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HOME    공지사항    이야기마당    음악감상실    회원리스트    최신글보기    일정관리    운영진코너  

 

 


596
3,355
3,728
2,612,406

 

제작자 사이트가 뜹니다

 

 
작성일 : 03-05-14 18:04
[동시의 지도와 감상]/박목월
 글쓴이 : 야초 손상철
조회 : 3,063  
[동시의 지도와 감상]

시인 박목월


1. 동시를 어떻게 지도하느냐?

시도 우리의 생활을 밝히는 불빛이다. 그리고 시의 지도는 그들이 자기들의 초롱에 불을 켜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어린 아동들에게도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아동들은 그들 대로의 생활이 있다. 그들의 위축되고, 시들고, 막히고, 답답한 생활의 구석구석마다 싱싱한 생명감과 풍성한 삶의 의미와 높고 넉넉한 감정세계를 베풀어 자기들의 초롱에 불을 밝히게 하라.

새들은 노래하고
나비는 춤추고
꽃은 방긋방긋 웃는다.

이런 허황한 세계로 몰아 넣어서는 안 된다. 이 근거없이 아름다운 낙원은 이미 오늘날의 그들의 생활과는 먼, 시들어 버린 낙원이다. 혹은 무늬가 낡아 버린 치사스럽게 화려한 옷감이다. 동심이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티없이 맑은 눈은 결코 허황한 아름다움(그것도 아무런 실감이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을 꿈꾸기 위하여 환하게 밝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맑은 눈은 사물의 본질을 속속드리 꿰뚫어 보는 강철같은 투시력을 가졌으며, 어른들의 통속적인 지각으로 가리워진 모든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

시는 그것을 갈구하는절실한 정신이 빚어 놓은 꿈의 세계다.
또는 구속에서 해방을, 절망에서 구원을 희구하는 간절한 소망이 빚어 놓은 기도다.
외로운 자의 혼자서 지껄이는 <대화>다.
요는 <절실감>이 깃들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는 우리의 생활의 구석구석마다 막힌 것을 뚫는 착공기다. 그 강철도 뚫어내는 의지. 날카로운 비명, 튀는 불꽃,―그 치열한 노력.
삶에 대한 끝없는 성의와 인내력, 그것이 터지는 폭발력, 그 횡폭한 감정의 울림.
시는 달콤한 것이 아니다.
시는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붓을 잡아, 어린이들을 외치게 하라.
붓을 잡아, 어린이들의 절실한 소망을 노래하게 하라.
붓을 잡아, 신비스러운 어린이의 체험을 떠올리게 하라.
붓을 잡아, 생각하게 하라.
붓을 잡아, 절실한 것만 쓰게 하라.
붓을 잡아, 절실한 문제을 꿈꾸게 하라.
시로써 그들의 생활에 불을 밝히게 하라.

2. 무엇을 쓰게 할까? 무엇을 노래하게 할까?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수작이다. 어린 그들의 의식 아래 잠재한 체험 세계의 신비로운 심연을, 또한 시시각각으로 모습을 달리하는 그들의 염원을, 출렁이는 감정세계는 옆 사람이 어떻게 헤아려 알 수 있느냐.
0다만 그가 잡은 붓에 적절한 것만이 깃들게 하라.
길은 그들이 스스로 찾아서 열게 될 것이다.

가. 말에 대하여

말은 어린 그들이 꿈을 짜올리는 유일한 재료다.
말은 어린 그들이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는 유일한 길이다.
말은 어린 그들의 약동하는 생명의 모습니다.
말은 어린 그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자아올릴 수 있는 밧줄이다.

말소리가 수그러지면 그들의 감정도 수그러진다.
말소리가 거칠면 그들의 감정도 거칠다.
말소리가 잔잔하면 그들의 감정도 잔잔하다.
꿈꾸는 말은 부드럽고,
기쁨에 우쭐거리는 말은 신나고,
슬픔에 젖은 말은 무겁다.
감정이 설레이면 말도 설렌다.

나. 아, 버, 지와 아버지가 다르다.

<콤마>를 마디마디 달았는 아버지는 대목대목 생각하는 <아, 버, 지>요, <아버지>는 생각없이 부르는 <아버지>다.



와 한 줄로 흐르는 <아버지>는, 공간을 넓게 차지한 화면 속에 오뚝하게 선 한 그루의 포플러와 온통 화면을 다 차지한 한 그루 포플러는 다 같은 포플러이지만 그 인상이 다르지 않느냐.

<흰꽃>과 <빨강꽃>은 다 같이 <꽃>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 <흰꽃>의 <꽃>이라는 말과 <빨강꽃>의 <꽃>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말이다. <흰꽃> 속에 들어있는 <꽃>은 흰<꽃>의 <꽃>이요, <빨강꽃>의 <꽃>은 빨강<꽃>이다. <꽃>이라는 한 개의 낱말은 하나의 문맥 속에 짜여지면 그것은 구체화되고, 이미 낱말 하나로 따로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꽃>이라는 낱말은 우리가 우리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할 때마다 다른 것이 된다.
①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② 쨍쨍하게 햇볕이 쬐는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③ 구름 한 점 없다. 호수같이 맑은 하늘, 쨍쨍하게 햇볕이 쬐는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이 세 대목의 문장에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다른 느낌을 주고, 아름다움을 달리한다. 이 세 대목의 문장이 표현한 <노란 채송화>를 머릿속에 그려 보라.
① 막연하게 교실 앞에 피어 있는 채송화와,
② <쨍쨍한 햇볕이 쬐는 뜰>을 배경한 채송화는
③ <구름 한 점 없는 호수 같은 하늘>의 배경이 깃든 <쨍쨍한 햇볕이 쬐는 교실 앞 채송화>는 각각 그 인상을 달리하는 것이다. 인상이 다른 것이 같은 사물일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은 뜻을 전하지만 시에서의 말은 사물(존재) 그것을 전하다. 시의 말과 일상생활의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구실이 다르다.

다. 시는 말이 유일한 재료다.

말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의 아름다움은 시의 아름다움이요, 말의 생명이 시의 생명이다.
어린 그들에게 말을 주라.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둡고 답답한 감정에 말을 주어 하나하나 밝히고, 선명하게 하라.
친구와 의사를 나누고, 사무적인 용무를 치르는 말 외에 참된 그들의 감정을 나타내고, 꿈을 <그려 올리는> ―그런 말을 주라.

3. 비유에 대하여

우리 선생님은 무엇처럼 아름답다.
우리 교실은 무엇처럼 넓다.
봄바람은 무엇처럼 따뜻하다.
가을바람은 무엇처럼 선선하다.
가령, 이런 글에 <무엇처럼>을 한 가지씩 비유로 채워보라. 열 사람에게 물어서, 열 살람이 꼭 같은 대답이 나오며는 그것은 죽은 비유다. 싱싱한 생명을 못 가진 비유라는 뜻이다. 이것들은 전혀 가치가 없는 낡아빠진 것들이다. 그러나, 열 사람에게 물어서, 열 사람이 전부 다른 겻이라며는, 또 그 다른 것이 특수하고 도저히 우리가 상상 못할 것이라며는 그럴수록 좋은 비유다. 열사람이 꼭같은 대답이 나올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유형적인 것이다. 따스하다면 봄바람, 차다면, 얼음, 뜨겁다면 불 등등, 이런 비유에는 그 사람만의 생생한 체험이 실려 있지 않는 것이다.
비유야말로 그 작자마다의 참되고 특수한 체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선생님은 여치처럼 엉거주춤 앉아 계신다. ―라는 비유는 새롭다. 풀냄새가 풍기는 비유다. 풀밭에서 여치를 가지고 놀게 된 경험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도저히 떠오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멀끔하게 대머리가 된, 이마가 길다란 여치의 모습은 그것대로 이미 유모러스한 것이지만, 얼굴이 길고 대머리가 진 선생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름 속살처럼 하얀> ―이라는 구절도 그 작자만의 체험이 뒤받이해 주는 비유다. 흔히 희다면 눈이 머리에 떠 오른다. 그러나 <마름 속살처럼 희다>며는, 이미 검은 마름의 새하얀 속살에 특수한 감동을 느낀 경험이 살아나는 것이다.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은 속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유면, 누구나 알기 때문에 새로운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
어린 그들에게 자기의 의식 아래 접혀 있는 그들만의 체험 세계를 표현하게 하라. 그들은 도저히 우리가 상상도 못할,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뿐만 아니다.
그들의 놀랍고도 싱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꿈을 피어 올리게 하는 것은 자기마다 특수한 체험세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꿈은 이성적인 제약이 약하고 미약하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고도 신비롭게 뻗을 수 있다.
다만 어린 그들이 자기들의 꿈꾸는 세계에 대한 신뢰감을 획득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으면 그들은 무한량의 시를 빚어 놓을 것이다.
이들이 빚어 놓는 작품을 어른들이 그 빈약한 평가와 몇 푼 되지 않는 지식으로 우열을 속단하고 어설픈 교시를 베풀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를 오히려 협소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린 그들에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라.

4. 감상에 대하여

작품을 감상할 때, 부질없는 선입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아니 된다. 더구나 그것에 무슨 뜻을 캐려거나, 작품을 해석하려고 들면, 시가 지니는, 가장 소중한 생명을 손상하게 된다.
다만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하라. 작품에서 빚어 놓은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읽는 자의 내면에 그것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작품(시)의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비비새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멀리 떨어진,
논 벌로 지나간
전선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다
되돌아 봐도,
그 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박두진>

이것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박두진 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옳은 방법은 <전선줄에 오뚝하게 앉아 있는 비비새>의 모양을 독자가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일이다. 그리고, 비비새를 뒤돌아 보며 길을 가는 소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이다.
시에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이 이미지에서 받게 되는 감동이다.
요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이 작자가 인생 체험 속에서 발견된 그들의 절실하고 진실한 것을 이미지를 통하여, 형상화시켜 놓은 세계이다. 물론 말이 매개체가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이와 같이 그들의 진실을 이미지로서 형상화한다는 것이 그 작자의 상상력이며 또한 문학작품이 창조물인 이유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품을 올바르게 감상시키려면 작품 속에 빚어 놓는 이미지를 어린 그들의 머릿속에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박두진 씨의 <비비새>가 어떤 내용을 가진 것인가. 그것은 감상을 지도하는 자가 미리 설명할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설명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작품의 참된 아름다움이나 가치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만일 어린 그들의 머릿속에 <전선줄에 오뚝이 앉은 비비새>의 영상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그들은
―참 쓸쓸하다.
―외롭다.
―외롭고 쓸쓸하고도 서럽다.
라는 감탄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행위는, 직접 경험의 세계다. 말하자면 직관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엄마가 사알짝
입맞춰 주고.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달빛이 살며시
입맞춰 주고.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포도넝쿨 그늘이
입맞춰 주고.

필자가 어릴 때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달빛이 새어드는 밤에 두 눈을 꼭 감고 잠드는 아기 ―그 아기의 평화스러운 얼굴에 포도넝쿨 그늘이 아른거리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는 <하나의 장면>이 꿈에서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 비로소 넉넉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공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5. 동시 감상의 구체적인 방법

교실 안에서 작품(동시)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시를 감상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 일정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다만 교실의 분위기를 보아서 지도자가 그 방법을 택할 도리밖에 없다.혹은 시의 성질에 따라 그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위에서 동시를 감상하는 최상의 길은 이미지를 어린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므로 작품에서 빚어놓은 이미지를 쉽사리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그것은 얼마든지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만일, 낭송하여 더욱 효과적인 작품이라면, 낭송을 시킬 것이며, 묵독하여 효과적인 작품은 묵독하게 할 것이다. 묵독을 시킬 때, <눈으로만 읽게 하는 것>은 졸렬한 방법이다. <말의 울림>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말에서 울림이 죽어지면, 그것은 감정이 죽은 말이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는다더라도, 입안에서 읽게 되면, 그 울림이 <소리없이 살아난다.> 이것은 시를 읽을 때,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언어의 뉘앙스를 베풀고,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
또, 정확하게 읽힐 것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시에서 한 줄 한 줄은 호흡을 조절하고, 쉼표는 감정의 굴절을 표시한다.
아아,
우리집을
그려보자.
라는 시귀가 있다면, <아아> 다음에 잠시 쉬게하고, <우리집을 그려보자> 라고 읽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아 우리집을 그려보자>처럼 한줄로 줄줄 흘려 버리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되도록, 나직하게 읽혀야 한다. 목청을 돋구어 버리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릴 겨를이 없다.

―읽히는 문제에만 치우친 것 같다. 그러나, 마음 속에 스미도록 읽히는 방법이 시를 올바르게 감상시키는 최상의 길이며, 그 이외 다른 방법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정, 작품이 복잡한 것이라면 지도자가 그 시의 이미지를 미리 설명해 주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설명이 지나쳐 버리면, 그 작품에서 빚어 놓은 것과는 엉뚱한 것이 되어 버릴 우려가 있다.

 
 

Total 14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87 에궁 참말로 불쌍한 딸들아 / 만은 김종원 (1) 김종원 11-06 2928
86 茶詩를 통해 살펴 본 옛 선비들의 차생활 김종윤 12-09 3237
85 시를 읽는 재미 신경림 05-21 3156
84 [백민 동시] 사진 속의 어머니 햇살처럼 12-03 2978
83 밤 하늘 꽃밭 백민 11-07 3017
82 단추 한 개 (1) 운영자 05-06 2980
81 동시조, 그 아름다운 이름으로 일어나라/ 손상철 이인자 04-17 3676
80 제2회설록차 우리시 문학상 초등부 장려상 수상작(1) 이인자 05-01 3100
79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다 야초 손상철 05-14 3020
78 동시란 무엇인가?/박목월 야초 손상철 05-14 3068
77 동시(童詩)와 유아성(幼兒性)/이원수 야초 손상철 05-14 3045
76 [동시의 지도와 감상]/박목월 야초 손상철 05-14 3064
75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1/2) 야초 손상철 05-14 3075
74 분단시대 동시문학의 한 면모(2/2)-김용희 야초 손상철 05-14 3274
73 강마을에 가면 (1) 노원호 05-19 2838
72 춘천호 이근구 07-07 2745
71 아동문학이 청소년 교육에 미치는 영향 야초 손상철 08-20 3182
70 매스타임즈 오름 01-23 2961
69 한국동인지문학관 / 시조문학진흥회 (사)시진회 04-12 2968
68 문화예술위원회 운영자 04-10 2812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