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2,361
|
 |
3,485 |
 |
5,069 |
 |
3,083,192 |
 |
|
|
|
|
|
|
|
작성일 : 11-11-03 11:48
 조회 : 1,820
|
그 때를 생각하면
사랑의 개념에는 4가지가 있다. 에로스, 스톨게, 필리아, 아가페-. 에로스는 성적 매력과 낭만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이성간의 사랑이고, 스톨게(στοργη)는 혈연관계에 기반을 둔 가족간의 강한 사랑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그 으뜸이다. 물론 형제자매간의 사랑도 포함된다. 필리아는 에로스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정이라고 할 수 있고, 아가페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 태어나고 스톨게에 의해서 양육 받으며, 필리아에 의해서 인격이 형성되고, 아가페에 의해서 완성된다."고도 한다.
여기서 필자는 스톨게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부부는 무촌이지만 부모 자식간은 1촌이다. 형제간은 2촌이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피를 나눈 관계이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은 천륜으로 끊으래야 끊을 수 없고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귀한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내가 느끼고 받았고 나 또한 체험했다.
나는 중3때 크게 아팠다. 수술 후 후유증으로 한 학기를 온전히 쉬었다. 4월 7일에 아파서 여름 방학을 하고 학교에 갔으니 온전히 1학기를 공친 것이다.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안다. 그 때는 4월이 학기였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친구 셋이서 찹쌀 팥떡을 사 먹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날 밤부터 아프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맹장이라는 진단으로 ‘동산 기독 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했다. 보통 1주일이면 퇴원을 하는데 나는 10일 만인 금요일에 퇴원을 했다. 3학년이기 때문에 학교공부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월요일부터는 무리를 해서라도 학교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퇴원을 하고 하루가 지난 토요일 밤, 밤새도록 열이 나고 아팠다. 내가 처음 아팠을 때 왕진 온 이웃 ‘공병원’ 에서 또 왕진을 했다. 수술부위에 이상이 생겼다. 그 뒤 나는 2개월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나을 듯 말 듯 하면서도 내 수술 부위는 아물지 않고 이물질이 계속 나왔다. 담당 의사도 지쳤는지 대학(경북대 병원)병원에 가보라고 아버지께 권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나는 엿듣고 말았다. ‘아무리 해도 자기로서는 어려울 것 같으니 대학병원에는 수련의들도 있으니 연구대상으로도 치료해 볼 것이니 대학병원으로 가 보시라’고 했다. 나는 집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다음날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나을 테니 걱정 말아라’고 했다. 며칠을 더 다니다가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의학 쪽으로 마음을 돌리셨다. 나의 아버지는 한의원이셨다. 나의 외할아버지도 한의원이셨다. 용하다는 한 의원을 부르시기도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도 오셨다. 아버지께서 쓰지는 약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는 나의 병을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 다 써 보신 것이다. 급할 때는 하루에도 8첩을 닳으셨다고 하셨다. 내 자식이니까 그렇게 약을 쓰셨지 남 같으면 그렇게 지어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믿고 쓰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병원에서도 못 고친 병을 아버지의 정성과 치료로 나는 서서히 낫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에서 무살이 없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면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 간 나는 몸무게가 많이많이 줄었고 치료 중에는 땀이 나도록 아픔을 많이많이 참아야했다. 약도 별별 약을 다 먹어 보았다. 쓴 약이 그래도 제일 먹기에 괜찮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새벽마다 촛불을 켜고 청수를 떠 놓고 미륵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앉아 있을 힘도 없어서 항상 아버지는 나를 안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께 기대어 앉아 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막내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께 어려움 없이 더 기대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다. 그리고 내 학문의 길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시기도 하셨다. 나이가 더해 갈수록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 물론 어머니께도 -.
내가 결혼 후에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크게 아팠을 때에도 아버지는 늘 용기를 주셨고 또 약을 직접 조제해 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후원으로 오늘의 내가 서게 된 것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23년 동안 큰 조카(큰 오빠 아들)와 함께 사시면서 흐트러짐 없이 항상 책을 벗 삼아 사신 나의 아버지 愛汕 李相厚선생이시다.
이제는 나도 엄마 나이가 되었고 내 딸도 그 때의 내 나이를 넘겼다. 사람은 자기 나이만큼 부모의 마음을 안다 했으니 이제야 나의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나의 딸은 그 때의 내 마음이니 엄마 마음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부모의 마음이 된 적이 있다. 내 딸이 대학교 4학년 때이다. 1992년 4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딸이 친구의 이모란 신원 불명의 전화 한 통을 받고 고개를 갸웃하며 나갔는데 4시간이 지난 저녁 8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파출소에 연락을 했더니 안기부 사람들이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사방으로 전화를 하여 겨우 간 곳을 알게 되었다. 그 때야 딸이 학생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럴 수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3년간 몰랐다. 이튿날 형사들이 와서 책들을 다 갖고 갔다. 나는 북한 관련 서적들이 있어도 그 당시는 해금서적들이 많이 나오던 시기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책들을 읽기도 했다.
딸이 나간 후 나는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아니 먹지를 못했다. 밤잠도 잘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손도 떨렸다. 교회 권사님이 검정 깨죽을 써 오셔서 겨우 그것을 좀 먹었다. 교회 에서 목사님도 오셨다. 찬송가 395장을 부를 때는 눈물이 쏟아졌다. 1주일이 지날 때쯤 연락이 왔다. 면회가 허락되었다. 그 때 딸아이의 옷을 사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옷을 산 적이 없었다. 만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이라도 행복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도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빨리 나올 수만 있다면 일반 변호사라도 선임하려고 했다. 그래서 형사들과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도 갔다. 결국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행동을 하는 쪽으로 선회되어 10분의 1수임료도 안되는 민변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결과는 같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재판 과정을 마치고 100일 만에 나왔다. 성경을 다 읽자 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결혼해서 남매를 기르며 신앙생활 잘 하며 잘 살고 있다.
내 딸아이로 인한 그 어려운 체험이 없었다면 나는 부모의 마음을 잘 몰랐을 것이다. 죽음이라도 바꾸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그러한 마음이셨기에 내가 아플 때 온 정성으로 간호해 주시고 치료해 주셨을 것이다. ‘그 때 만약 내가 어떻게 잘 못 된다면(죽는다면)아버지께서는 집을 떠나신다.’고 하셨다. 내가 건강을 회복하고 학교에 다시 나갔을 때 그 공백기의 공부를 가르친 것은 작은 오빠였다. 오빠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도 잘 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더해 갈수록 부모님의 사랑, 오빠의 사랑 곧 가족간의 강한사랑을 의미하는 스톨게(στοργη)를 4가지 사랑 중에서 제일로 꼽는다.♣♣♣
(2009년 [이화동창문인수필집]에서)
|
|
Total 64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