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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9 12:56
까치밥의 의미
 글쓴이 : 정완영
조회 : 3,876  
= 까치밥의 의미 =

옛날옛날 옛적부터 우리 할아버지는
가지 끝 감 한 톨쯤은 남겨둘 줄 알았어요
날아 온 까막까치도 대접할 줄 알았어요.

-정완영의 시조'옛날옛날 옛적부터'중에서

지금도 시골 마을에 가면 빨갛게 익은 울안 감을 따내릴 적에, 반드시 맨 꼭대기 몇 알쯤은 까치밥이라고 남겨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저 하늘이 열매(과실)를 주실 때 꼭 사람만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 집에 날아오는 까막까치에게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아예 울안에서 따내린 감은 시장에 내다 돈으로 바꾸는 법이 없었다. 충실한 과일은 골라 제사상에 올리고 그렇지 못한 것은 모두 광주리에 담아 울 너머, 담 너머, 삼이웃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아무리 돈이 아쉬워도 울안 감을 따다가 저자에 내다 팔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고,그 집은 인심 사나운 집이라고 하여 딸 시집도 못 보내고 며느리 구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 겸허, 이 공근(恭謹), 이 지족(知足)으로 미루어봐도 우리는 하늘이 낸 순민(淳民)이요, 땅이 낳은 적자(嫡子)가 아니었던가.

옛날 우리 할아버지는 한 세상을 가는 법으로
손주로 어루만지며 국화 한 포길 가꾸시며
기러기 달 하늘 건너듯 팔십 평생을 건너셨다.

천지에 초로(草蘆) 한 채를 왕토처럼 누리시며
흰 수염 빛나는 백발을 태산처럼 쌓으시며
귀뚜리 우는 밤이면 등불 하나를 달래셨다.

-정완영의 시조'옛날 우리 할아버님은'중에서

옛날 우리 할아버님은 선비의 집이 너무 높아서는 못쓴다고 했다. 거처가 너무 넓어도 안된다고 했다. 집이 너무 높으면 방자해지기 쉽고, 거처가 너무 넓으면 게을러지기 쉽다고 했다. 초가삼간도 잘만 누리면 왕토가 된다고 했고, 백발도 넉넉히 쌓으면 태산만큼 높다고 하셨다. 아무리 집이 높아도 별자리 하나 불러 모을 줄 모르면 그것은 무덤이라고 했고, 아무리 거처가 넓어도 등불 하나 달랠 줄 모르면 그것은 허실(墟室)이라 했다.

우리 할아버님이 기거하신 사랑채는 집도 나지막했거니와 아예 담장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런 사랑을 '난사랑'이라고 하는데, 길 가는 선비들에게 내놓은 사랑채라는 뜻이다. 할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언제던가 전북 익산에 가서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택이 난사랑이인 것을 보고, 천리타관에서오랜 친구를 만난 듯 감개가 무량했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부자가 아니라 많은 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장자(長者)라시며, '나 가거든 봉분을 너무 높이 짓지 말라'시던 유촉에 따라 지금은 나지막히 청산에 돌아가 누워 계시는 우리 할아버님.'양심이 밥 안 먹여준다' 고 아예 수심(獸心)으로 배를 채우려던 사람들, 내가 너무 소심하고 못난 까닭일까, 너무 높은 담장 근처에만 서도 하늘 무너질까 두렵고 흐드러지게 질탕한 이야기만 들어도 내가 먼저 낯이 뜨거워진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가난한 사람이 가진 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가진 자가 가기지 못한 자에게 교만하지 아니하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한 가운데서 낙을 찾고 부자가 되면 예의를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느라."라고 대답했다던가. 부끄러움을 아는 자리를 '염치'라고 하고, 절조와 품성을 세우는 마음가짐을 '염우(廉隅)'라고 한다. 어지러운 세태를 가라앉히는 길은 이 염우, 염치를 되찾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정완영
시조 작가.1962년 조선일보와 ,현대문학>을 통해 쿤단에 데뷔한 글쓴이는, 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햇고 현잰느 시조시인협회 상임고문입니다.
시조집는 <꽃가지를 흔들듯이><연과 바람><백수시선><난보다 푸른 돌>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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