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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9 12:00
경봉스님의 찻잔
 글쓴이 : 김창배
조회 : 3,381  

 ◆ 경봉스님의 찻잔 ◆


      비 개인 뒤 산 빛이 새롭고
      봄이 오니 꽃이 붉다.
      달이 차가운 솔가지에 걸리고
      바람은 뜨락 잣나무를 흔드네.

 「비가 오기 전보다 비가 지나간 뒤의 산 빛이 곱고, 봄이 오니 꽃만 붉은 것이 아니라 만물이 모두 봄빛을 띠어 찬연하다. 화가의 눈에는 산 빛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고, 바다의 물 빛도 몇 번이나 바뀐다고 한다. 바람이 잣나무를 흔들고 달이 찬 솔가지에 걸려 있는 풍광을, 여러분도 다 아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진리 법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경봉 대선사의 설법을 발췌한 것이다.

   차를 찾아서 경남 양산의 통도사 극락암에 갔다. 이 선원은 경봉대선사가 주석 하였던 곳이며 삼소굴과 <차 이야기 선 이야기>로 유명한 고원 명정 스님이 계신 곳이다.

   며칠 전 스님께 전화를 했다.
   " 스님! 저 아무개입니다. 스님 찾아뵈옵고 차 한 잔 얻어먹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스님이 쓰신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 ."
  등 말씀을 올리니, 명정 스님 왈,
   "전화 하는 게 어찌 되게 건방지구나, 허나 보고 싶다. 빠른 시일 내에 꼭 와라."

   이렇게 나와 스님은 전화상으로 먼저 친견을 하게 되었다. 명정스님은 근대 선지식 경봉스님이 시자로서 엄격한 선 수행 지도를 받으신 분이다. 아마도 경봉 대종사를 아주 가까이 시봉 하시며 그 노장 스님의 기력과 선담을 이어받은 듯 느껴졌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극락암은 고려말 (1344년 충혜왕)때 창건하여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하였고, 1968년 이후 도량 전체를 근세 불교의 거장이신 경봉 대종사가 중건 중수 하였다. 영축산의 비경에 위치한 이 도량은 올라가는 양편에 치솟은 노적송들이 하늘을 받쳐 이고 있으며 기암이 흰구름을 싸고 있다. 푸른 대나무 숲으로 천연 병풍을 하고, 깊은 골 맑은 물은 솔숲을 양편으로 돌아 흐르며, 앞으로 펼쳐진 봉우리들이 구름처럼 늘어서 극락을 소원하는 선원의 수도터로서 전국에서 모여든 운수납자들이 용맹 정진하는 참선 도량이다.

   통도사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많은 암자로 가는 길이 보인다. 극락암의 입구에 들어서면 통도 팔경의 하나인 극락연지가 있는데, 무지개 다리인 홍운교가 있어 보름에는 연못에 달이 가득한 풍경을 영월루에서 즐길 수 있다. 법당인 무량수각을 중심으로 왼쪽엔 수세전, 오른쪽엔 정수보각과 요사채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엔 원광제, 삼소굴이 있으며, 뒤쪽엔 선방이 있고, 제일 높은 곳에 나반존자를 모신 단하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 유명한 삼소굴(三笑窟)은 경봉 대종사가 36세에 활연대오 하시고 평생(91세열반)을 주석하신 성소로 1988년 현 선원장이신 고원 명정 스님이 중수 하였다.

   영축산이 위세에 그 무서운 황사가 이곳엔 심하지 않은 편이다. 때는 점심시간이 되어 도착, 법당에 삼배 하고 나니 원주 스님이 안내해 주었다. 선광 스님과 함께 절 근처에 심어 나물로 무친 고수를 찬으로 점심공양를 맛있게 하고는 도량을 볼 생각으로 삼소굴을 먼저 둘러보았다. 단아한 모습의 삼소굴은 문이 살짝 열려 있어 경봉 대종사의 미소 띤 얼굴이 오가는 산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을에 내려갔던 명정스님께서 돌아오셨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인상의 스님 모습에서 나는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봄이 와서 봄을 찾으로 아무리 다녀도 허탕만 치고
      공연히 짚신 신고 이산 저산으로 헤매었네.
      집에 돌아와 웃으며 후원 매화 가지를 휘어잡아
      향기 맡으니 가지마다 봄은 이미 무르녹았네.

   스님은 봄을 만끽하고 오신 모습이다. 스님께 삼배하고 가지고 간 달마화첩과 화문집 그리고 「다실풍경전」도록 등을 스님께 선물로 내놓았다. 그리고 스님 방에 걸어 두시도록 설중 참선을 하시는 달마도 한 점을 선물로 드리니 스님이 말문을 여셨다.

   "거울 위에다 걸어 두고 보자. 이곳에는 오만 놈들이 다 오니 걸어 두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거야. 이담에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이 잘 되면 하나 더 가지고 와!" 하셨다.
   그런데 스님 왈,
   "달마가 너무 젊어."
   달마 스님을 그린 나는 달마 스님이 천태의 모습으로 태어나다보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스님 왈.
   "참 잘났어. 내가 그러면 그렇다 하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있으라 하시곤 부엌으로 가시더니 찻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스님 특유의 좌선 자세로 차를 우리셨다. 유달리 차를 많이 넣어서 차가 짜고 진하게 느껴졌다. 스님께선 이렇게 차를 드시는 것이다. 차 한 잔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그림만 잘 그리면 뭐해? 수행을 해야지."
   그 옛날 중국의 5대 화가들이 이름을 거론하며 나에게 참 진리를 일러 주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스님의 말씀을 잘 듣고는,
   "예! 앞으로 수행과 정진에 더 힘써 스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나는 스님과 아주 긴 시간을 차를 나누며 밖에 찾아온 손님을 세 명이나 문전에서 돌려보내고 있었다. 안에 손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스님은 "잠깐 있어 봐." 하시곤 경봉 대선사의 선묵집과, 삼소굴 소식, 경봉스님 말씀 등을 들고 나오셨다.
   "그림 한 점 가지고 와서 여러 점을 받아 가네."
   하시곤 껄걸 웃으신다.

   잠시 후 스님은 나를 내실로 안내 하였다. 그곳은 경봉 대선사의 진영이 있는 원광제였다. 진영 앞에 경건하게 삼배를 하고 난 후, 스님을 따라 대선사에서 초발심으로 참구 하시던 진귀한 선묵과 묵적들을 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아무나 보여 주는 곳이 아니야." 하신다.

   먼지가 쌓인 친필 일기, 심우도 원고와 아함경 속에 적어놓은 스님의 진필적을 일일이 내게 설명을 하여주신다. 경봉 선사가 계신 이곳에 머물며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실 가슴에 감탄을 묻고, 스님의 애환과 체취를 교감하니 대종사께서 평생을 즐겨 쓰시던 구절이 떠올랐다.

      만약 참된 소식을 알고자 할 진대
      야반삼경에 촛불 춤추는 것을 볼지이다.

   감히 이 작은 화가가 거목 경봉 대종사의 곁에 있다는 생각이 꿈같은 현실이다. 대종사의 선지를 배우고 체험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대종사께서 쓰이던 물건들 중 유난히 내게 들어온 것은 다관과 찻잔이었다. 나는 '경봉스님께서 쓰시던 찻잔일 거야.' 생각하곤 스님께 여쭈어 보니 그렇다 하셨다. "스님, 그럼 그 잔 하나를 그림에 담고 싶군요! 저에게 줄 수 없습니까?" 말씀을 드렸더니 잠시 생각을 하시곤 하나를 꺼내주셨다. 참으로 가슴 벅찬 감동의 한 순간이었다. 분청의 녹차 잔으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주듯 귀가 세 군데가 조금씩 유약이 달아나 있었다. 스님의 손때가 체취가 묻어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찻잔을 들고 나는 경봉 선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삼소굴 경봉 노사는 생전 일상생활 중에 누가 친견하러 오면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하고 물으시고는 찾아 온 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돌아가려하면,
   "대문 밖에 나서면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물에 미끄러져 옷 버리 말고 잘들 가거라."
   하고는 껄껄 웃으시면 친견 하러 온 이들도 그냥 따라 웃으셨다. 경봉 대종장이 현신하시매 그것이 일소로써 삼소를 낳는 바 아니겠는가.

                                                        - 명정 스님의 <차이야기 선이야기>중에서

   이처럼 선방의 삼소굴에서 찌든 때가 묻도록 안거하시며 아무런 생각 없이 틈틈이 차를 마신 대종사의 말할 수 없이 크고 강하고 바다와도 같이 넓고 엄숙한 성품이 그려졌다.
                                                             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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