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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7 23:31
生命이여, 種族이여(山 房 日 記)/ 장돈식
 글쓴이 : 이인자
조회 : 4,328  
(山 房 日 記)

生命이여, 種族이여
張 敦 植

1. 돌에 낀 이끼

4월. 16 일. 화 요일. 비온다던 예보와는 달리 화창하기만 하다.
서리(霜)기둥에 들떴던 地表(지표)가 봄바람에 녹으며 갈아 앉는다.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지더니 땅이 얼어 부풀러 올랐었다. 기우뚱, 돌축대의 한 귀퉁이가 무너진다. 나뒹군 돌멩이들을 다시 쌓으며 돌들의 색깔을 살핀다. 되도록 본래의 검은 색이 겉으로 드러나게 놓아야 한다. 검은 부분은 무너지기 전 볕을 받던 켠이고, 잠을 자고 있는 이끼다.

내 손길에 뒤집히면 햇볕을 못 받는 쪽은 죽는다. 이끼도 생명인데 돌 표면에 이만큼 자리잡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둥글둥글한 이 돌멩이들은 이 蘚苔類(선태류)의 地球(지구)요 우주다. '생명은 다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 생명이 귀하면 이끼의 생명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을 실감했던 때가 있다.언젠가 지루한 장마철이었다. 무심히 한곳을 주목하게 됐다. 툇마루 아래 섬돌 둘레가 파아랗게 변색이 된다. 그저 흔한 이끼려니는 했지만 구름 사이로 잠깐씩 비치는 햇볕을 받는 물기 먹음은 초록이 너무 곱다 못해 환상적이다. 명함 쪽만큼 뜯어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는 다시 한번 놀란다. 거기에는 사막 오아시스에서나 보는 대추야자나무를 닮은 것, 봄날 배추장다리밭같은 푸르름에 듬성듬성 대궁을 올리고 꽃을 피운 모양의 이끼 등 여러 형태의 이끼가 어우러져서 이끼의 세계 나름, 광활하게 펼쳐 나가고 있었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지금 본 것들은 '공작꼬리이끼' '꽃잎뿔이끼' '미선점박이이끼' 등인 것 같았다. 문득 우리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의 '하꼬니와'(箱庭)를 생각했다. 저들은 얕은 생선궤짝 만한 상자에다 흙을 담고는 여기에다 온갖 식물을 심으며 수석을 오밀조밀하게 배치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되 이것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키며 감상한다. 여기서도 이끼는 한 목 단단히 한다.

환상은 끝이 없다. 손녀와 함께 숨죽이며, 눈물 글썽이며 빠져들었던 순정만화 '이끼부인',은 감동적이었다. 이끼의 妖精(요정), 이 선량한 요정은 이끼로 꾸민 고목의 구멍에서 산다. 늘 이끼로 길쌈을 하고, 고운 이끼를 골라 거기에다 수를 놓기도 한다. 한 번은 가난한 소녀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산으로 가서 딸기를 따고 있는 데 이끼부인이 나타나 "딸기를 좀 달라"고 한다. 착한 소녀는 먹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고 바구니를 내민다. 소녀가 집에 돌아와 보니 바구니 안의 딸기는 모두 황금으로 변해 있어서 그 후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잘 살았다는 얘기로 기억한다.

어려서 어른들이 사냥해 온 꿩을 본 일이 있다.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 아픈 다리에다 이끼를 대고 쇠고리털 같은 것으로 감았었다. 지금도 인삼이나 송이 같은 값나가는 물건은 이끼로 싸고, 국제간의 苗木(묘목)을 거래할 때에는 이끼로 포장을 한다. 여러 날의 수송 도중에도 습기와 공기를 알맞게 조절해 주기 대문이다. 이렇게 이끼는 자연 편에 서서 죽고, 상처 입는 자연을 감사는 역할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可視(가시)의 세계만을 보며 살아온 게 사실이다. 좁은 視野(시야)는 우주 같은 無限大(무한대)의 세계도, 이끼나 미생물 같은 微視(미시)의 세계도 보지 못한 것이 한껏 손해였고, 부끄럽다. 미국 '요세미티'의 森林(삼림)을 보고는 거대하다고 경탄하고, 이 隱花植物(은화식물)의 우산이끼 무리를 그저 보이지도 않는 하등식물이라고 하찮게 생각했다면 하느님은 '먼저 것은 좀 크고, 이끼는 좀 작으나 같은 숲이니라' 가 아닐까.

오늘 이렇게 소중히 살려 두면 지금은 볼품없는, 그저 거무스름한 하찮은 생명이지만 화창한 계절이 돌아와 촉촉이 비를 맞을 때, 나름의 파아란 빛을 띄우며 삶의 환희를 구가하리라. 우리 나라의 蘚苔類(선태류) 따위들의 종류는 2천종을 넘었었으나 인간들의 훼손과 공해로 이제는 몇 종류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보존상태가 좋은 내 산방둘레의 이끼들을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2. 한 줌 흙 속에 숨긴 염원

조규환 시인의 어머니는 늘 아들에게 "봄처럼 부지런하거라" 했다던가. 하늘에서 땅에서 모든 것이 생명을 창조하느라 몹시 부산한 계절이 봄이다. 봄은 생성의 계절, 축복의 계절. 지난 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고 난 빈 컵의 밑에 작은 구멍을 뚫고, 흙을 담아 고추를 기르다가 남아 밭머리에다 버려 뒀었다. 그런데 그 컵들에서 벌써 무슨 새순들이 소복이 돋아 오른다.

'아무 씨앗도 심지 않았는데 무슨 풀들이 저렇게 많이 돋아나는 거지', 낭만의 봄 관조는 즉석에서 觀察(관찰)로 전환된다. 고작 '한 줌의 흙' 에 아무 씨앗도 뿌리지는 않았는데, 처음부터 이런 저런, 뿌리지도 않은 씨앗이 섞여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얼마나 많았던 것일까. 저기 바라보이는 치악산 남대봉 보랏빛 石山은 지금 무르익는 봄을 구가하며 점점이 산벗, 산살구, 산도화꽃을 피우고 있다. 저 나무들은 어떻게 저기에 심겨 졌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기가 만든 열매를 새들에게 먹히우고 대신 저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씨앗을 놓게 한 것이다.

곰곰이 생물의 세계를 생각하다 보면 이들의 전파와 번식은 자연의 절묘하고 정밀한 계산에 의해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生命維持(생명유지)와 꼭 같은 정렬로 種族維持(종족유지) 전파에 매달림을 관찰할 수 있다. 그 시작은 동족끼리도 近親(근친)은 피하면서 확실하게 授精(수정)시킬 수 있을까에 전념하고, 온갖 낭비를 무릅쓰고 수정시키는데 성공하면, 그 수정체가 씨젖을 듬뿍 지닌 강한 씨앗이 되도록, 그리고 무슨 방법으로, 안전하게, 넓이 전파시킬까 애쓰는 안쓰러운 대목들이 허다하다.

민들레, 망초, 씀바귀, 고들배기들은 씨앗에 정교한 낙하산을 달아 정처 없이 바람에 날려보내기에 이들은 온 강산에서 싹을 돋쳐 종족을 이어가고, 도깨비 바늘, 개찰밥, 되꼬리 쑥은 동물의 몸에 염치 불구 들어 붙어 전파한다.

그러나 그렇게 남을 귀찮게 하는 치사한 방법 말고도 크게 성공한 씨앗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종류들이다. 다래, 까치밥, 팥배같은 果實(과실)과 사과 배, 복숭아같이 果肉(과육)에 씨를 섞어 새와 짐승, 사람의 위와 장을 통과하며 저들에게 營養(영양)을 주는 대신 종족 전파의 신세를 지며 이익 교환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슴 뭉클한 事例(사례)는 벼나 밀 같은 곡식류일 것이다. 쌀알이나 밀가루 같은 기막히게 맛좋은 씨젖을 自己發芽(자기발아)에 쓰지 못하고 사람에게 먹히우는 벼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 되의 쌀, 즉 벼의 혈육은 6 만 알갱이나 된다. 그러기에 벼나 밀 같은 곡류는 가장 성공한 자기번식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저들이 자기 동족의 종자를 희생했기 때문에 영악스런 사람들은 볍씨가 원하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 심어 주고, 가꿔 주지 않던가. 지구상의 비옥하고 드넓은 토양에는 밀과 벼와 콩등이 심겨져 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씨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를 좋아한다. 씨가 피우는 것은 잎이요 꽃이지만 그 것이 씨알들의 뜻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씨가 품은 의지는 영원이요 무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의 안주를 거부하고 더 많은, 더 새로운 장래를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함석헌선생이 <야인정신>이라는 책에 쓴 말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저들 온갖 식물들이 어떻게 했기에 이 작은 컵 속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씨앗들이 싹을 틔울 계절과 개체 수를 조절해 가며 숨어 있었을까. 신비롭다 함은 이런 것을 말함인가.

3. 삶의 의미

세상에 하 많은 사람들, 저마다 무언가 한 몫 씩 하노라며 뽑낸다. 아닌게 아니라 저들은 재주도 많고, 능력도 있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적에는 '저렇게나 살아야 사람 사는 거지', 나의 어줍잖은 삶의 모습이 시들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잘 낫다는 사람들 앞에서는 괜스레 주눅이 들고 처신에 자신이 없어지는 때가 있다.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람, 있어서는 안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세 종류' 라나. 두 번 째나 아니었으면, 그렇다고 세 번 째라면 ?, 그렇게나 살아서는 또 뭘 해'. H F 아미엘은 그의 일기에서 '나의 고달픈 영혼이여 ! 나의 지친 육신이여 !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고 써서, 허덕허덕 지나온 나에게 동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한 편, '내가 누군데' 하는 오기가 가슴 한 구석에서 들먹거린다. 문호 톨스토이는 자서전에 쓰기를 <내가 태어나던 날, 통로가 너무 좁아 비집고 나오느라 온 몸이 아팠다. 게다가 둘레가 온통 끈적거려 불쾌했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추워서 소리내어 마구 울었다>고. 그의 말 대로라면 그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나는 세 살 적, 어머니는 동생에게 빼앗기고, 대신 할머니의 품에 안겨 달걀 반숙을 맛나게 먹던 생각이 고작이다. 그러나 기억력에서 톨스토이를 따르지 못할지언정, 追想力(추상력)에서라면 물러설
내가 아니다.

1919년, 그 해 3월에 있은 독립만세사건으로 아직 나라 안이 어수선하던 9월 어느 날 밤, 아버지의 허리 근처 精囊(정랑)에서 安住(안주)하던 나와 나의 同氣(동기)들은 큰 쾌락과 현기증 나는 충격에 휩싸이며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일시에 쏟아져 들어갔다. 나를 포함한 내 동기들의 수효는 무려 수 억이었다. 同氣(동기)라는 어휘가 여기서처럼 잘 어울리는 데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는 性(성)을 결정할 X와 Y의 두 부류였다. Y그룹에 속한 그 때의 나는 우리 장씨 가문의 종손으로써의 傳統(전통)과 遺傳子(유전자)을 고스란히 간직한 D N A 만은 소중히 간직했으나 手足(수족)이라고는 올챙이처럼 달랑 꼬리만 하나인, 다만 일개 生殖細胞(생식세포)에 불과했다.

그러나 발랄하고 활기에 차 있었던 기억이다. 어머니의 子宮(자궁), 宮(궁)이라야 빛이라고는 없는 암흑의 宮殿(궁전)이었다. 그래도 遊泳(유영)에 필요한 따뜻한 액체가 가득했다. 그 속을 동기들은 모두 死力(사력)을 다해 한 표적으로 마구 돌진했다. 타케트는 어머니가 준비한 卵子(난자),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다. 누구든 난자를 점령해야만 한다.아주 동글고 예쁠 그 히로인을.

이 레이스의 경쟁률은 요즈음 명문 대학의 입학을 위한 지원률이나, 수 억 원이 당첨된다는 주택복권의 확률 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치열하고 처절한 경쟁이다. 대학 입시는 떨어지면 후기, 전문대, 재수 등 次善(차선)의 선택이 있고, 복권이라면 3 억 원에 당첨이 안돼도 섭섭이나 면할 작은 상들이 있고, 껍데기라면 다음 주에 또 도전해 볼 수 있으나, 여기에는 2 등도, 3 등도 없다. 오직 이 한 개의 난자를 차지하느냐, 도태되느냐의 두 길 뿐이다. 아버지의 정랑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다.

처절한 경주에 정신없이 치고 나가다 보니 그 많던, 수 억의 나의 동기들의 태반은 지치는 기색이 역력하고 방향을 몰라 더듬거리는 것도 있어 모두 따돌릴 수 있었다. 그 장엄한 레이스는 나의 실력도 있었고, 그 날의 運命(운명)의 여신도 내편이기도 했었다. 그러기에 당당히 나의 영원한 반려인 난자의 被膜(피막)의 빠끔한 문을 찾아 뚫고 들어가 그 품에 들 수 있었다.

기뻤다. 내 생애 최고의 승리였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의 결합을 알리는 어떤 酵素(효소)가 宮內外(궁내외)에 퍼져 나가니 이를 신호로 난자 밖을 휩쓰는 시큼한 액체가 분비되고, 아직도 찾아 헤매던 정자들은 흔적 없이 용해되어 죽어 가고 있었다. 精囊(정랑) 시절의 동기들은 이렇게 할 일 없이 모두 불쌍하게 도태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이렇게 엄청난 경쟁에서 이겨 난 결과이기에 어떤 생명이라도 탄생된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고 경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승리이기에 삶의 가치와 질을 논란할 필요는 없다. 남에게 좀 뒤졌다고 그게 뭐 그리 대순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법칙이리다. 활기차게 사는 것은 더욱 좋다. 생명을 가진 모두가 함께 힘차게 산다면 최고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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