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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3-30 08:44
내 아내의 남편과 왔지요/ 눈 산 설악산 단독 산행기(1)
 글쓴이 : 일만성철용
조회 : 4,983  
*눈 산 겨울산 설악산 단독 산행기

1. 전두환 씨 은거지 백담사
2. 봉정암 가는 길
3. 대청봉에서의 감회
4. 천국과 지옥을 오간 행복하고 불행했던 산행
5. 조난에서 새 생명을 되찾은 기쁨
6. 전설 따라 신흥사와 계조암과 울산바위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인제와 원통은 육캉년 칠반의 나이로 설악산에, 그것도 겨울 단독 산행에 도전하는 나를 두고 한 노래 같다.
원통은 마침 장날이었다. 인제를 지나올 때 강에서 빙어 낚시를 하던 생각이 나서 찾아 헤매는 나에게 원통 사람들이 말한다. 강에는 더 맛있는 고기가 있어 인제 우리 원통 사람들은 빙어(氷魚)는 안 먹는다고.
할 일없어 해장국집에 들어갔더니 시장이 반찬인가, 장국밥이 꿀맛이지만 차시간에 쫓기어 안주 삼아 고기를 싸달라고 해서 백담사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용대리 백담사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는 7.1km 1시간 40분 코스로 그 중 3km까지는
셔틀버스(마을버스)가 간다했는데 겨울철이라 운행이 중단되어서 퍽퍽 눈길을 걷는데 개 한 마리가 좇아온다. 돼지고기 냄새를 맡은 것이다. 놈에게는 오늘이 생일과 같은 날이 되었다.
등산객은 나 혼자뿐이다. 소양강을 지날 때에는 아직도 꽁꽁 얼어 있었지만 입춘이 지나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내일 모래라서인가 여기 오기까지 눈을 볼 수 없었으나, 백담사로 향하는 길은 눈의 나라요, 눈의 세계다.

자장(慈藏)스님 세운 절이
폐허되고 소실(燒失)된 무렵
주지스님 꿈에 백발신선이
이렇게 현몽(現夢)하시더래
대청(大靑)서
백(百)째가 되는 담(潭)이
삼재(三災)를 면할 수 있다고-.



내설악의 관문인 일백 백(百) 못 담(潭) 백담사(百潭寺)는 그런 연유로 생긴 절 이름이다.
이곳은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도를 닦던 도량(道場)이요, 독립운동가며 스님이며 시인이신 만해 한용운이 불문에 귀의한 곳이지만, 푸른 수의였던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1988년 11월 23일부터 2년 동안 은거 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한 방 화엄당이 바로 그들의 숙소였다니, 평생에 일본말 모르는 것을 자랑으로 사셨고, 나라가 망했다고 항상 검정옷에 검정 고무신을 고집하시던 만해가 살아 계셨다면 불호령이 내렸을 일이다.
당시 대학생에게 유행하던 은어를 살펴보면 우리 국민들은 어느 대통령보다 더 전대통령을 미워한 것 같다.
'DDD'가 무슨 뜻인 줄 아시는가. '두'한이 '대'가리 '돌'대가리다. '백설공주'는 '백'만인이 '설'설기는 '공'포의 '주'걱 턱으로 이순자 여사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순두부'는 '순'자와 '두'환이는 '부'부다였다.
어느 화장실에 가니 이런 글도 있었다. '전' 두환이예요. '두'발이 없다는 뜻이죠. '환'장하겠어요. 전 노태우 대통령은 그보다는 덜하였지만 그도 마찬가지다.
'노'가리예요, '태'평양에서 잡히죠. '우'습죠?
그러나 그분에게는 이런 시각도 있다. 경제를 안정시키었고, 올림픽을 유치하였고, 야간 통행금지를 없앴고, 중고등 학생들에게 교복 자유화를 시킨 대통령이라고-. 장사꾼들에게 물어 보시라. 전통(全統) 시절이 제일 경기가 좋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백담사에 이르렀는데 절에 들어가는 다리가 95m의 우람한 석조 다리 수심교(修心橋)였다. 옛날에 찾았을 때는 나무다리였는데-.
옛날 고승을 배출하던 백담사가 요즈음은 전씨 부부로 하여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더니 이는 백담사의 자랑일까, 아니면 부끄러움일까.
경내에는 만해를 기념하는 동상 및 건물이 많았다.
절에 들어서니 시비(詩碑)가 여럿 있는데 그 중 고은 시인의 멋진 싸인이 들어 있는 시비가 보인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그 꽃"

전 두환씨는 이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시인이 우리 나라 위정자들에게 일침을 놓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군사정권을 수립할 때 울면서 담배를 찢어버리고 금연으로 분노를 사기던 나라서 그런가.
스님이 큰 종을 28번 치는 저녁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쓰던 유품이나 여기서 생활하던 사진들을 그까짓 것들- 하며 백담대피소로 향하였다.
1박 2식으로 산사(山寺)의 밤을 보내고도 싶으나, 나는 백수(白鬚)라 2만원 대신 3천원 하는 대피소를 택하기도 했지만, 나 같은 술꾼이 먹고 자러 가는 곳이 절이면 되겠는가.


*2. 봉정암 가는 길


나보다 먼저 백담대피소에 왔던 네 분이 새벽밥을 해먹고 일찌감치 떠나간 뒤를 따라 봉정암을 향한다.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길 중에 가장 단거리는 오색매표소길(5km/ 4시간)이지만 경사가 가팔라 험하고 가장 힘든 길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백담매표소길(208km/ 8시간 40분)로 오르면 시간은 많이 걸려도 이 길은 백담계곡을 따라 계속 조금씩 올라가는 길이어서 평탄한 길인데다가 내설악의 관문이라는 백담사와,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암자라는 봉정암(鳳頂庵)이 있어 산악인이 즐겨 찾고있는 코스다.
백담사 부속암자에는 봉정암, 영신암, 오세암이 있다. 그 중 대청봉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암자가 영신암이다. 젊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절터 자리에 연못만이 있었는데 복원되어 눈 가운데에서 옛 모습을 자랑하듯이 조용히 서있다.
산에서 만나게 되는 절은 그 위치가 그곳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절지붕의 유연한 곡선미라든지, 삼원색의 단청이 어울려 하나의 동양화요, 한 편의 서경시를 연상하게 한다.
마당 한 가운데는 종각을 갖지 못한 커다란 종이 을씨년스럽게 엉성한 간이 지붕을 한 체 뜻 있는 이의 시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영신암은 대청과 오세암(25km/ 1시간 20분)을 지나 마등령(총 39km/3시간 20분)가는 갈림길이다.
오세암이라는 절 이름은 다섯 살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었다는 신동 김시습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도 전한다.
조선 인조(1643) 때 설정(雪淨)스님이 오세암(五歲庵)을 증축한 뒤의 일이었다.
주지스님이 오세(五歲) 조카에게 관음보살 염불하며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나들이를 갔다가
눈이 막혀 울며 울며 다음 해 돌아와 보니
뜻밖에
염불하며 있더래
관음보살 도움으로-


집에서 떠날 때는 이 전설 깃든 오세암을 다녀오리라 벼르고 왔으나, 봉점암 길에서는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는 3시간 길이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신암에서 20분 동안 눈에 완전히 덮인 수렴동계곡을 끼고 오르다가 만난 곳이 수렴동대피소였다. 내설악 한가운데서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이름도 아름다운 물 수(水) 수렴 염(簾) 수렴동대피소(水簾洞待避所), 우리 산꾼의 마음을 때리는 얼마나 즐거운 이름이던가.
서울서 서둘러 와서, 서둘러 올라오던 젊은 시절 나는 이곳에 와서 수렴 구슬 물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 잠을 청하곤 했다.
작년 여름 지리산을 종주하며 들렸던, 지리산 산장 중에 산장이라는 치발목 산장과 같이 통나무로 된 산장이 옛날의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주고 있다. 여기에는 제법 많은 산꾼이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고 있었다.
수렴동 대피소에서는 산길을 두고 눈 덮인 물소리 콸콸 흐르는 무서운 계곡 눈길에 들어섰더니 여긴 찬란한 고드름의 세계였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동요와 민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어 까맣게 잊혔던 어린 시절 옛날을 다시 돌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고드름 따먹으며 봉정암 중청길
옛날은 떠나가고 오늘만 남았어도
가버린
그리움들이
고드름처럼 열였네
-고드름


산 속에서 항상 만나게 되는 녹슬지 말라고 발라놓은 붉은 색의 등산길의 쇠다리는 나를 쉬게 한다. 편이 앉아 애써 올라온 곳을 뒤돌아보는 여유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쇠층계 앉아 떠나 올 때 아내가 간식하라고 준 초콜릿과 곶감을 먹고 있는데, 어? 참새보다 약간 조그만 새 몇 마리가 내 주위를 맴돈다. 스님들이 비비새라고 하는 머리가 검정에 몸이 회색인 박새였다.
이 엄동 설한 깊은 산 속에 먹을 것이 있겠는가. 초콜릿과 과자 조각을 먹으라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밀었더니 머리를 갸웃둥거리는데, 뒤엣 놈이 날새게 달려들어 물고 날아간다. 이번에는 먹을 것을 손목 쪽으로 깊숙이 놓았더니 내 손바닥에 앉는 그 차디찬 살아있는 감촉의 그 짜릿한 행복은 하나의 감격이었다.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야생조류에게 먹이를 주어보는 감동을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한 일인가를.
물아일체, 주객일체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대여섯번 되풀이하고 있는데 저 밑에 두 사람 등산객이 보인다.
산에 와서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리 다정할까. 만나면 대화가 되고 곧 우리가 된다. 산의 순치인가. 자연에 동화된 마음이라서인가. 아니면 그런 사람만이 산을 좋아 찾는 까닭일까.
평일을 휴일처럼 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같은 정년한 사람들이라, 산을 찾아온 자체가 목적인데 여기까지 와서 더 급한 일이 있겠는가. 마음만 내키면 며칠이고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유가 항상 내 마음 속에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이렇게 뒤따라오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평요일(平曜日)'이라고 하는 평일에 한가롭게 산을 찾을 수 있는 저 행복한 40대는 누구인가. 폭포 전망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과거의 나와 같은 선생님이셨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나의 홈페이지(http://member.kll.co.kr/ilman031)에 이런 글을 남겼다.


눈 쌓인 설악에서 '일만 선생님'과의 조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대전외고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이강혁입니다. 함께 하신 선생님은 프랑스어를 가르치시는 김새환 선생님이구요. 소주와 중국 술과의 예술 속에서 잠깐이지만 선생님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교직에 있는 저희들도 충분히 본받고 살아가야 할 모습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


그때 드린 말이 생각난다. 교사의 길에는 네 가지 길이 있는 거라고-.
교장이 되는 길. 교수가 되는 길. 돈을 버는 길. 취미생활을 하는 길이다. 취미생활 중 등산에 대한 노하우가 늙어서도 나를 이렇게 단독 겨울 설악 산행을 하게 한 것이라고-.
그때 빠뜨린 말이 있다. 훌륭한 선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훌륭한 선생이란 항상 칭찬 받는 소수의 우수아보다, 칭찬에 굶주린 다수의 보통학생 편에서 사는 교사란 말씀이다.
젊어서 항상 가까이 살던 친구 같은 선배가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산을 좋아하였고, 또 한 분은 낚시를 좋아하였다. 70이 된 지금은, 산꾼은 중풍과 치매로 동네 근처 산을 맴돌고 있고, 강태공 선배는 낚시를 간다고 벼르기만 하면서 사신다.
그중 산꾼은 멋없는 것이 멋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과묵한 분이신데다가, 평지에서는 그렇게 느리던 사람이, 산에만 오면 갑자기 힘이 생기는지- 쉬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가기만 하는 분이다. 그래서 전국 산하를 다니면서도 따라 다니기가 어찌나 힘들든지 집에 돌아오면 입술이 흉하게 부르트곤 하였다. 게다가 주변의 절이나 명승지에는 전연 무관심하여서 당시에는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다시 찾아와서 처음 보게 되는 즐거움이 여행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이 얼마나 큰 배려인가, 큰 축복인가.

지금까지의 계곡 길을 버리고 봉정암 입구에 들어서니 가파른 오름 길이 계속된다. 편하던 산길이 없어지고 눈 속에 움푹 움푹 패인 발자국에 발을 꽂는 고행 같은 산행이 시작된다.
전국 최고의 높이에 있다는 봉정암은 그렇게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그 절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건지-. 경사가 이만저만이 아닌 오름 길이다.

봉정암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부리게 되는 일이라, 숨차고 다리 아픈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숲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우아한 산사(山寺)를 보게 될 때 그 기쁨과 보람은 그 동안의 힘든 모든 역경을 잊게 한다. 등산은 이래서 하는가 보다.

신라 때 자장율사
당(唐)에서 온 진신사리(眞身舍利)
봉황새 따라와
봉황날개 병풍바위
사리탑
적멸보궁(寂滅寶宮)과
1244m 봉정암(鳳頂庵) 세웠다네


설악산에 와서 꼭 알아야 할 분이 자장(慈藏) 스님이시다.
내설악의 백담사, 봉정암과 외설악의 대표 사찰 신흥사를 창건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자장(慈藏) 스님이란 어떤 분이신가.
신라 태종무열왕 때 무림이라는 분이 불교에 귀의하여, 그 아내가 별이 떨어져 품안에 들어오는 태몽을 얻고 석가탄신일인 4월초파일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
어려서 공부를 할 때에는 조그만 집을 짓고, 가시덤불로 둘러막고 거기서 벗은 몸으로 지냈다. 끈으로 머리를 천장에 매달아 정신의 혼미함을 물리치면서 도를 닦았다.
당나라에 7년 동안 유학 가서 당나라 태종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그의 설법은 장님이 눈을 뜨는 신이(神異)가 일어날 정도로 영험하였다. 귀국하여 황룡사 9층탑과, 출가 승려들을 위해 통도사를 세우기도 한 신라의 고승이다.

지금 우리 나라 전국에는 자장스님이 당에서 가져온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놓은 5대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통도사, 태백의 정암사,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이 그것이다.
진신(眞身)이란 부처님의 법신(法身) 곧 몸을 말하는 말이고, 사리(舍利)란 부처나 고승이 죽어 화장하면 남는다는 구슬이다. 부처님의 법신을 모신 곳이 진신사리탑이요, 고승의 사리를 모신 곳이 사리탑으로 보통은 절 입구에 있다.
봉정암은 불타고 요즈음 다시 지은 절이지만, 봉정암 사리탑은 신라 때 자장 스님이 봉황새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온 곳, 봉황이 날개를 편 듯하다는 봉정암 뒷산에 세운 사리탑이다.
사리탑 올라가는 길은 새로 단청한 일주문을 지나 수 없는 석등이 층계 따라 산정을 향하더니 정상 절벽을 앞두고 고색 창연한 5층 석탑이 천연 암반 위에서 내설악을 굽어보고 있다.
자장스님이 봉정암을 창건하고 진신사리를 모실 때였다. 진신사리에서 찬란한 빛이 며칠 동안 눈부시게 밤낮을 밝혔다는 곳에 지금 이 노 시인이 서있는 것이다.
이곳은 우리 나라 불자들에게는 성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진신사리가 있는 절이나 암자에는 대웅전이 없이 불단만 있다. 부처님 법신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중청대피소에서 여장을 풀려 했지만 이 깊은 소청대피소에서 반가이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올라오던 길에서 만난 분들이다. 막걸리에 끌려 권하는 대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공술에 취하여, 한달 넘도록 눈사진을 찍으려고 건설(乾雪) 아닌, 나무에 착 달라붙는다는 습설(濕雪)을 기다린다는 사진 작가들과 중언부언하다가 잠들고 말았다. 그 중에 나의 일가가 되시는 사진 작가 성동규씨도 있었다.
내가 산중에서도 그 비싼 술을 공으로 얻어 먹은 분들은 극기 훈련을 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중학생을 인도하고 온 대학의 후배 선생님들이었다.


*3. 대청봉에서의 감회


소청대피소는 원래 봉정암 바로 오른쪽에 있던 봉정산장이던 것이 봉정암 신축으로 소청봉 쪽으로 30여분 올라간 위치에 1987년에 세워진 산장이다. 어제 여기 오르니 탁 트인 전망이 눈을 황홀케 했다. 좌측에 내설악 전경이, 우측엔 공룡능선의 환상적인 모습이 내가 설악에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나이 높은 분이 높은 산에 와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어찌 다음 산행을 하시냐고 걱정하는 산장 주인과 어제 마신 술빚을 뒤로 하고 홀로 소청봉을 향한다. 날씨는 흐려서 어제 감탄하며 바라보며 사진 찍던 소청대피소의 전망은 운무뿐이다.

소청봉(1,550m)에 오르니 천지는 무거운 흐림뿐인데 중청으로 향한 길이 없다. 찾아보니 좌측으로 크게 발자국이 있어 그 콤파스에 맞추어 가기 30여분만에 운무 속에 중청대피소의 모습이 꿈속에서 보듯 흐릿하게 다가온다.
중청에서 어제 저녁, 밥으로 술로 나를 행복하게 하여주던 최부장 선생님에게 커피 대접을 하면서 내가 지니고 다니던 호각을 선사했다. 나침반과 온도계가 있는 호각이었다.
세상에서 이렇게 한번만의 아름다운 만남을 서로 즐겁게 기억하며 사는 것은 오늘이 얼마나 빛나는 내일이 될까. 그것은 서로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해서이다.

눈(雪) 녹여 밥해 먹고
눈(雪)으로 고양이 세수
대청을 향한 눈길
헛디디면 허벅지 길
설악엔
눈사람보다
눈나무가 많군요
-설산 등반




한반도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 천왕봉(1,917m) 다음으로 높다는 대청봉에 올라온 나는 행복하였다.
우리 한반도의 중추인 태백산맥의 최고봉인 대청.
설악산의 지붕.
해가 하늘에서 떠서 하늘에서 진다는 내설악과 외설악의 눈 내리는 분기점에 서서 마냥 행복하였다.

작년 여름, 루사 태풍을 뚫고 성삼재에서 대원사까지 단독 등반을 하였더니, 금년에는 눈 산 설악산 대청봉이라. 카메라를 자동으로 놓고 나는 나의 등반을 자축하고 있었다.
대청봉 1,908m 입석 왼쪽에 '요산요수(樂山樂水)'란 오석 비가 서있고, 오른쪽에 세로로 '양양이라네라'는 입석 비가 있다.
끝청을 지나 귀때기 청봉의 서북주능을 타던 옛날이 생각난다. 날이 맑으면 보이던 오색. 한계령에서 무박으로 올라와 용아장성으로 향하던 각 가지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오늘은 대청에서 소공원까지의 내설악 천불동 계곡 길로 하산해야겠다.
설악산은 내설악 외설악과 점봉산과 오색쪽의 남설악으로 나누지만 그중 외설악이, 외설악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설악의 경치를 대변한다는 7km의 천불동계곡을 보고 싶어서다. 그러기에 천불동계곡을 보지 않고는 산천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고들 하지 않던가.
천불동이란 이름은 비선대에서부터 계곡 따라 시작되는 1,000여 봉의 모습이 공양하는 보살을 닮았다해서 생긴 이름이다.

김민정 09-05-10 11:21
 
일만 선생님! 겨울 대청봉을 다녀오셨군요. 여름도 힘든 곳을! 장하십니다. 그리고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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