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시조문학상> 심사평
** 3차까지 심사를 거쳤다. 이름을 안 쓰고 작품만 심사위원들께 보내어 작품과 등수를 부탁했다. 2차에서 동점이 나와서 2명을 선정했다. 3차에서 역동 선생 관련 시조로 심사한 결과 <사인암의 서책>이 선정되었음을 밝힌다. **
모든 문학은 ‘잘 쓴 글’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잘쓴 글’ 중에서도 가장 짧고도 함축적이며 음악적 리듬을 담고 있는 장르가 시조다. 짧다는 것은 할 말을 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제되었으며 나아가 함축적이고 효율적 표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더구나 시조는 삼 장 육 구 십이소절이라는 변경할 수 없는 형식을 지키면서 쓰는 글이다. 그것이 때로는 어렵거나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면 음악성 곧 율격이 살아나고, 기,서,결, 기,승,전,결은 물론 변증법적 논리전개도 다른 어떤 형식의 시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느낌과 생각을 서정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표현하기에 아주 탁월한 시 형식이다. 이러한 시조를 형식에 갇혀 있는 느낌이 전혀 없이, 자유로운 서정의 세계를 훨훨 날고 있는 느낌이 들게 쓴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역동시조 문학상>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단법인 한국시조문학협회에서 월하시조문학상과 함께 가장 권위 있는 시조문학상이다. 그러므로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임했다.
심사기준은 시조의 기본적 율격과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인간의 보편적 사상과 감정이 예술적으로 잘 형상화 되었는가 하는 점을 중시했다. 아울러 언어운용의 기초가 단단한지 그리고 얼마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기발하되 적절함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하는 점도 살폈다.
심사위원들은 위의 관점을 바탕으로 숙고를 거듭한 결과, <사인암의 서책>을 수상작품으로 선정하는 데 일치를 보았다.
<사인암의 서책>은 단양 팔경의 하나로 남소천가에 높이 50여 미터에 이르는 수직 바위들이 빚어내는 사인암의 절경과 그것을 배경으로 신선처럼 소요하던 역동 선생의 발자취를 그려내고 있다.
첫수는 역동 선생이 깨우치고 가르쳐, 나라 구석구석의 선비들에게로 번져가는 성리학 발전의 추상적 사실을, 깎아지른 듯 상하좌우로 뻗어 있는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배치로서 형상화하고 있다. 더구나 그 바위들이 마디마디 자라난다는 빛나는 상상력은 성리학 발전의 역동성을 감각적으로 변용(變容)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사인암 발치에서 관조(觀照)에 든 역동 선생의 이미지와, 그가 부르는 시조가락의 여운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둘째 셋째 수는 첫수의 디테일로, 역동 선생의 학문에의 열정과, 인간의 한계에 관한 고뇌와 대범한 수용의 자세에 대하여, 묵상하며 공감하는 화자의 감동을 멋지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에 <사인암의 서책>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본상에 올렸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이정자 김석철 김태자 신웅순 이석규(글)
역동문학상
사인암의 서책
우형숙
청솔을 둘러매고 층층이 쌓인 서책
수직과 수평으로 마디마디 자라는 듯
사인암 발치에서도 누워있는 탄로가
눈 녹인 봄바람이 내게도 불지 않아
귀밑에 수북하게 흰 서리 앉은 채로
사인암 서책 살피며 발자취를 더듬네
한반도 역사 속에 성리학을 들여와서
한 달여 두문불출 易學(역학)을 터득하여
제자를 가르치시어 義理學問(의리학문) 길텄다.
역동문학상 당선소감
- 우형숙
최근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등장으로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문학작품도 쓰는 이 시대에 AI가 절대 접근 불가한 은유와 독특한 이미지 전개로 역동 우탁 할아버지를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기회로 700여년이란 시간의 갭을 훌쩍 뛰어넘어 먼 조상님을 뵙고 온 마음입니다.
사실 미흡한 후손으로서 조상의 위상에 누가 될까하여 그동안 감히 역동문학상에 공모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시조계의 큰 어른께서 권유하여 응모를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받게 되다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2000년 5월, 시조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뒤 시조의 세계로 걸어 들어온 지 23년, 시조의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시조시인들과 금싸라기 경험을 향유하며 행복했습니다. 그 귀한 경험치를 살려 앞으로 더욱 뜻 깊은 시조 쓰기에 매진하려 합니다. 세상 저편, 시온 동산에서는 총성이 멎지를 않고 생사가 불투명한 나날에 지옥이 따로 없을 터인데 저는 문학상 당선 소식에 행복해하고 있으니 죄스럽기도 합니다. 그곳에 속히 평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우리 문학이 세계인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