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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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6 16:21
인화초
 글쓴이 : 이규임
조회 : 3,072  

인화초/ 이규임

   사람에게는 누구나 무료한 시간이있기 마련이지만, 이미 고령이 되면 매사에 의욕이없다.
따라서 재미도 신기한 것도 없으니 감동인들 느끼는 때가 별로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사에 사는 재미가 없다. 그런데 오랫동안 집안에 아기가 없다가 증손자가 탄생했다.
핏줄을 꼭 빼닮은 고물고물한 얼굴을 보니 그 사랑스러움 형언할 수가 없다. 돌아서도
또 보고 싶은 마음이 풋사랑에 물불 안 가리는 애들 같다고 웃었다.설날, 4대가 다 모였다.
그날의 인기는 두말없이 백날 지난 방긋방긋 웃는 현수가 독차지했다.
이 손, 저 손, 넘어가며 귀여움을 받는 것을 보고, 나는 무심히 "참 인화초로구나"했다.
(人花草)라는 말이 참 오랜만에 튀어나오기도 했거니와, 듣던 아이들은 말의
뜻을 이해 못 하는 듯 했다. 요사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생소한 낱말이라고 한다.
  
   인화초(人花草)란, 글자 그대로 사람이 화초 같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인기가 있다는  말로,
쓰여진 듯 국어사전에도 없다. 그런데 지난날 내가 인화초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오늘 불쑥 이 말이 나온 모양이다.

   충남(忠南) 전의(全義)는 이도사(벼슬칭호) 어른의 부친께서 한일합방 전, 원님으로
계시던 곳으로, 그분의 선정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까지 세워진 곳이다. 도사어른은
한일합방이 되자 왜놈들이 들끊는 한양이 싫다고 전의로 낙향을 했다. 가난이 선비의
긍지나 자랑인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돈이 있어야 앞으로는 자식들에게 신교육을 가르
칠 수 있다고 생각한 개화파다. 그리하여 서룽에 한끝을 두고 시골에서 정착을 했다. 소
작인들에게 이해심 많은 지주로 추앙을 받으며 당대에 대지주가 되었다. 그 후 넓은 터
전을 잡고 긴 담 속에 가족이 모여 살게 되어서 '긴 돌담 집'이란 별명이 생겼다. 그 도
사 어른디 바로 나의 증조부가 된다.

   증조부님은 신학문에 일찍 눈을 뜬 개화파로 학교도 세우고 불우한 아이들에게 학비
도 댔다. 나이 증조부와 백부와 부친, 모두 일본, 미국, 불란서 각처에 흩어져서 유학을
했다. 그분들이 조국에 돌아와서 이바지는 하였으나 결국 조강지처는 모두 외면했다.
그리하여 부인들은 시앗을 보고 생과부로 시골 증조부 슬하에서 살아가게끔 되었다.

   그 시절은(1930년) 아직도 내외법을 가지고 살아간 듯 나의 조모님, 종조모님, 백모님
모찬, 네 분 어른들은 밖을 모르고 긴 돌담 속에서 살아갔다. 절약하는 가풍이라 호강스
러운 생활은 아니었으나 손수 일은 안 했다. 이분들은 생과부로써 지아비의 사랑도 못
받고, 자식 기르는 재미도 모르고, 살림 재미도 못 본 채, 장 속에 인형과 같은 나날을 보
냈다. 평생 버림받는 여자의 설움을 풀길 없어 몇 편 안 되는 언문 이야기책을 읽곤 했는
데, 간혹 봉제사접빈객 날, 큰댁으로 모여서 지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 당시
의 반가의 규범으로는 일부종사가 부도였기 때문에, 긍지였다. 다행히 증조부가 대지주
여서 모두 한울안에 각기 독립 가옥을 마련하고 의식주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생활걱정
없으니 편안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성취감을 모르는 삶이었다. 나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
아가는 아녀자들 사이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랐다.

   항시 나를 보호하는 언년이가 나의 발이 되어 이 집 저 집 데리고 다니다가 하루만 안
가도 야단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다락에 감추어 두었던 맛있는 양과자가 나오고, 아끼고
만지던 모든 것을 서슴없이 주었다. 그리고 나만 보면 시름 다 잊는다고. "인화초다. 네
가 인화초다"하시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 했다. 서울서 학교에 다니다가 방
학이 되면 시골 증조부택으로 나려갔다. 어머니는 물론 조모님, 증조모님, 백모님 모두
눈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다루듯 했다. 항시 무미건조하
고 재미없고 지루한 생활 속에, 발랄하고 귀여운 소녀가 앞에 앉아서 서울서 재니던 이
야기를 새록새록하니, 모두가 새 세상을 만난 듯 기뻐하셨다. 가는 곳마다 인기와 귀여
움을 독차지하며, "너는 어려서도 인화초더니 커도 인화초로구나" 어디를 가나 그 말이
뒤따랐다. 일생을 통해서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본 일은 다시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신의 여인상이 얼마나 자아를 모르고 살아왔나 불쌍하기 그지없
다. 한편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들의 삶도 행복하지 못함을 보았다 다년간 외지에서 살아
왔고, 너무나 차이나는 아내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감싸주지 못하였기에 이중생활을
하였으니라. 다만 일부종사라는 법규가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와, 엄격한 이도사가 허락
하지 아니할 것을 알기에 감히 이혼은 강행 못했다. 그리하여 새 가정에서도 죄인처럼
살아감을 보며 처첩 거느린 남자의 고달픈 신세를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역사의
한 자락을 깔고 조강지처라는 긍지 하나로 생을 마친 그 여인들의 피맺힌 하소연이 긴
돌담 집 속에서 지금도 영원히 계속될 듯하다. 나는 그분들에게 구원의 사랑! "인화초'였
던 것이 다시금 추억에 새롭다. (2001.5)

                    - 이규임 수필집<인화초:p25~p28>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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