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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2 02:35
 조회 :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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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부임지에서의 추억
- 이정자
나는 교직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리고 가르치는 직업을 좋아한다.
나는 대구사범학교(대구교육대학교 전신)를 졸업하고 20살의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여교사도 귀했고, 특히 시골학교는 20-30%도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도 높았고,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사를 존중할 줄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곤 한다.
나의 자취방은 동산을 끼고 있는 동향의 아늑한 방이었다. 미닫이를 사이에 두고 두 개가 나란히 있어 생활하기에 편해서 아주 좋았다. 윗방은 자취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부터 이부자리까지 다 두었고, 거처하는 방에는 책상과 책만 두니 깨끗해서 좋았다. 내 방에서 바로 보이는 동산에는 커다란 노송이 한 그루 있었고, 달이 뜰 때면 노송에 걸려 있는 달그림자를 보고도 시각을 알 수 있었으며, 노송을 지나가는 달을 보고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이면 햇살이 창문을 밝혀주어 아침잠을 일찍 깨워 주고 동산에서는 참새들이 일찍부터 노래를 불러주어 생기가 넘치는 아침을 맞이했다.
자취생활이란 것은 귀찮은 면도 있지만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 매력적이기도 하다. 적어도 하숙집에서 맛볼 수 없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나의 입에 맞게 해 먹을 수도 있고, 자유자재로 시간을 활용하고, 조절할 수도 있고, 친구가 자유로 드나들 수도 있고, 자유로 얘기를 나눌 수도 있어서 좋다. 또 밤을 새울 수도 있고, 늦잠을 잘 수도 있다.
내가 자취생활을 하니까 그 동네에 있는 고학년 아이들이 가끔 들리곤 했다. 여자아이들 보다 남자아이들 몇몇이 모여서 잘 왔다. 특히 학교에 갈 때는 줄을 지어 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곤 했다. 그만큼 아이들이 순수하고, 교사를 따랐고 좋아했다. 자기네 동네에 선생님이 산다는 그 자체만이라도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10여분 되는 학교 길을 걸어오면서 아이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집에서 일어난 일에서부터 동네일이며 심지어 선생님들이 퇴근 후에 하는 일까지 들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어느 사이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특이한 음식을 했다든가 자기들이 맛있는 반찬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자취하는 나를 위해서 잘 갖다 주었다. 그래서 반찬을 내가 준비하지 않고도 밥만 해서 먹을 때가 꽤 많았다. 그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을 대접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주인집에서도 마음을 많이 써 주었다. 푸근한 인심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동네 어른들이 나를 보고 ‘진짜 서울 양반’이라고 했단다. 그 이유는 내가 어른들 앞을 지날 때 항상 고개를 숙이고 가더란다. 사실은 그 때 나는 눈이 근시이면서도 안경을 끼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만 끼었다. 그러니 멀리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어서 아예 머리를 숙이고 다녔다. 그것이 시골 어른들께는 좋은 인상을 준 것이다. 그리고 그 동네가 반촌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내 교사 생활의 첫걸음,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혀 지지 않는 초임지에서의 추억의 한 자락은 바로 ‘호박떡에 얽힌 사연’이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자리를 깔아 놓고 책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 “선생님요-” “누구니?” “오규라요” 오규라는 아이는 우리 반 아이가 아니라 그 때 5학년이었는데 그 동네에 살았다. 내가 출근할 시간이면 아이들과 모여서 함께 학교로 가는 학생 중 하나이다. 그래서 다른 반 아이지만 그 동네 아이들 이름을 거의 알고 있다. 밤늦은 시간인데 놀러온 줄 알고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에 오고 집에 가서 자라고 했다. 그래도 가지 않고 저희들끼리 수군수군 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다시 나는 말했다. “시간이 늦었지. 오늘은 가고 다음에 와 -. ”하고 재차 말했다. 그래도 가지 않는 눈치였다. 그 다음은 나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이어 “ 선생님요, 문 좀 열어봐요 -” 했다. 나는 귀찮은 듯이 ‘가라니까 그러네-’ 하면서 펴놓은 이부자리를 대강 개어서 윗방에다 갖다 놓고 문을 열었다. 한 7명의 남자아이들이 그 추운 겨울밤에 와 있었다. 무엇을 내 놓으면서 오규가 말했다. “집에서 떡을 했어예, 따뜻할 때 선생님 잡수시라고 갖고 왔어예-” 하는 것이었다. 따끈따끈한 것이 나의 손으로 넘어왔다. “선생님 밤늦게 와서 죄송합니다예 -”하고 부리나케 그들은 갔다. 들어오라는 말한 마디 할 여유도 없이 그들은 사라졌다. 방에 들어와서 펴 보니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방금 한 호박떡이었다.
늦은 시간 조촐한 참에 얼마나 맛있게 먹어본 호박떡인지 나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 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나는 지금도 귀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나 선생님을 존경할 줄 알고 귀한 직업으로 생각해 주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교직에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적은 마음 하나하나가 뭉쳐서 나에게는 크게 다가와 내가 대학에 진학하고도 그 시절을 많이 그리워했다.
지금도 그 옛날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첫 교직 생활에서의 추억이 생각날 때면 “그 때가 참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교사를 지극히 따라주는 학생들이 있었고, 교사를 지극히 존경해 맞아 주는 학부형과 동네 어른들이 있었고, 서로 존경해 주는 동료교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당한 교사의 길을 걷도록 바르게 가르치고 사랑으로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이 계셨다.
지금은 내가 대학에 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내가 교직을 다시 택한 이유도 초임지에서의 그 아름다운 추억과, 그 옛날 사범학교 시절 선생님들께서 우리 학생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리의 인격을 존중해 주었으며 우리를 미래의 선생님으로 잘 가르치고 지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교직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그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나를 뒤돌아보며 “다시 태어나도 나는 교직을 택하리라”고 지금도 학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2010, [이대 동창 문인 수필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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