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HOME    공지사항    이야기마당    음악감상실    회원리스트    최신글보기    일정관리    운영진코너  

 

 


1,153
4,182
4,354
2,879,691

 

제작자 사이트가 뜹니다

 

 
작성일 : 03-05-14 18:07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1/2)
 글쓴이 : 야초 손상철
조회 : 3,104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
김 용 희


1. 분단문제와 동시문학의 면모

분단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안석주요, 안병원곡)이다. 「우리의 소원」은 동심의 정서를 통해 우리 민족의 통일 염원을 가장 보편화시킨 동요이다. 동심의 정서는 이념의 벽을 넘어 인간의 본성으로 되돌리는 강한 향수를 유발하는 힘을 지닌다. 하지만 “이 정성 다해”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을 이루자는 이 동요가 불리어진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는 여전히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시대를 살아오면서도 보다 가슴 아픈 일은 앞으로 얼마나 또 그렇게 살아야 분단시대가 마감할지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일 터이다.
분단시대를 체념하듯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지난해 뜨거운 감동을 이루어낸 사건이 있었다. 남한 기업인이 두 차례에 걸쳐 소떼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일이다.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그는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께서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떠나, 이제 그 한 마리의 소가 천 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것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그의 감회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전설같이 금강산 가는 뱃길도 열렸다. 이 일련의 사건은 90년대 초 독일이 이루어낸 통일의 감격만큼 감명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것이 감명 깊은 충격이라는 것은 폐쇄적이면서 이중적 현시를 펴온 북한이 조금이나마 개방의 문을 열었다는 놀라움이기보다 동서화해로 조성되고 있는 세계질서 개편 과정에서도 왜 우리만은 이토록 극단적인 분단상황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한탄과 얼마나 더 그렇게 분단시대를 살아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현실에 대한 반향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분단시대는 일제 식민지시대를 겪어온 우리 자신에 대해 제대로의 반성도 해보지 못한 채 민족과 국토의 분단뿐 아니라 이념과 사고의 분열까지 초래해 왔던 너무도 비극적인 역사체험인 것이다. 이 역사체험이 비극적인 것은 분단상황이 우리 민족끼리 불신의 골을 깊게 파놓은 체제 모순으로 고착화되어,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제 모순들이 파행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파급현상에 기인한다. 곧 우리의 분단현실은 분단시대를 인식하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일체의 갈등, 불안과 깊이 맞물려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분단문제는 우리 시대에 직면해 있는 민족의 가장 절실한 해결 과제여서 언제나 정부 정책의 예민한 부분으로 제일선에서 민감하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민감한 민족적 과제를 앞에 놓고 우리 동시문학사를 점검해 볼 때, 동시문학이 분단문제에 대해서 열악한 문학성을 드러내었다는 점을 먼저 반성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우리 동시문학이 분단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학적 재제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분단문제를 문학화하는 과정에서도 대개의 경우, 분단의 비극을 감상적으로 대체하거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낭만적으로 표출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소재중심 차원에 머물러 왔던 실정이다. 언제나 분단문제를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38선, 휴전선, 판문점, 비무장지대(DMZ), 통일전망대, 끊겨진 철도와 멈춰 선 기차, 이산가족 등 분단의 상징들을 소재로 제시하며 분단에 대한 안타깝고도 비장한 감정을 드러내는 감상주의적 차원에 머무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통일 염원과 그 환희를 표출하는 낭만주의적 이상만을 조성해 왔을 따름이다. 진정한 분단상황의 질곡과 심각한 민족분열의 위기감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분단극복 의식이 부재한 형편이었다.
한마디로 동시문학에서 분단문제에 관한 시관(詩觀)은 현격하게 소재가 시의 내용과 시인의 의식을 규정해 온 현상이었다. 그것은 순수성과 단순성이라는 동시의 장르적 특성에서 온 또 다른 제약에 의할 듯하다. 하지만 모든 시적 제재마다 똑같이 적용되는 동시가 갖는 특수성이 유독 분단문제에 대해서만은 소재중심 차원에 머무르며 열악한 시정신을 드러내게 된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크게 작용된 듯싶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일이 이데올로기라는 심오한 문제와 모순된 현실의 문제를 깊이 있게 관여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분명 어린 독자는 분단문제라 하며 의레 분단의 상징적 소재 정도만을 떠올리는 단순한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립의 산물인 분단문제를 시화하는 과정에서 예술성과 순수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겠는가라는 시인의 의식이 개입된다. 동시문학이 동심을 드러내는 순수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시인에게 모순된 현실을 다루는 시적 제재는 창작과정에서 경직된 교육성을 도출시키거나 어떤 의식화된 경향성을 드러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성은 분단문제를 시적 형상화하는 과정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된다. 따라서 동시에서 분단과 통일에 관계된 것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제재가 바로 분단이 만들어낸 상징물들일 수밖에 없다. 이 제재는 시적 상상력을 규정하는 상투성과 편협성 그리고 관념성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동시문학은 동심의 문학이자 이미지의 문학이며, 가진술의 문학이라는 문학적 인식이 이런 상투적인 제재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우리 동시문학이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와 모순된 현실을 담는데 매우 편협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것도 소재중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처음부터 동시문학은 아이들이 소유한 천성인 동심의 탐구를 통한 가치구현이란 순수성의 논리로 적용되어 시인에게 시대 반영의지나 역사의식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되었다. 그 결과 동시문학에서 분단문제는 그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감정 표현이나 통일을 염원하는 시정신에서 그 존재의의를 찾아야 했고, 분단문제로 파급된 모순의 제 문제를 천착하거나 통일을 준비하는 시관으로 폭넓게 확대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지구촌의 정보화·개방화를 구축해 가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늦게나마 동시문학도 우리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당면한 민족사적 과제를 필연적으로 모색해야 함을 각성하게 된다. 이 각성은 그 동안 편협하고 소극적이었던 분단문제를 어떻게 감당하고 동시로 형상화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해 있음을 뜻한다. 이를테면 우리 동시문학도 우리의 불행한 역사의 근원을 바르게 제시하고 현실의 갈등과 제 모순을 포용하는 문학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궁극에 이른다. 거기에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 북한관에서 포용적 북한관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오늘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에 합당한 시관의 정립이 시급히 요청된다. 동시문학을 통해 민족모순인 분단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동심의 정서로부터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앞으로 도래할 통일시대를 예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침햇살』(1998, 겨울)에 정리된 동시들을 자료 삼아 지나온 반세기 분단문제를 다룬 동시의 면모를 살펴보며, 21세기 동시문학의 새로운 과제를 상정해 보고자 한 것이다.


2. 시대적 인식과 분단에 대한 시적 대응

동시문학에서 분단문제에 대한 시적 인식은 1946년 분단이 진행되던 시기와 함께 대두되었다. 그러나 6·25란 참혹한 민족의 비극적 전쟁이 일어난 이후 50년대는 거의 분단 현실에 대한 시적인 대응이 제기되지 않았다. 그것은 동시문학이 참담한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까닭이다. 오히려 6·25 이후에는 동시보다 동요의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해방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새노래로 발표된 「새나라의 어린이」(윤석중요 박태준곡)가 불행한 시대에서 ‘새시대 새일꾼’의 상징적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비극적인 소재는 가급적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후 70년대 들어 7·4공동성명을 전후해 분단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다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분단문제를 다룬 동시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90년대 이전까지의 동시문학은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고, 또 그 진행과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응했을 따름이었다.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시적 대응 방식은 대략 세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곧 분단현실의 서러운 확인, 분단극복에의 기원, 이산의 아픔 등이 그것이다.

1) 분단현실의 서러운 확인
우리 나라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우리는 일제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었고, 그 해방이 곧 독립인 줄만 알았다. 우리 나라에 대한 연합군의 의중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소 연합군은 우리 나라를 단일한 통일국가로 만들지 않았다. 일제의 항복 후 맥아더 원수가 발표한 일반명령 1호 조치에 따라 한반도는 38도선을 경계로 양분되어, 미군은 이 경계선 남쪽에서 소련군은 북쪽에서 각각 일제의 항복을 접수했다. 일제 항복의 접수를 위한 군사적 장치가 결국 우리 나라의 분단을 초래하고 영구분단으로 진전되고 말았다. 이미 북한에서는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아예 지주를 없애고, 7월에는 산업국유화 조치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시하며 분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 사회화 과정은 공산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노정이었다. 이렇듯 우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분단의 현장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동시가 박화목의 「38도선」이다.

솔밭길 산비탈길
사십 리 길은,
초생달이 기우는
으스름 밤길.

내 나라 내 땅 안에
내 길 걷는데,
무엇이 무서워서
밤을 새워 걷나요.

서러운 국경
들메 참새들도,
하늘의 아기 별들도
모두 잠들었는데……

산고개를 살근살근
기어 넘고요,
풀숲 새 몰래몰래
걸었습니다.
―박화목의 「38도선」전문 (『소학생』1946, 5)

「38도선」은 국토 분단의 비극적 현장성을 드러낸 동시문학의 최초 작품으로 주목된다. 이 동시가 발표된 시기는 북한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산업국유화 조치를 실행하는 공산화의 진행과정이다. 「38도선」은 그런 공산화 과정을 피해 “들메 참새들도/하늘의 아기 별도/모두 잠”든 밤을 택해 남하해야 하는 시적 화자의 통한의 목소리가 절절히 배어있다. 그 통한의 목소리는 바로 무엇이 무서워서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걷는데 밤을 택해 남몰래 가야만 하는가라는 반문으로 제기된 2연에서 절정에 달한다. 해방과 더불어 이념이 서로 다른 강대국에 의해 강제되었던 분단의 부산물이 38도선이다. 그래서 38도선은 “산고개를 살근살근/기어넘”고 “풀숲 새 몰래몰래”걷지 않으면 안되는 ‘서러운 국경’이 되고 말았다. 그 38도선을 ‘서러운 국경’이라고 이름한 것도 어떠한 민족적·정치적·경제적·지리적 차이에 근거한 분단이 결코 아니었음을 대변하고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서러운’이라는 시어 속에는 38도선이 6·25의 동족상잔을 불러오고 분단을 고착화시킬 줄 몰랐다는 상황적 지표를 포괄한다. 그 ‘서러운’에는 당시 풀숲 새를 몰래몰래 넘어 왔을 뿐 머지않아 다시 돌아갈 것으로 믿었던 ‘국경’ 정도로 인식했던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38도선은,

북쪽 동무들아
어찌 지내니?
겨울도 한발 먼저
찾아왔겠지.

[…중략…]

너희들도 우리가
궁금할 테지.
삼팔선 그 놈 땜에
갑갑하구나.
―권태응의 「북쪽 동무들」1, 3연 (『감자꽃』글벗집, 1948 )

에서처럼 단지 북쪽 동무들과 어울릴 수 없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갑갑한 존재물일 뿐이었다. 이렇듯 해방과 함께 등장했던 38도선은 그 당시에는 ‘서러운 국경선’으로부터 ‘갑갑한 존재물’로 인식되었다. 이 서럽고 갑갑한 외세의 부산물이 6·25란 그 무섭고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다 줄 줄은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다.

2) 분단극복에의 기원
1950년 6·25 이후 동시문학은 분단현실과 통일에 대해서 뚜렷하게 쟁점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채 60년대를 지나쳐 온다. 다만 38도선 대신 가로 놓인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강물과 새들은 서로 넘나들고 진달래꽃은 남북한 구별없이 일제히 피고 지는데 우리 민족만은 갈라서 있어야 함을 한탄하는 동시가 60년대 낭만적 어조로 유일하게 몇 편 발표될 뿐이다. 윤석중의 「되었다 통일」(『윤석중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2)과 김정일의 「콩 두 알」(『동아일보』1969. 1)이 그것이다. 이 시기는 어두운 분단문제가 거세되고 대신 맑고 밝은 동요와 동시가 대거 발표되었다. 그것은 ‘새나라 새일꾼’의 상징인 어린이에게 어두운 과거보다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화된 방편에서 나라를 재건하는 초석으로 상정된 시정신에 기인할 것이다. 대신 분단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통일의 염원을 동요「우리의 소원」에 실어 발산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70년대 들면서 7·4 공동성명을 전후하여 분단현실과 통일에 대한 문제가 조심스럽게 대두되었다. 반공을 국시로 북한과 대치하여 북을 악으로 적대시하던 시기에 이 공동성명은 온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흥분과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비록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할지라도 이 남북공동성명은 일천만 이산가족에게 가족 상봉의 한 가닥의 꿈을 걸어볼 그 나름의 유효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들면서 가장 눈에 띄는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은 이준관과 박경용의 동시이다.이들의 동시는 모두 새해 벽두에 발표되어 자연을 제재로 삼아 분단현실과 통일에 대한 새해 소망을 기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새해 기원도 이준관은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통일에의 염원으로 표출되었고, 박경용은 분단현실의 비통함에 대한 통곡으로 시화되었다.

휴전선
녹슨 철조망 위에도
아, 끊임없이 펄럭이는
푸르른
남북 없는 깃발의
물결.

마을로, 들로,
휴전선에서 백두산으로
한라산까지
향그런 바람을 타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푸른 불길이
활활 번지는,
초여름 한낮

온통 보이는 것
모두가
초록색 크레용 하나로
꽉차게 그려진
도화지 한 장.
― 이준관의 「초록색 크레용 하나로」4∼6연 (『서울신문』1971, 1)

자연은 위대하다. ‘초여름 한낮’에 자연만은 ‘초록색 크레용 하나로’ 우리 나라를 분단 없는 하나의 통일된 푸르른 세계를 그린다. 휴전선에서부터 백두산,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푸르른/남북 없는 깃발의/물결”을 창출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다. 이 동시는 남북으로 양분된 우리 나라를 휴전선 없이 ‘도화지 한 장’에 푸른 물결을 꽉 차게 그려 놓은 대자연처럼 우리 민족도 푸르른 마음으로 남북한 화해되기를 바라는 통일의 염원을 새해 기원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박경용의 새해 기원은 이준관과 사뭇 다르다.

빛깔이 다른
두 낱의 물이 만나는 자리.
아. 말이 있다면
말도 다르리.
뿌리가 다르고
시늉이 다른
두 낱의 물이 손 잡은 자리.

[…중략…]

아무 거리낌 없이
바다와 강이
하나로 얼리는 자리를
종일 지켜 서서
나대로 생각이 깊다.
동무야!

왜 그런가 몰라.
금 하나 그어 놓고
앵토라진 사람들.
뿌리도, 빛깔도, 말도, 그 무엇도
모두 같은 사람끼리
― 박경용의 「제목 잃은 시」일부 (『새소년』1972, 1)

박경용의 「제목 잃은 시」는 그야말로 새해 벽두부터 안타까운 분단의 현실을 통곡하고 있다. ‘제목 잃은 시’라는 제목 자체부터 그 통곡을 감지하게 된다. ‘제목’을 ‘할 말’로 대치하면 그 의미가 확연해진다. 「제목 잃은 시」란 곧 ‘할 말 잃은 시’라는 의미로 상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는 우리의 분단된 현실을 염두에 두고, “바다와 강이/하나로 얼리는 자리”에 “종일 지켜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생각에 잠기기보다는 차라리 시름에 잠겨 있다는 편이 더 옳은 표현일 듯하다. 이 동시는 “뿌리도, 빛깔도, 말도” 서로 다른 강과 바다라는 자연은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 만나고 화합하는데, 우리는 “그 무엇도/모두 같은 사람끼리” 의미없는 “금 하나 그어 놓고” 앵토라져 살아 가고 있는 사실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왜 그런가 몰라”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어서 시적 화자는 그만 말을 잃고 아예 시의 제목조차 잃어버렸다는 통한을 아프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관과 박경용의 동시 외에 분단의 통한과 고향의 향수를 전쟁으로 산화한 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아프게 증언하고 있는 유경환의 「내 고향 솔내」(『내 고향 솔내』창조사, 1979) 연작동시도 70년대 분단문제를 주요한 관심사로 제기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3) 전쟁의 비극성과 이산의 아픔
80년대 들면서, 분단문제는 전쟁의 비극성과 이산의 아픔을 통해 구체화된다. 먼저 그 아픔은 38선의 무게감을 통해 전달된다. 우리 나라 지도를 그리는 작업은 손동연의 「사회 시간」에서처럼 (『아동문예』1983. 10) 마지막 손질로 “우리 가슴에 아픈 실금 하나”를 빨간 볼펜으로 추가해야만 완성되는, 그야말로 가슴 아픈 작업이다. 그 ‘실금 하나’가 갖는 무게감은 윤삼현의「삼팔선」(『아동문예』1985, 5)에서 토로하고 있듯, 한탄강 옛도로가 바윗돌에 새겨진 삼팔선이라는 “단 세 글자의 무게가/산만큼이나”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오게 한다. 우리에게 그 ‘실금 하나’의 무게가 ‘산만큼’이나 육중한 중압감으로 부대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북한이 확연히 남남이 된 아픔의 무게에 연유할 것이다. 송재진의 「삼팔선을 나는 작은 공」 (『한국아동문학』13집, 1986)에서 남북 대결의 탁구대회를 보며 2.5그램의 작은 탁구공이 남한 대표선수와 북한 대표선수 사이를 오갈 때마다 아버지의 가슴을 때린다는 것도 남과 북이 확연히 남남이 되어 있는 아픔 때문이다. 한 동족 한 가족이면서도 갈라져서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이제는 남남이 되어 대결해야 하는 이런 비극은 전쟁이 남긴 상흔이자 분단의 세월로 이산이 남긴 간극이다.
바로 80년대 들어 분단문제를 다룬 동시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전쟁의 비극성과 그로 인한 이산의 문제이다. 장기화된 분단현실의 비극을 직접 가슴에 와 닿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실향민의 아픔일 터이다. 분단으로 인해 고향을 상실한 실향민의 삶이란 뿌리 뽑힌 삶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80년대 동시문학에서 우리는 이런 이산의 아픔을 다룬 두 편의 동시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의인화를 통해 간접화법으로 의미화한 권정생의 「달팽이3」이고, 다른 하나는 실향민의 아픔을 직접화법으로 제시한 박경종의「팔지 않는 기차표」이다. 이들 동시는 1983년 KBS에서 전개한 이산가족찾기 운동의 맥과 닿아 있다. 1983년 7월 30일 KBS가 생방송한 ‘이산가족, 지금도 이런 아픔이’는 전국을 눈물 바다로 넘치게 한 방송사상 최대 사건이었다. 그 방송을 시발로 장장 4백53시간 45분간의 마라톤 방송으로 이어졌고, 그 이산가족찾기 방송으로 1만1백89가족이 상봉하는 절절한 ‘인간 드라마’가 연출되었지만, 그때 KBS 본관과 광장에 나부꼈던 이산가족찾기 벽보와 피켓들의 물결은 분단민족의 상처를 처절하게 되새기게 했다.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모퉁이 등에 지고 허둥허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간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게 길게 남았다.
― 권정생의「달팽이3」전문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1986)

권정생의 「달팽이3」은 달팽이의 생태를 의미화해서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엄마 달팽이에게 불현듯 닥친 이산의 아픔은 전쟁이 가져다 준 부산물이다. 이 동시는 집을 등에 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며 뒷자국을 남기는 달팽이의 생태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이산의 슬픔을 잘 유추해 놓고 있다. 이때의 ‘눈물 자욱’의 의미는 혈육을 찾는 처절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간접화법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이「달팽이3」에 비해 박경용의「팔지 않는 기차표」는 혈육을 찾는 처절한 외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가
기차표를 사 오라고 하신다.

저! 함경도 홍원 가는
기차표를…….

나는 좋아라고
정거장으로 달려가니

[…중략…]

우리 할아버지 고향인
이북 홍원으로 가는
기차표는 팔지 않는다.

낡은 털모자를 쓰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시는 할아버지도

이북 가는 기차를 기다리시는지
눈 내리는 창 밖만 내다보고 앉았다.

나는
찌부러진 갓을 쓴
정거장을 뒤돌아보면서

내일도 나와 보고
또 모레도 나와 보고…….
― 박경종의「팔지 않는 기차표」일부 (『월간문학』1986, 5)

기차 정거장에서 팔지 않는 기차표도 있다. 북한으로 가는 기차표는 남한의 어느 역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이 동시는 팔지도 않는 기차표를 구하려 애태우는 한 실향민의 기구한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들려준다. 실제 박경종은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하여 홍원초등학교와 홍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6·25때 월남한 실향민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이 동시에서 시적 화자는 ‘어린 나’이다. 하지만 ‘함경도 홍원 가는 기차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할아버지가 바로 어린 나를 내새워 자신의 의지를 발화하는 실제의 화자이다. 이 실제 화자는 어린 나를 빌어 실향민의 아픔과 혈육을 찾는 처절한 외침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발상법을 퍼소나(탈, persona)라 할 수 있다. 이 동시는 퍼소나를 특수하게 사용하여 시인의 태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마지막 연의 “내일도 나와 보고/또 모레도 나와 보고……”라는 구절에서 그것을 감지하게 한다. 그 마지막 구절에서 보여주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어린 나’의 태도이기보다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태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시를 살펴볼 때,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일인칭 화자가 사용되는 경우 시인과 시적 화자를 어느 정도 동일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동시는 시적 화자를 시인과 동일시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 문학이다. 동시를 쓰는 시인은 어른이고 시적 화자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 동시는 어린 아이를 내세워 시인의 체험을 상상력에 의해 변용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팔지 않는 기차표」에서도 이산의 아픔이나 실향민의 고통을 의미화할 때 어떻게 시인의 삶의 경험을 어린 아이의 경험으로 동일시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때 필요한 발화법이 퍼소나이다. 박경종은 퍼소나에 의해 순진한 어린 아이의 감정으로 표현하고, 그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박경종이 직접 화자가 되어 홍원 가는 기차표를 사러 가서 겪은 체험적 고백담을 토로했다면 자전적인 동시가 되어 동시의 미학을 깨뜨리고 실향민의 실감을 상실했을 터이다. 그러나 「팔지 않는 기차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어린 화자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기 때문에 현재 시인이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허망한 슬픔을 독자에게 아프게 전달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인권이다. 이 기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가장 최소한의 권리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이 기본권이 이념에 의해 억압당해 왔다.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민족이 우리 민족뿐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80년대 들면서 발표된 분단문제의 시편들은 전쟁과 이념에 의해 유린된,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최소한의 기본권에 대한 항변이며 절실성이다.

 
 

Total 152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92 不動心/정석원 한양대 교수 소석 06-11 2961
91 시간의 화살과 종말 이상성 07-04 3014
90 인화초 이규임 07-06 3103
89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이정하 09-02 2739
88 행복이 자라는 마음의 뜰 김수자 09-15 2873
87 에궁 참말로 불쌍한 딸들아 / 만은 김종원 (1) 김종원 11-06 2957
86 茶詩를 통해 살펴 본 옛 선비들의 차생활 김종윤 12-09 3263
85 시를 읽는 재미 신경림 05-21 3189
84 [백민 동시] 사진 속의 어머니 햇살처럼 12-03 3008
83 밤 하늘 꽃밭 백민 11-07 3046
82 단추 한 개 (1) 운영자 05-06 3003
81 동시조, 그 아름다운 이름으로 일어나라/ 손상철 이인자 04-17 3705
80 제2회설록차 우리시 문학상 초등부 장려상 수상작(1) 이인자 05-01 3127
79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다 야초 손상철 05-14 3046
78 동시란 무엇인가?/박목월 야초 손상철 05-14 3111
77 동시(童詩)와 유아성(幼兒性)/이원수 야초 손상철 05-14 3074
76 [동시의 지도와 감상]/박목월 야초 손상철 05-14 3089
75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1/2) 야초 손상철 05-14 3105
74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2/2)-김용희 야초 손상철 05-14 3305
73 강마을에 가면 (1) 노원호 05-19 2862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