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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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8 13:43
시조문학의 부흥을 위하여
 글쓴이 : 김동길
조회 : 3,017  
▶ 시조문학의 부흥을 위하여 ◀
김동길

나는 어려서 다행스럽게도 전통 시조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화여전에 다니던 내 누님이 방학때 평양의 집에 오시면서 <시조놀이>한 틀을 사다 주셨다. 식구들이 모여서 시조 찾기를 하엿고 나는 뜻도 잘 모르는 많은 시조들을 저절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직도 수십 수의 시조를 강연하는 도중에 아무 때나 암송할 수 있다. 강연하는 내용에 맞추어 마치 컴퓨터의 키를 누르듯 적절한 때 누르면 그대로 나올 수 있다. 사나이의 기상의 당당함을 이야기함에 있어 최영(崔榮)의 다음 시조 한 수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 수 있으랴.

녹이상제(綠耳霜蹄)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싯겨 타고
용천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둘러 메고
장부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볼까 하노라

성삼문(成三問)의 다음 시조 한 수는 우리 모두에게 엄숙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을 준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축 늘어진 요새 한국 남성들의 기를 세워주고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적절한 노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요새처럼 의리가 없는 세상에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가 남기고 간 시조 한 수는 그 높은 뜻 때문에 겨례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출세를 위하여는 인정도 사정도 없는 판국이다. 자기에는 대통령될 기회를 마련해준 사람을 깊은 산중의 외딴 산사로 유배를 시키지 않나, 철저히 돕고 밀어준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대통령이 되자 곧 잡아다 가두질 않나 -- 어쨌건 신의도 의리도 져버린 세상인데 포은(圃隱)은 이방원(李芳遠)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초대를 단번에 거절하고 비록 선죽교(善竹橋)에서 칼을 맞고 쓰러졌건 몽둥이를 맞고 쓰러졌건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지만 남기고 간 그 시조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큰 감동을 준다.
임진왜란에 만일 충무공 이순신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일본 영토의 일부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 1905년, 1910년에 와서 보호조약을 강요하고 마침내 한일합방의 의정서에 조인하라는 협박하였지만 20세기에 한국은 이미 주체성이 확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우리 나라를 삼키지 못하였다.

한산(閑山)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一聲) 호가(胡茄)는
나의 애를 끊나니

그의 그런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라.
인생을 두고 고산 윤선도는 이렇게 읊고 있다.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둣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삶의 허무함을 이토록 절실하게 읊을 수 있을까. 꽃도 풀도 다 믿을 것 못 되지만, 바위는 영원한 것. 이 겨례가 믿고 의지해야 할 변치 않는 바위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시조에는 이 겨레의 얼이 담겨져 있다. 일본 사람들도 한 달에도 몇 번씩 하이꾸(俳句)나 와까(和歌)를 짓는 모임을 갖고 일본의 공영방송이 그 실황을 방영한다. 시조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먼 산만 바라보고 앉았다. 시조의 활성화를 갈망하는 마음은 나라 사랑의 정신과 통한다. 민족의 내일, 태평의 새 시대의 주역이 돼야 하는 그 내일을 위해 시조문학의 부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시조문학 2001/가을호 -

오병두 11-01-18 20:17
 
가슴이 여미는 올곧은 필력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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