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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30 01:22
 조회 : 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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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2012.겨울호)
시조의 미적 형상화
김 석 철
(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현대시조는 현대시의 한 주축으로서 문학성과 예술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걸 자랑으로 삼고 있다. 시조는 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얼, 말, 글이 빚어내고 지켜온 오직 하나 뿐인 문학양식이다. 또 시조는 본질적으로 율문미학으로서 감정의 절제는 시조가 요구하는 기본 원리이다. 그러기에 시조는 모쪼록 짧아야 하며 상징적인 시어와 함축적인 시어사용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긴장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축약의 처방도 쓰이게 된다.
일찍이 박재삼 시인은 시가 있는 시조, 가락이 있는 시조를 추구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시조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과 형식을 한데 어울려서 갖는다는 것이었다. 상투적인 언어를 어법에도 맞지 않게 어설프게 이어간 문장을 3장 6구 12음보의 잣수만 맞추어 놓았다고 다 시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시조문학』지 가을호에 실린 시조를 중심으로 ‘시조의 미적 형상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맨 앞 순서로 <소시집>에 두 분의 단시조 작품 30여 편씩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편을 골라 보았다.
목련은 부푼 가슴 살며시 보이는데
삼월의 하늘에선 함박눈 쏟아진다
무엇이 어긋났는가 네 기둥을 살핀다.
- 함세린, 「토정비결(土亭秘訣)」 전문
제목이 “토정비결(土亭秘訣)”이다. 토정비결은 일 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참(圖讖)이 아니던가. 초장의 “목련은 부푼 가슴 살며시 보이는데”는 이른 봄 개화를 앞둔 목련의 모습을 은유한 것으로 의인법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종장의 “무엇이 어긋났는가 네 기둥을 살핀다.”에서는 제목 설정의 이유를 집작케 하는 바, 역시 “네 기둥”은 “사주(四柱)”이기에 역학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꽃피는 춘삼월에 쏟아지는 함박눈은 계절의 순리를 거스르는 현상이기에 이상기후일 수밖에 없다.
다음은 <신작특집>에서 몇 편을 골라 보기로 한다.
이게 어찌/ 백사장인가/ 펼쳐진/ 하얀 종이지.//
마음껏/ 색칠하고/ 마음껏/ 지워도 되는//
어릴 적/ 그 미술 시간/ 꿈이 묻은/ 파지(破紙)이지.
- 권혁모, 「정동진에서」 전문
이 작품은 음보별로 시행을 배치하고 있는 특성이 있다. 위는 필자가 편의상 3장시조처럼 연결해 보았을 뿐이다. 중국의 한시나 일본의 하이쿠와 달리 우리 시조의 율격은 교착어인 한글의 특성에 따라 3음절, 4음절을 기준으로 하는 음보의 가락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기 마련이다. 시와 시조는 상상력에 호소하는 창조물이 아니던가. 주제를 심화시키기 위해서 예민한 감수성과 함께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된다. 시인은 기존의 생각과 개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고, 고정관념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는 탈관념의 <보는 법>이 따로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선 전통방식의 그리움과 꿈의 정서가 닿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편의 시조는 이렇게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정서적 조화와 의미의 통일성을 이룸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시인은 아직도 못 다 그린 하얀 도화지 위를 걷고 있다. 하지만 세월은 항상 뒤따라가며 그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게 아닌가.
오르지 못할 하늘
불화살 맞았던가
고개 숙여 피어난
붉은 마음 능소화야
장마에 젖은 네 노래
솔베이지 송 들리고...
- 김정희, 「능소화, 비에 젖어」 전문
한 여름이면 울타리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능소화는 덩굴성나무로 관상용이다. ‘양반꽃’, ‘구중궁궐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이 꽃은 한이 많은 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리따운 궁녀가 임금님을 연모하다 죽어 능소화로 환생했다는 전설을 알고 나면 이 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김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그 무슨 소망이 있어 하늘에 오르고 싶은 능소화 피면 장마가 지고 비에 젖은 꽃잎이 처연하고 애잔하다. 이루지 못한 꿈을 지니고 목고개 떨군 낙화를 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또 “예부터 꽃은 여인과 사랑을 상징해 왔는데 왜 어이 없이 낡은 서정이 움트는 것일까. 끊임없는 영혼의 개안(開眼)을 꿈꾸며 쓴 최근작을 선보이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시인은 “낡은 서정”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는 낡은 서정이 아니다. 그 얼마나 귀한 시의 마음인가. 일렁이는 물굽이를 갈아 앉히는 경지에 다름 아니다.
‘앎’자는 ‘알아감’을 줄인 말 아닐까
사는 일 그것이 곧
알아가는 일일 텐데
살 만큼
산 듯도 한데
왜 이리도
캄캄하냐.
- 문무학, 「‘앎’자 뜯어 읽기」 전문
문 시인은 근래에 들어 낱말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가 부러워 할 일이다. 생명과 교감하는 언어는 물론 사물들의 존재에 대하여 사유하는 시인, 치열하게 언어와 싸우고 화해하며 고민하는 시인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도 느끼는 것은 행과 연의 배치다. 초장은 한 행이며, 중장은 두 행, 종장은 네 행으로 배치하여 한 장을 한 연으로 구성하고 있다. 사실 시조의 행과 연은 그 자체가 시적 효과를 위한 미적 장치이며 하나의 감각적, 의미적 형태이기도 하다. 만일 형식과 내용이 부조화를 이룬다면 결국 시조도 자유시도 아닐 수밖에 없다. 시조의 미학은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그 빛이 나기 때문이다. 종장을 보면 “살 만큼/ 산 듯도 한데/ 왜 이리도/ 캄캄하냐.”라고 노래하고 있다. 겸손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자세다. 어쩌면 역설적인 화법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어디 ‘앎’의 끝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강을 파 챙기려는 발상에 깜짝 놀라
인(人)자 닮은 지류 물고 철새 멀리 북상한다
놀라서 떨군 깃털이 행여 되 올 좌표 될까.
- 박영학, 「안행(雁行)」 전문
박 시인은 가람 선생의 시 형식을 고수하여 항상 3행시조를 쓰고 있다. 근래엔 『가람시조문학회』를 이끌며 해마다 연간집 『가람시조』를 펴내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필자들에게까지도 모두 3행시조로 창작해 줄 것을 요청한다. 대단한 시조사랑 운동이 아닐 수 없다. 문학작품은 세상을 상대로 한 작자의 발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선 주제를 시어와 문맥, 행간 속에 감추어 두고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체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속 깊은 뜻은 감춘 채 비유와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현상에 대하여 냉철한 진단을 내리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다. 시인은 사회의 병리현상을 발견하게 되면 냉철하고도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또 그 진단에 따른 지혜로운 처방을 요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을 놓고 한편에서는 환경훼손이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환경의 현대화라고 엇갈린 진단을 내렸었다. 그러나 현명한 판단은 국민과 역사에 맡겨야만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볼 문제다. 문학작품에 시대상이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시나 시조는 어쩔 수 없이 갈증의 문제를 다루는 노래이기에 시인은 삶에의 어떤 갈망을 언어로 포착하여 시화(詩化)하기에 이른다. 감정의 절제는 시조가 요구하는 기본원리이며, 비판의식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시인의식이 아니던가. 또한 제목에서 보면 “안항(雁行)”이 “안행(雁行)”으로 상징하는 바 그 의미가 깊다고 본다. 시인의 시대정신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질펀한 사람냄새
풍정을 탐미하고
헐값이 공존하는
재래시장 야채전은
싱싱한
봄 푸성귀로
성시 이룬 남새밭.
뒷골목 난전 돌며
장바구니 고향 담고
허름한 식당 찾아
해장국에 허기 채워
민초들
평범한 삶이
깔려 있는 장마당.
- 송귀영, 「장마당에서」 전문
“모란시장”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시조다. 모란시장은 성남지역의 5일장으로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름난 민속시장이다. 문학은 우리 생활의 거울이라고 했다. 이 시조는 삶의 진지한 의식을 언어로 환치하는 묘미가 있다. 현실적이면서 삶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다. 시조의 기본 율조를 충실히 지키면서 한 수 7행씩으로 배행하고 있다. 묘사는 시인의 필수과목이라고 하지만, 특히 시적 묘사에서는 안이함을 떨쳐버려야만 하는 함정이 있다. 묘사 위주의 표현은 자칫 영혼이 결여된 하나의 스케치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시나 시조는 항시 리얼리즘적 요소보다는 상상의 소산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만 할 것이다.
꽃 대궁 꺾던 생이별
서럽다
아니하고,
끊긴 시간을 한 땀 한 땀 꿰맨다
꿰매다
울먹이는 밤
들창머리
실루엣.
- 이정환, 「실루엣」 전문
시조 한 수는 반드시 3행으로 표기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지만, 시적 효과를 위해서 단어별, 음보별, 구별, 혼용별 등으로 행과 연을 배치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다양한 기사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시조도 역시 행과 연의 표기는 언뜻 자유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음보의 등장성(等長性)까지도 살피면서 찬찬히 음미해 보게 된다. 일찍이 조운 선생도 시조창작에 있어서 음수활용의 폭을 넓히고 율조를 다양하게 실험하시었다. 시조의 행이나 연 가름은 시조의 최소한의 형식장치의 담보 외에 시적 긴장을 최고의 상태로 올려놓는 정점의 구실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 단수시조에선 절제된 언어로 상상력을 숨겨둠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만끽하게 한다. 또한 이 시인은 “꽃 대궁 꺾던 생이별/ 서럽다/ 아니하고,// 끊긴 시간을 한 땀 한 땀 꿰맨다// 꿰매다 울먹이는 밤/ 들창머리/ 실루엣.”이라고 노래하며 종장을 명사로 끝내어 독자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렇듯 축약의 수법은 행간에 뜻을 숨기고, 내면적이고도 형이상적인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도 하고 귀로 들을 수 있게도 한다. 읽을수록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조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 또한 그렇거늘
무엇을 마음 졸이며
내일 날을 탐할 건가
그 몇 번
영고(榮枯)의 꿈이
흩고 간 바람소리.
뭍과 물이 애달프게
손 내밀며 불러 본들
세월은 그침 없이
앞길을 재촉하는 걸
머잖아
내 닻을 내릴
암벽 앞의 제비꽃.
- 정위진, 「흘러가는 것들」 전문
살아가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흐르는 세월에 떠밀려가면서 그 만큼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게 현대인의 삶이기도 하다. 인생을 관조하며 자연의 삶을 성찰하는 자세의 시조다. 독자를 정감 있게 이끌며 편안함을 준다. “무엇을 마음 졸이며/ 내일 날을 탐할 건가” 체념의 초탈한 위치에서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순리의 따스한 눈길로 미래를 바라보는 현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만하면 벼랑 앞의 제비꽃도 웃으며 손을 흔들 것이다.
다음은 <단시조 특집>에서 골라본 작품들이다. 단시조는 시조의 본령이기에 그 짧은 3장 6구에 넓고 넓은 우주라도 들여앉혀야만 한다. 그럼 단시조의 미적 형상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물 오른 팔 한껏 뻗어 하늘을 끌어안은
곧추 선 겨울 나목 묵은 숨 토해낸다
온 산이 요가하는구나
연두 빛 핏기 돌겠다.
- 고동우, 「봄」 전문
우리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다가 종내는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 “봄”에서는 고 시인의 정신세계를 한층 정화시키는 계절이 되고 있다. 계절과 자연에 대한 관조의 자세는 이 작품에 이르면 힐링으로 통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봄을 맞이하여 묵은 마음을 비워내고 거듭나게 하며 산이 요가를 한다. 긍정의 눈, 은유를 통한 감각적인 표현이 주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다분히 객관과 주관이 조응하는 새로운 광경이다.
부채 살 펼치듯이
검붉은 물 일렁인다
시름 고인 허벅에도
새 피가 돌아가고
나는야 스란치마폭
등이 환한 개미 병정.
- 김연동, 「성산 일출」 전문
언제 보아도 일출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필자는 강원도의 정동진, 전남의 향일암에서의 일출을 상기하며 제주의 ‘성산 일출’을 본다. 대부분 눈앞에서 연출되는 일출의 장관에 감탄과 함께 활력의 기운을 얻으며 묘한 감정에도 몰입하게 된다. 일출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시름 고인 허벅에도 새 피가 돌아가는 것이다. “부채 살” “스란치마폭” “개미 병정” 등은 그런 상념의 소산이리라. 장엄한 우주의 위력 앞에 우리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무엇이든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연스런 율조가 배여 있는 이 시조의 가락과 종장에서의 전환과 비약의 은유가 이채롭다.
그녀가 감아놓은 사슬에 묶여서도
옥죄는 눈웃음을 사랑이라 믿는 백치
제 무덤
파고 앉은 줄
죽을 때는 알라나.
- 최언진, 「능소화 그 아편 같은」 전문
사랑에는 돈도 명예도 국경도 없고 나이 차이의 벽조차도 없다고 했다. 누구든지 사랑의 마법에 걸리기만 하면 바보 천치, 백치가 되어 헤어나기 힘들기 마련이다. “그녀가 감아놓은 사슬에 묶여서도/ 옥죄는 눈웃음을 사랑이라 믿는 백치/ 제 무덤/ 파고 앉은 줄/ 죽을 때는 알라나.” 그야말로 “능소화 그 아편 같은” 사랑이다. 언제나 사랑의 결과는 자업자득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상기시킨다.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올바른 사랑법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다음은 <가을 시조단>에 실린 작품 중에서 두 편을 골라 보았다.
나무는 커 갈수록 덕성이 넉넉하다
비탈에 살면서도 몸통을 바로 세워
불볕에 제 몸을 살워 정자 그늘 이루네.
- 김영환, 「덕성(德性)」 전문
자연과 인간이 호혜적으로 공존하는 균형감각의 시정신의 발로다. 시는 마음의 거울을 닦는 방편이 아니던가. 시는 사물의 인식에서 혜안이랄까 직관함으로써 언어 이전의 사물을 통찰하는 예술이다. 주제가 선명하다. 작품 속에 마련한 상상의 공간에서 시인은 귀한 정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무는 춘풍추우 모진 환경에서도 오로지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 생로병사의 고통조차도 초월한다. 나무의 덕성은 어려움을 이기고 커갈수록 늘어난다. 핵심어를 제목으로 선정하고 있으며, 초장에 의인화 수법을 적용하여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땅 마음 하늘 마음
고스란히 받쳐 들고
삼가
위로 아래로
올리고 내리나니
비키라
저리 비키라
물색없는 나리들
- 박종대, 「천지(天池)」 전문
시에서의 표현은 주로 비유와 상징을 전제로 수행되며, 상상력은 2차적 종합적, 마술적인 단계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일찍이 코올리지는 상상력을 “시의 생명”이라 했고, 바슐라르는 “창조의 내면적 힘”이라고 했다. 즉 상상력이 작품 창작의 바탕이 되어준다는 의미다. 박 시인은 평범한 소재라도 효율적인 부림의 기량을 발휘하여 능히 자신의 체취를 풍기게 하고 위트와 기지가 번뜩이게 한다. 위트나 기지, 풍자 등은 시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같은 것이 아닐까.
천지(天池)! 천지에서 느끼는 시상의 명쾌함을 본다. “비키라/ 저리 비키라// 물색없는 나리들” 이렇게 종장에서는 비약, 전환, 명령, 반복, 점층의 혼용표현기교로 시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물색없는 나리들에게 비키라고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형국이다. ‘비켜라’가 아닌 ‘비키라’의 시어에서도 묘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맨 끝으로 <동인순례>에는 ‘무궁화시조문학회’ 회원 시조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박상준 회장의 작품 한 편을 골라 보았다.
하르르 바람결에 눈웃음 양귀비꽃
늦은 봄 태화강변 꽃들의 붉은 함성
사각의
상자 속으로
세월 잡아 가둡니다.
- 박상준, 「찰까닥」전문
제목 “찰까닥”은 품사가 부사이며 의성어다. 의성어를 제목으로 선정한 매력이 있다. 초장에 쓰인 “하르르”, “바람결”, “눈웃음” 등의 시어도 곱다. 중장엔 “늦은 봄 태화강변 꽃들의 붉은 함성”이 의미 깊은 은유로 다가선다. 그리고 종장에선 초장과 중장의 내용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꽃은 물론이요, 꽃들의 붉은 함성까지도 “사각의/ 상자 속으로/ 세월 잡아 가둡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쉽게 읽혀지지만 내포된 뜻이 깊은 단시조다. 다만 종장에서 시적 긴장을 좀 더 높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으로 『시조문학』가을호에 실린 작품을 골라 편집 순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필자 나름대로의 주관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므로 작자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 ‘시조의 미적 형상화’를 위해 애쓴 작품들이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조의 미적 가치는 기존의 미를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현대시조가 현대시로서의 그 위치를 확고히 하려면 고도의 상징성이 있어야 하고 또, 보다 투철하고도 고결한 시정신을 내포하여 공감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사실 한 편의 시조 속에는 시인의 의지가 내재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영원하면서도 찰나적인 새로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그 새로움을 위해서 끊임없이 천착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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