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HOME    공지사항    이야기마당    음악감상실    회원리스트    최신글보기    일정관리    운영진코너  

 

 


838
4,182
4,354
2,879,376

 

제작자 사이트가 뜹니다

 

 
작성일 : 03-05-09 11:19
활판시대와 소걸음
 글쓴이 : 진복희
조회 : 3,700  
● 시조문학회고 ●

활판시대와 소걸음/ 진복희(시조시인)

1975년 무렵부터였으니 25년쯤 전의 일이다.
어지간히 원고가 모아지면 기별이 왔고, 나는 곧바로 세검정 가는 버스를 타고 월하 선생님댁을 찾곤 하였다. 선생님의 자하산사시절이었다.

선생님은 늘 갈색 실내가운 차림으로 파이프를 물고 계시거나 쥐고 계셨다. 웃음이 고왔던 사모님은 으레 뒤꼍 텃밭에서 푸성귀를 뜯어다 소리없이 밥상을 차리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커피를 내오셨다.

"책머리에"에 실릴, 누렇게 짜드라진 원고지 네댓장의 선생님 글까지 얹어서 <시조문학>원고 보따리를 싸들고 나오면 선생님은 문간에서 '수고해'한 말씀으로 날 바래 주셨다. 워낙 말수 없으신 선생님, <시조문학>내는 일도 그렇게 덤덤히 물처럼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찌 물처럼 덤덤하기만 하였겠는가.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흔쾌히 거드는 일손도 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선생님 홀로 챙기셨으니, 내색이 없으셨을 뿐 그 들끓는 속은 오죽이나 하셨을까 싶다.

그때는 활판 조판 시절이었으나 사이버공간을 넘나드는 오늘날에 비하면 그건 마치 가내 수공업이었다. 그 만큼 더디고 힘들고 고달팠다. 그나마 시조문학의 생존은 조판에서 제본까지(종이는 넣어주었지만) 대한 교과서에서 무상으로 도맡아 주시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기대기를 10년 가까이 했으니 <시조문학>과 대한교과서의 인연은 범속안 그런 걸로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류제하 시인을 만나 1975년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무렵 간간이 받아보는 <시조문학>은 책장을 열면 금세오자, 탈자가 툭툭 불거져 나왔다. 우리는 둘다 시조문학 출신이기도 했는데, 그걸 볼 때마다 적잖이 심란하였다. 오자로 일그러진 작품들...책꼴이 제대로 날 리가 없었다.

못내 아쉬워했던 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일처럼 <시조문학>을 애성바스게 꾸려갈 일손이 없었다. 댓가성 없이, 애정이나 열정으로나 가능할 그 일에 누가 선뜻 덤비려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류시인과 나는 시조문학을 맡으면서 편집에서 교정까지 최소한 오자는 없도록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해서 80년대 초 내가 다시 직장을 잡을 때까지 시조문학 교정지를 끼고 종로 6가에 있는 대한교과서를 들락거렸다. 현대문학과 함께 있던 건물이었다. O,K지를 넘기고서도 책이 되어 나올때까지 옥동자가 나올 것이지 칠삭둥이가 나올 것인지 가슴 죄던 일이 어제 일만 같이 느껴진다. 그동안 계간으로 바뀐 시조문학은 검여 유희강선생의 표지 제자가 안표지로 옮겨 앉고, 겉표지는 김응현선생의 한글제자로 바뀌기도 했다.

제본이 된 책을 일단 선생님께 넘기고 나면 나는 그 길로 돌아서서 한숨을 돌리곤 했지만 선생님은 그때부터 팔 겉어부치고 발송작업에 매달리셨다. 그 일을 또 40년 가까이 홀로 해내셨으니, 종종 스스로 자평하시는 말씀마따나 '소걸음'이 아니고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세상이 온통 살벌하게 돌아가던 때였다. 인쇄로 넘기기 전 시조문학 O,K지를 들고 시청에 있는 검열관에게 검열도장을 받으러 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것은 높은 단 위에 버텨 앉은 군인들 몇이 책장을 쓱쓱 넘기면서 언뜻언뜻 눈에 띄는(거슬리는) 낱말을 집어 붉은 줄을 죽죽 그어대던 일이었다. 그들은 작품을 보는게 아니었다. 말투를 꼬투리잡아 과민하게 반응했다. 무슨 선동적인, 사상적인 류와는 무관한 작품들이었는데도 무장한 그들 레이다에는 평이한 시어 하나까지도 요상한 색깔로 잡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붉은 줄은 빼고 책을 만들어는 냈지만, '검열필'이 찍힌 O,K지를 나는 한동안 버리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다. 회화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렇게 넘기도 했었다.

월하선생님은 팔순기념특집에서 '물론 공과는 있었다. 다만 시조를 살리고 시조식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함이었다'고 시조문학에 토로하였다. 시조인구의 팽창에 대해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것은 한때나마 시조문학과 더불어 살면서 내가 못내 아쉬워했던 점이기도 했다.

어느덧 시조문학도 반세기에 가까운 나이를 헤아리게 되었다. 우직한 '소걸음'을 딛고 이제<시조문학> 작가회로 넘겨진 시조문학이 어엿한 발걸음으로 용틀임할 날을 기다려본다.

 
 

Total 152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112 말을 골라쓰기 박재삼 04-22 4746
111 두 번 사는 세상 성철용 04-23 3002
110 한 문인(文人)의 명예회복 김교한 04-24 2925
109 변화의 시작은 구본형 04-29 2900
108 나무처럼, 계곡의 물처럼 김형경 04-29 2839
107 경봉스님의 찻잔 김창배 04-29 3422
106 현대시조 변용의 길 장지성 05-07 2956
105 활판시대와 소걸음 진복희 05-09 3701
104 언어의 신비한 작용 구 상 05-12 2813
103 이름에 대하여/ 다담 李昌熙 李昌熙 05-15 3195
102 눈을 감고 가는 길 정채봉 05-19 3079
101 떠남과 만남 구본형 05-20 2893
100 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김용택 05-21 3358
99 소나무처럼, 바다처럼 이해인 05-22 3046
98 사랑 열차 김수자 05-23 2901
97 맨손으로 일으킨 현대여류시조의 산맥 박구하 05-27 3193
96 고독과 마주하라 법상 스님 05-29 2887
95 비익조(比翼鳥) 정호승 05-30 2777
94 송충이 천국은 소나무 성철용 06-04 2999
93 네잎 클로버 이어령 06-10 3089
 1  2  3  4  5  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