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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5 11:09
구경꾼과 구경거리
 글쓴이 : 전우익
조회 : 3,523  
▶ 구경꾼과 구경거리 ◀

현응 스님,
딱 한곳에 뜰박샘이 남아 있습니다.
며칠 전 그 근방에 갔던 길에 뜰박으로 물을 퍼서 먹어봤습니다.
뜬 뜰박줄을 알맞게 팽팽히 당긴 다음 톡 처 엎어 뜰박에 물이 가득차면 뜰박줄을 사려 올려 마시는 물맛은 수도물 맛과는 달라요. 한 과정 치룬 뒤 마시는 것이라 그럴까요? 오 년 넘게 뜰박줄을 통해 그의 체온을 느끼고, 퍼 올린 물을 부을 때나 다시 샘으로 던져질 때 직접 그의 손에 닿으면서 물을 길어 올리던 뜰박이 이제 댕그라니 혼자 남았습니다.
물 길러 오던 그가 떠나가 버렸기 때문이지요.
끈 떨어진 뜰박이 아니라 써 주는 이 없어 바싹 마른 뜰박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을 푸지 않으면 샘이 말라 버리듯 편지를 쓰지 않으면 생각까지 말라 버릴까 두려워. 우물과 인연 깊고 그 마음이 마치 옛 우물같으신 心如古井 스님을 향해 몇 자 느낌을 적어 봅니다.
스님, 저의 집 마당과 담 근방에는 산수유 꽃이 노랗게 만발했습니다. 봉오리가 처음 벌어질 때는 아주 조금씩 조심스럽게 벌어져요. 그러한 과정이 일정한 단계에 이른 다음에야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날 때 고고지성(孤孤之聲)을 내지르고,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요란스런 성명을 내고, 심지어는 공약(空約)까지 합니다. 광고업이란 것까지 있는데 어느 것이 참된 태도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풀은 말없이 돋아나서 놀랍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숨은 일꾼이 있기는 하지요. 풀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돋아나서 차근히 기초를 다져 나갑니다. 하늘로 치솟는 대나무도 뿌리담은 촘촘하게 단단한 마디를 지우면서 바탕을 다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나무는 꺾일지언정 쓰러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벼도 뿌리에서 두세마디가 웃 자라면 쓰러질 때 그곳이 꺾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칠 때도 가지들이 줄기를 통해 서로 엉켜 줄기까지도 쉽게 갈라진는데 가지 담은 몇 갑절 힘이 들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벌이는 일은 처음이 지나치게 요란스러워 보입니다. 결혼식도 그것이 시작인데 그걸 치루는 데 진을 다 빼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일을 지나치게 벌여 가지가 줄기와 함께 시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일의 백화점만 차려 놓고 한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나무가 싹터 크고 가지 치는 데서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는 자체의 힘과 이십사 절기와 사계절의 리듬을 타고 다지며 커 가는데, 사람들은 억지와 경쟁으로 자신과 이웃, 줄기까지도 갉아 먹으면서 크려고 하니까 일이 뒤틀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스님, 봄이 되자 동리 앞 신작로도 관광버스가 뻔질나게 지나다닙니다. 화사하게 차려 입으신 구경꾼들이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주마(走馬)대신 고속버스로 간산촌(看山村)하시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스님, 이 하늘 밑 어디에 과연 구경거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구경꾼에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몸뚱이도 구경거리가 되는가 봅니다. 이리 다듬고 저리 다듬어 좀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요. 구경꾼이 바로 구경거리질을 하는 셈입니다.
땅 위에 돋아난 풀 한 포기에서 하늘에 뜬 구름까지 거기에 구경거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조화이자, 이 세상을 꾸며 가는 일에 몸바치면서 진지하고 착실한 삶을 영위해 가는 생명체들이며 그들의 동료들이 아닐까요?
산천과 초목을 구경거리고 여기는 구경꾼은 자기 자신과 남편, 자식들까지 포함한 국민전체를 구경거리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삼천만 동포가 육천만으로 불어났다고 자랑하는데, 그들 중 과연 얼마만한 사람들이 구경거리와 구경꾼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몇 년 전 이한열 군의 장삿날 서울과 광주 그리고 영구차가 지나가는 곳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백만이 넘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한열이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한열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히지 못한다면 그게 진짜 죽은 것이 되는 게 아닐까요? 한열이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지만, 그를 진짜로 살리고 죽이는 것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어요. 죽음까지도 구경거리로 삼는 민족은 수많은 시쳇더미에 짓눌려 멸망해서, 시체를 구경거리로 삼기를 거부하는 민족들의 구경거리가 될 게 뻔합니다.
이 땅에서 하루 빨리 관광버스가 없어지고 순례자들의 행렬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순례자들들은 그들이 지나는 신작로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으며, 그들이 지나가는 옆 동리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할 겁니다. 또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하고 연대를 맺어 서로 안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 하고 풀어 가는 데 동참하며 심부름하는 일을 떠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 그런데 별로 그럴 가망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서울을 비롯한 도회지에서 떠들썩한 집세 파도이란 걸 보십시오. 바로 한 지붕 밑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사람들끼리 절반이(오백만 가구)구경꾼이 되어 나머지 절반을 구경거리고 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기를 손 모아 비는데, 아무리 해도 그런 것 같아요. 더욱이 보통 구경거리는 돈을 내고 구경하기 마련인데 이 집세 파동이란 구경거리는 돈을 받으면서 세든 사람들이 쩔쩔매는 것까지 함께 구경하니 구경 치고는 멋들어진 구경거립니다. 그러니 구경꾼이 그걸 놓칠 까닭이 있겠습니까?
달포 전 팀스피리트 작전이 벌어졌을 때 신문에서, 중단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미군 사령부에 들어가 항의하려다 잡혀 갔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았습니다만, 그때 마침 제천 지방을 지나다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이색적인 외국군이 신기한 최신 무기를 들고 국토을 종횡으로 쏘다니는 것도 색다른 구경거리가 되나 봅니다 이 니라의 구경꾼들이 돈 안 내고 보는 구경거리라고 미안했는지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게 환영 현수막으로 예의를 대신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구경꾼들에게는 꺼질 듯 말듯한 풍전등화의 조국의 운명도, 분단의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민족의 모습도 다 스릴 넘치는 짜릿한 구경거리로 비치는 모양입니다.
외국 수입 상품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외국 농산물과 외국 상품은 물론 그 무게에 짓눌려 시들어 가는 농촌 풍경도 덤으로 구경하게 되는 행운까지 맛봅니다.
스님, 어느 면에서는 맥도 추지 못하기에 딴 데서 벌충한다고, 남에게 뒤질세라 구경꾼이 점점 불어나서, 서로 돕고 이끌면서 구경꾼이 구경거리가 되고, 구경거리가 구경꾼이 되는 구경판이 올 봄에는 더욱 크게 벌어져 단군 할아버지도 신나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사월 초파일도 그 중의 한 절정이 되겠지요.

스님, 이번에는 삶이라는 글자와 작은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의 고장에서 가장 작은 물건을 가리키는 형용사가 좁쌀과 담배 씨인데, 돌가지 씨가 담배 씨만큼 작아요. 올 봄에 돌가지 씨를 뿌리며 깨달았습니다. 씨는 작아야 뿌리기도 묻기도 간수하기도 쉽겠다고. 그래서 씨는 이렇게 작게 생겨났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씨가 좀 굵은 율무, 콩, 땅콩은 심어 놓으면 짐승들이 파먹기도 하는데, 작은 씨는 짐승들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데 어떻게 건드릴 수 있어요? 낙락장송으로 자라는 솔 씨는 쌀의 오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고, 몇백 년을 살고 몇 아름드리로 크는 느티나무 씨는 이파리 뒤편에 붙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이제가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씨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고 묻기 쉬우며 떵에도 별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나무도 어린 묘목을 심어야 많이 심고 살기도 잘 삽니다. 큰 나무는 옮기기도 심기도 힘들고 살리기도 힘듭니다. 옮겨 심은 큰 나무는 몇 해 몸살을 앓다가 겨우 살아나거나 말라 죽기 일쑤입니다.
스님, 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판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사람은 지치고, 이론은 사람의 등과 다리에서 시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심어 기르고 키울 수 있을 만큼 작고 작은 교리와 이론이어야 사람 사이에 씨를 뿌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가 땅에 묻혀 싹을 틔우듯, 사람의 인격과 삶의 일부도 딴 사람에게 묻혀야 한다고 여깁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심신의 일부분을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심한 한 마디 말에서부터 피땀어린 인생의 한 토막에 이르기까지 혹은 친구들의 마음속에, 혹은 한 뙈기의 논밭 속에, 혹은 타락한 도시의 골목에, 혹은 역사의 너른 광장에......저마다 묻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묻는 다는 것이 파종임을 확신치 못하고, 나눈다는 것이 팽창임을 깨닫지 못하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나의 소시민적 잔재가 치통보다 더 통렬한 아픔이 되어 나를 찌릅니다."

스님, 도시에 큰 집이 들어서니 사람들도 덩달아 큰소리를 곧잘 치는데, 집이 사람을 압도하듯 교리나 이론이 사람들을 압도해서는 안 될 겁니다. 제가 거처하는 방에 우리(牛耳)선생님의 글씨 한 폭이 걸려 있습니다. '한울삶'이란 것인데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삶 자에서 가장 작은 점 하나 떼어 보자고 그랬더니 싦이 돼요. 싦이란 사전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래요. 확실히 싦은 싦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점 하나 찍으니 '삶'자가 되어요. 삶에서 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점 하는 누구나 뗄 수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 힘 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점 하나가 삶이 되고 뒤범벅이 되는 큰 일을 하는 건 마치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는 이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뒤범벅이 삶이 되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아주 작고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올 봄의 소원으로 삼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이 작은 소원을 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0.4.8

-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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