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자의 좋은 시조 감상  

허리각도

           정진상

 

널린 표 모으느라 허리가 휘청한다

허기져 구걸할 땐 구십 도로 꺾이더니

잔치가 끝나고 나니 배가 불러 못 굽혀.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감성의 동물이다. 감성은 창작의 바탕이 된다. 깨끗하게 드리워진 감성이 어떤 대상에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인 감정과 느낌을 불러 올 때 시심이 싹튼다. 그리고 그 대상을 관조의 대상으로 하여 시인의 경험과 지식에 시의를 담아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한다.

 

대상을 향한 관조의 정서는 시인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하나의 대상을 두고도 각기 다른 정서와 내용의 시가 표출되는 것을 본다. 위 시조는 시조문학 지난 여름호에 실린 정진상 시인의 시조 <허리각도>이다. 곧 지난 4월 총선 때 경험한 후보들의 모습을 두고 읊은 시조이다. 그래서 가까운 맘으로 공감을 갖고 이를 다시 찬찬히 감상하며 지난 그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4.15로 총선은 끝났다. 코로나와 함께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러쿵저러쿵 어디는 부정선거를 했다니 어디는 고소를 했다니 말이 많다. 곧 이 시조는 현 정치 풍토 내지 정치인의 자세를 비판한 풍자시이다.

선거철이 되면 표심을 잡기 위해 건널목마다 네거리마다 이른 아침부터 어깨띠에 후보자 이름과 번호를 달고 출근길의 유권자가 보건 안보건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이 도입부 초장에서 ‘널린 표 모으느라 허리가 휘청한다 / 허기져 구걸할 땐 구십도로 꺾이더니’ 이다. 그때엔 당당하게 철면피가 된다. 넓은 지역구에 흩어져 있는 표를 모우기 위해선 열심히 유권자를 만나서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명함이라도 돌려야 후보자는 그런대로 마음이 편하다. 그러한 표현이 초장과 중장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자세가 선거가 끝나면 180도로 변하는 것이 정치인의 행태이다. 이를 비판한 것이 종장 ‘잔치가 끝나고 나니 배가 불러 못 굽혀’이다. 배가 고플 땐 저절로 앞으로 허리가 굽혀지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이고, 배가 부르면 앞으로 허리를 굽히기가 힘이 든다. 이를 표심에 비유하여 읊은 것이 종장의 표출이다.

 

정진상 시인은 건국대 의과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하셨다. 시조집『청진기에 매달린 붓』은 바로 의사로서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속담이 있듯이 정진상 시인은 현실 사회를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를 단시조 45자 내외로 압축하여 표출하는 표현능력 또한 뛰어나다. 이는 시작(詩作)을 향한 시인의 마음과 정신이 순수하게 타오르는 투명한 열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의 세계는 한 줄의 시구(詩句)에서, 한 편의 단시조에서 더욱 빛이 난다. 시인이 표출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한 독자에게도 풍성하게 다가온다. ♣  (시조문학.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