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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14 18:03
동시(童詩)와 유아성(幼兒性)/이원수
 글쓴이 : 야초 손상철
조회 : 3,045  
동시(童詩)와 유아성(幼兒性)
아동문학가 이원수


동시(童詩)는 아동(兒童)의 것이다. 그것은 모든 아동에게 한결같이 사랑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하(前提下)에서 볼 때, 동시(童詩)는 모든 아동 ― 청년 이전의 소년까지를 포함하여 그 감상자(鑑賞者)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童詩)를 놓고 우리는 몇 가지 분류(分類)를 하기도 한다. 동시(童詩) 자체에 있어서, 정형시(定型詩) 자유시(自由詩)의 분류 같은 것은 별문제이지만 그 시(詩)의 수용자(受容者)를 두고 보아서, 유년(幼年)과 아동 일반을 위한 연령적(年齡的) 단계로서 유년시(幼年詩), 동시(童詩), 소년시(少年詩) 등의 분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크게 보아서 이 3자(三者)는 모두 동시(童詩)로 통합된다.]
한 편의 시(詩)가 예술작품(藝術作品)일진대, 구태여 어떤 연령의 독자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크게 보아서 시(詩)는 만인(萬人)의 것이어야 한다. 시(詩)는 독자의 나이에 구애됨이 없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시(童詩)를 포함한 아동문학(兒童文學)은 이 독자의 나이가 문제되어 왔다. 그래서 시(詩)에 있어서도 동시(童詩)라는 한 쟝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아동에게 주어지는 특수(特殊)한 형식(形式)과 성질(性質)을 이루어 놓고 있다.
이것은 오직 아동의 신체적 생활적 현실(現實)이 일반 성인(成人)과는 많이 다르고, 지적(知的) 언어적(言語的) 발달(發達)이 성인과 크게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조화(調和)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시(詩) 자체의 질적(質的) 저하(低下)라거나 박약(薄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시(詩)를 전달하기 좋은 형식(形式), 즉 언어(言語)의 선택(選擇)과 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내용(內容 )이기를 바라는 데서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시(童詩)를 특징(特徵) 짓는 것으로
(1) 아동(兒童)이 알 수 있는 말을 쓴다는 것.
(2) 시(詩)의 표현(表現) 기교(技巧)의 소박성(素朴性).
(3) 시(詩)가 내포(內包)하고 있는 사상(思想)의, 아동에게 이해될 수 있는 범위(範圍), 한계(限界)의 고려(考慮).
(4)아동의 생활이 그 소재(素材)가 되는 수가 많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시인(詩人)이 아동이 된 심리(心理) 상태에서 노래할 수도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상 네 가지 특징(特徵)을 들었지만, 이 특징들은 그것 자체(自體)들이 연령적 계층에 의해 있었던만치, 「동시」 안에서도 유년(幼年)과 유년 이상의 아동(兒童)과 소년(少年)의 구별 때문에 때로 시(詩)에서의 이탈(離脫)을 가져오는 요인(要因)이 되기도 한다. 즉,
(1) 쉬운 말의 사용에서, 우리는 동시(童詩)의 용어(用語)를 너무 어린 데에만 머물게 하여 유치원(幼稚園)에 가두어 두는 현상이 보였고, 아동들에게 점차 정도 높은 국어(國語)를 알게 해 주는 소임(所任)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2) 시(詩) 속에 담기는 사상(思想)도, 아동의 시(詩) 이해(理解)의 범위를 너무 좁게 생각하고 너무나 낮은 데서만 맴도는 경우가 많았으며,
(3) 아동생활의 소재(素材)라 하여 너무나 일상적(日常的)인 놀이와 학교생활의 표면적(表面的)인 것을 소재로 하여 작시(作詩)하는 일이 많아, 감동(感動)의 샘을 발견치 못하는 일도 있으며, 또 한편 유년 아동의 귀여움이나 재롱스러운 행동을 즐기는 성인 취미(趣味)로서 동시(童詩)를 쓰는 사람조차 많아졌던 것이다.

동시(童詩)가 성인(成人) 이전의 어린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시(詩)를 감상할 수 있는 데는 역시 어느 정도의 연령(年齡)― 지적(知的) 발달(發達)이 필요하다.
우리는 유년(幼年)을 위한 동시(동요)를 짓고 그들을 위한 동화(童話)를 지으려 하지만, 과연 유년을 문학 감상자(鑑賞者)로서 상대하여 그들에게 제대로의 문학(文學)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하기야 유년을 소재로 한 동요(童謠), 동시(童詩)는 많다. 그러나 그것들이 진정 유년을 위한 문학(文學)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위 유년시(幼年詩)라 할 작품들을 시(詩)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유년(幼年)이 아닌 그 위의 아동, 혹은 어른이라고 할 것이며, 유년시(幼年詩)를 쓴 사람(시인)도 정말 유년에게 전달될 시(詩)라고 자신하며 쓴 시(詩)가 과연 몇 편이나 있을지 적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유년시(幼年詩)는 정형적(定型的)일 수 있다 하여 동요(童謠)로 씌어진 작품들이많다.
실제로 유치원에서 불릴 수 있도록 쓴 동요들을 보자. 물론 작곡(作曲)되어 실제 불리기도 하는 동요들이다.

우리는 귀염둥이
산에 산에 어깨동무
나무들이 자라고
들에 들에 어깨동무
시냇물이 흐르고
예쁜 아기 모여라.
우리는 엄마 아빠 귀염둥이죠.
<석용원 작>

살랑바람
바람은 바람은 장난꾼
몰래 몰래 숨어가면서
버드나무 푸른 가지를
가만가만 만져보지요.

바람은 바람은 장난꾼
살금살금 기어가면서
연못가의 푸른 물결을
살랑살랑 놀려보지요.
<이준구 작>

금방울 은방울
조롱조롱 풀잎의 은방울 형제
산들산들 바람에 떨어지지요.
풀잎에서 잠자던 고추잠자리,
날개 위에 떨어져 깜짝 놀라요.

달랑달랑 꽃잎에 금방울 형제
간들간들 바람에 떨어지지요.
꽃 속에서 잠자던 호랑나비도
꿈을 깨고 어딘지 날아갔어요.
<유성윤 작>

한용희 편저 <한국동요 반세기>(1973년 세광출판사 간)에 수록되어 있는 동요(童謠)들 중에서 유년(幼年) 상대의 것으로 보이는 것들 중의 세 편이다.
그러면 이런 동요들이 가지는 유년시적(幼年詩的) 가치는 어떤가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귀염둥이>는 산의 나무들이 어깨동무하고 서서 자란다는 것, 들판을 흐르는 시냇물도 어깨동무를 하고 흐른다는 것에서, 어깨동무하고 노는 아이들을 연상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예쁜 아기」, 「엄마 아빠의 귀염둥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유년들은 귀염둥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 아빠의 귀염둥이지, 유년들 자신의 귀염둥이는 아니다. 유년은 그들로서 유년이지, 스스로 귀염둥이란 느낌을 가지고 자신을 보지는 않는다. 부모(父母)의 생각과 느낌을 유년들에게 주입시켜서 이로울 것은 없으며, 오히려 아동에게 해가 미칠지 모를 일이다.
다음, <살랑바람>은 어떤가?
나뭇가지를 가만가만 만져보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몰래 몰래 숨어가면서」「버드나무 푸른 가지를 만져 본다」고 했고, 그래서 장난꾼이라 했다. 물결을 살랑살랑 놀려 본다고 해서 장난꾼이라 했다.
이 동요에서 바람은 의인화(擬人化)되어, 숨어가기도 하고 기어가기도 하지만, 바람을 이렇게까지 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년들에게 가능한 일일까.
크리스티나·로젯티의 <바람>이란 동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일절―

누가 바람을 보았답니까.
너도 나도 못 본 걸.
웬걸,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은 저기 지나가지 않니?
<박목월 역>
여기서는 의인화(擬人化)로서의 구성보다 바람이란 것에 대한 의문(疑問)과 경이(驚異), 그리고 바람에 대한 이해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에 비해 <살랑바람>은 유년의 상상력보다 어른의 의도가 이미 바람을 남몰래 숨어다니는 존재(存在)로 그려놓고 있어서 유년의 것으로는 조숙(早熟)이요, 어른의 것으로는 유치(幼稚)에 기울고 있다.
다음 <금방울 은방울>은 어떤가?
이 동시(童詩)는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혹은 빗방울이 바람결에 흔들려, 풀잎에 잠자고 있는 고추잠자리에게 떨어져 잠자리가 놀란다는 얘기다. (제2연에서는 호랑나비에게 떨어진다).
이 얘기에는 동시(童詩)다운 요소(要素)가 희박하다. 있다면 그 말에서 이슬방울을 「은방울 형제」「금방울 형제」라고 꾸며서 부른 점이라 할까. 아니면, 「떨어지지요.」「날아갔어요」하는 어미의 어린 티라고 할까.
이런 시(詩)들이 유년시(幼年詩)라고 부를 근본적인 요소를 갖지 못하여 섭섭할 뿐인데, 필자(筆者)의 작품 선택(選擇)이 잘못되었기를 바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유년동요(幼年童謠)로서 손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있기는 하다. 모두 해방 전 작품으로 목일신의 <누가 누가 잠자나.>, 김영일씨의 <나팔 불어요.>, 김성도씨의 <어린 음악대>, 윤태웅씨의 <아기 별>, 이일래씨의 < 산토끼>, 등 수십년 전 작품들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며, 요즈음 동시인(童詩人)들은 유년시를 쓰지 않는지 못 쓰는지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

그러면 왜 유년시(幼年詩)에 대해서 얘기하는가? 유년시를 부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유년시의 출현(出現)을 갈망하는 뜻에서인가.
필자(筆者)는 유년시(幼年詩)가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의 가능성(可能性)을 생각할 때 회의적(懷疑的)이며, 지극히 어려운 문학(文學)임을 인정하고 있다. 유년문학(幼年文學)의 길은 유년 자체가 너무나 단순하여 오히려 찾기 힘들며, 찾아도 그걸 꽃피우기에는 뛰어난 재능(才能)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러한 유년문학(幼年文學)의 하나인 유년시((幼年詩)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으로서 특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동시인(童詩人)들의 작시(作詩) 태도에서, 또 그 수법(手法)에서 가당치 않게 유년적인 것― 언어(言語) 사고(思考) 견해(見解) 따위를 씀으로써 유년시 아닌 동시(童詩)를 유년시도 아동(소년)시도 아닌 경지로 몰고 가서 동시(童詩)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들을 도외시하고 유치(幼稚)에 안주(安住)하려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근래에 와서 동시(童詩)도 형식상 새로움을 추구하여, 난해(難解)한 것도 많아졌지만, 그 난해한 동시에까지도 유년적인 것이 끼어 들어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문학이 지녀야 할 사상성이나 휴머니티 같은 것을 배제(排除)하고 언어유희(言語遊戱)에서 머물려 든다. 혹은 현실(現實)을 떠나 환상(幻想)의 세계를 그리고, 근로(勤勞)와 생활고(生活苦)에 눈감으며, 안락(安樂)한 꿈을 좇는다. 정신(精神)의 진실성(眞實性)을 감춰놓고 놀이에서 노래부르며 즐기게 하려 든다.
이러한 작시(作詩) 태도는 성인사회(成人社會)에서 보는 우민책(愚民策)에 어울린 시인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고, 「현실(現實)―곧 낙원(樂園)」론(論)을 펴는 가소로운 사람들의 동료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자체, 유년시(幼年詩)의 테두리 안에 들지도 못하고 아동 일반에게 주는 동시(童詩)를 유년스럽게 어린 티를 내며, 나이 먹은 아동― 소년의 사고(思考)나 그들의 현실생활의 감정(感情)을 경이원지(敬而遠之)하는 사람들의 많은 동시(童詩)가 세상에 버젓이 나돌고 있다.
시성(詩性) 없는 어른 취미(趣味)의 어린이 묘사(描寫), 혀 짧은 유아어(幼兒語)의 흉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의 마음, 허황된 생각의 어리석음을 동심(童心)이란 허울로써 미화(美化)시키려는 기교(技巧)― 그리고 그보다 더 현실생활의 감정을 덮어버리는 부유자(富裕者) 취미, 사색(思索)을 막는 오락적(娛樂的) 태도 등등.
문학(文學)은, 더구나 아동문학(兒童文學)은 어디까지나 인생(人生)의 진실(眞實)과 그 진실에서 우러나는 미(美)를 그 생명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문학을 당장의 즐거움을 주는 마약(痲藥)처럼 사용하거나 체육기계 같은 소임(所任)을 하는 것으로 이용하거나 어릿광대의 몫을 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문학을 모독(冒瀆)하는 짓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동문학(兒童文學)에 어째서 그런 류의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들은 아동문학을 아동의 즐거운 놀이개로 만들어 줄 수 있으면 만족한다. 철없는 것으로― 그것도 동심(童心)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서.
유년시(幼年詩)의 어려움을 생각하려 하지도 않고 동시(童詩)에 유년적인 요소를 불어넣어 안이(安易)한 작시(作詩)를 한다. 시인(詩人)이 되어지지 못한 사람들의 장난인가. 시인으로서의 무능(無能)을 호도(糊塗)하기 위해서는 동심과 유년적 표현이 편리한 방편(方便)인 줄 알고 하는 짓인가.
철학(哲學)이 없는 동시인(童詩人), 꿈만 붙들고 노는 동시인, 말재주 놀이를 시인(詩人)의 사명(使命)으로 여기는 동시인, 이들이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서운 것이다.
동시(童詩)는 그 유년적 어리꽝에서 깨끗이 손을 떼어야겠다. 그리고 유년시(幼年詩)의 제작에 마음을 기울이는 시인(詩人)은 그 어려운 작업에 심혈(心血)을 바쳐 참된 유년시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년을 빙자하고 동시를 본도(本道)에서 끌어내려 안이(安易)와 탈사회적(脫社會的)인 작품(作品)을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나의 신념(信念)이다.

1975. 신진출판사 발행.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편
'동시, 그 시론과 문제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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