속성을 짐작케 하는 대표적인 시조들이다.
부채 보낸 뜻을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간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감 상>
님께서 나에게 부채를 보내준 뜻을 잠깐 생각해 보니, 내 가슴속에 붙는 불을 이 부채로
끄라고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밤낮으로 흐르는 눈물도 못 끄는 불인데, 부채라고
해서 어찌 끌 수가 있겠는가?
사람이 죽어지면
사람이 죽어지면 어디메로 보내는고
저생도 이생같이 님한테로 보내는가
진실로 그러할작시면 이제 죽어 가리라
<감 상>
사람이 죽은 뒤에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님에게로 보낸다면 이제 당장에라도 죽겠다는 말
이다. 죽기를 맹세하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 사랑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은 예
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렇게도 위대하고, 그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인가 보다. 죽음과 바꾸겠다는 사랑을 읊은 노래는 허다하지
만 이런류의 표현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읽는 이의 주의를 끌게 되는 것이다.
사랑 모여 불이 되어
사랑 모여 불이 되어 가슴에 피어나고
간장 썩어 물이 되어 두눈으로 솟아난다
일신에 수화상침하니 살동말동 하여라
<감 상>
비유도 묘하거니아 리듬도 은반에 구슬이다. 가슴을 태우는 사랑의 불꽃, 애간장을 다 썩
히는 슬픔의 눈물, 그야말로 한몸에 <수화상침(水火相侵)물과 불이 한꺼번에 침노함>이
니 살지말지 모르겠구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뜨거운 사랑과 그 아픔이 애절하게 표현된 시조이다.
사랑사랑 긴긴 사랑
사랑사랑 긴긴 사랑 개천같이 내내 사랑
구만리 장공에 넌즈러지고 남는 사랑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가없은가 하노라
<말 뜻>
긴긴 사랑 : 길고도 긴 사랑. 끝이 없는 사랑.
내내 사랑 : 끝없는 사랑.
구만리 장공(長空) : 9만 리나 되는 높고 먼 하늘. '구(九)'는 꼭 고정수 9가 아니라 무한
대의 수를 의미한다.
넌즈러지고 : 쭉 뻗어 늘어지고.
<감 상>
나의 님에 대한 사랑은 9만리 장공에 닿고도 남을 만큼 끝이 없는 긴긴 사랑이다. "긴긴
사랑, 내내 사랑"은 결국 공간적 · 시간적으로 모두 끝이 없다는 뜻이다.
"구만리 장공에 넌즈러지고 남는 사랑"도 긴긴 사랑, 내내 사랑을 이어받은 멋진 점진
법(漸進法)이다. 기 · 승 · 전 · 결(起承轉結)의 4단 논리 형식으로 볼 때에는 이 중장이
바로 '승 · 전'에 해당된다.
비슷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
" 사랑이 어떻더니 두렷더냐 넓엇더냐 / 기더냐 자르더냐 발일러냐 자일러냐 / 지멸
이 긴 줄은 모르되 애궂을 만하더라(작자 미상)"
" 밭일러냐 자일러냐"는 몇 밭이나 되더냐, 한자밖에 안되더냐.
"지멸이"는 매우 지리하게의 뜻.
사랑을 낱낱이 모아
사랑을 낱낱이 모아 말로 되어 섬에 넣어
크고 센 말께 허리 추켜 실어 놓고
아이야 채 한번 제겨라 님의 집에 보내자
<감 상>
님에 대한 나의 이 사랑을 낱낱이 모아서 그것이 얼마나 되나 말로 되어 섬에다 넣은 후,
크고 힘센 말에게 허리를 추켜 가면서 잔뜩 실어 놓고, 한번 크게 채찍질을 해서 님의
집으로 보내자꾸나. 그것을 님이 실제로 보면, 내 사랑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 알아보고,
그 백분의 일이라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눈에 보이게끔 구체화한 데 시상(詩想)의 기발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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