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있는 한옥에서 운치 있게 살고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1

세월이 역행하여 추억을 그릴 때면

온 식구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하던

어릴 적 모든 식구들 영상으로 스친다.

스치는 영상 따라 고향을 찾아가면

호롱불 화롯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이들 장기자랑에 옛이야기 꽃핀다.

꽃피는 옛이야기 하나 둘 듣다보면

시공을 훌쩍 넘어 다가오는 영상들이

드넓은 대청마루서 어린 나를 반긴다.  

   어릴 적 우리 집을 꿈속에서 가끔 본다. 앞마당 해 그림자는 나의 시계 바늘이고 기둥은 고무줄놀이 버팀목이 되었다. 혼자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놀이에 왔다갔다 손뼘재기, 이 놀이 저 놀이를 나 홀로 지어보고, 그렇게 혼자 놀아도 해 그림자는 기울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우리 집을 그려보며 격 있는 한옥지어 운치 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확 트인 대청마루서 시조 한 수 읊으며 운치 있게 살고 싶다.

   결혼 후 주택과 아파트를 넘나들며 몇 번의 이사를 했다. 그래도 추억에 남는 것은 주택이고 그 시절의 생활이 좋게 기억에 남는다. 1977년 막내가 태어나던 가을에 잠실 주공아파트에서 중곡동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덩굴장미가 가득 피었고, 마당가엔 대추나무, 매화나무, 단풍나무가 있었고, 봉당 앞엔 무궁화, 라이락이 있었다. 마당엔 금잔디와 모란정원이 있었다.

   봄이면 정원에 봄꽃들을 심으며 봄맞이를 하고 마당가 나뭇잎들은 연둣빛으로 피어나고 매화는 새봄에 일찍 피어난 것으로 기억한다. 대문 옆에는 황매가 피어났고 그 반대쪽엔 분홍매화가 피어났다. 노랑과 분홍이 대조를 이루며 대문을 환하게 했다. 4월이면 보랏빛 라이락 향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담 밑엔 덩굴장미가 담을 감쌌다. 무궁화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긴긴 날 보랏빛 꽃을 수없이 피우고 지우고 해서 매일매일 떨어진 꽃을 청소하기도 했다. 무궁화는 해가 뜰쯤에 피어서 해가 지면 오물아 들면서 밤사이에 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새것이 피고 지고, 피고지고 여름에서 가을까지 간다. 그래서 무궁화는 끈기가 있어서 좋다.

   5월이면 덩굴장미가 가득 피어 그 향기가 온 마당에 가득했다. 어느 날엔 수도 검침원이 쪽문을 들어서며 장미 향기에 취해 쉼 호흡을 하며 “아!~ 좋다~ ”고 긴 숨을 쉬었다. 막내가 어릴 때라 주로 집 마당에서 바둑이 ‘안나’와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그 바둑이는 친구가 보내 준 진돗개 품종이었다. ‘안나’는 순하고 영리하고 귀여웠다. 자기 분비물을 보인 적이 없다. 아마 단풍나무 밑 흙으로 티 없이 처리하는 것 같았다. 물론 마당에서 자유스럽게 길렀다. ‘안나’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참새들이 떼를 지어 와서 먹기도 했다. 어떨 때는 ‘안나’와 참새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안나’가 자기 밥이라고 쫓아가면 새들이 우루루 날아가고 ‘안나’가 다른 데로 가면 새들이 날아들고 수없이 하는 것을 보며 자기들끼리도 놀이인양 재미로 하는 듯 했다.

   가을이면 대추나무에서 굵은 대추를 가득 따기도 했다. 조카들이 오면 아이들은 정원을 중심으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온 마당을 휘 젖기도 했다. 주택은 뭐니 뭐니 해도 마당에 나와 자연을 감상하며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큰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엔 마당에 탁구대를 설치하여 친구들과 탁구를 치기도 했다. 그 집에 살 때가 좋았다고 지금도 큰아들은 추억한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 그 전경을 볼 수 있으랴. 마당가엔 옹달샘만한 작은 연못이 있고, 수도가 있어 청소와 나무에 물주기도 편리했다.

   눈이 가득 나린 겨울이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 때엔 지금같이 과외도 별 안한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야자까지 열심히들 시킨 것 같다. 위 두 아이들은 과외공부를 별로 안 하고 대학을 다 갔으니 말이다. 80년대는 경제적으로 호황이었다. IMF 이전 몇 년 간이 경제호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곳에 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주택에서 살 때가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단층 주택에서 즐기며 살았는데 90연대에 접어들면서 주위 집들이 다세대 주택으로 혹은 상가빌딩으로 3-4층씩 올라갔다. 이웃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층에서 그대로 살 수가 없었다. 집을 팔고 아파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탁구대는 노인정에 갖다 주고 피아노도 학원에 넘겼다. 아파트라는 공동생활에서의 제약이 직접 다가왔다. 주택은 넓은 공간에서 자유스러워 좋았는데...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아파트의 편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아파트 생활은 첫째 집을 비우고 며칠간씩 여행을 다닐 수 있다.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다. 집안만 청소하면 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한 점이고, 다른 한 마음은 마냥 드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가에 나무도 가득 있고 꽃이 가득한 정원이 있고 대청마루가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지금도 꿈속에서 가끔 보는 어린 시절 우리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 아님 아이들이 어릴 때 살았던 그 주택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같이 살고 싶다. 드넓은 대청마루에서 시조 한 수 읊으며 운치 있게 살고 싶기도 하다.

_ 2019년 제32번째  이대동창문인회 연간 수필집 게재 -

표제 : 그 때 그방울은 어디로 갔을까

출판사:도서출판 한아름(02-2268-8188)

발행일 : 2019.10.10

책값: 15.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