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인생과 사회의 여러 의미에 대
한 깨달음과 가르침을 준다, 어떤 종교나 도덕처럼 윤리나 가치를 직접적으
로 가르치지 않고도 사람살이의 구체적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스스
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대단히 귀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요즘에 명
시名詩로 선정되어 학생과 청소년들이 애송하는 우리나라 현대시를 살펴보
면, 그 구성과 운율이 시조와 유사한 작품들이 상당수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우리의 성정은 시조의 가락을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내고 있음
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필자도 처음엔 현대시를 전공하다가 뒤늦게야 시
조의 매력을 알게 되어 이렇게 시조를 끌어안고 이 나이까지 오고 있는 것이
다. 시조는 오로지 ‘한국시’이며 ‘우리시’이기에 나는 자랑스럽게 오늘도 시
조사랑을 주장하는 것이다. 거듭 언급하는 바이지만 시조는 그 생성 자체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율조의 형식미를 바탕으로 하므로 현대시와의 구
분은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작자 자신은 현대시조라고 발표했으나 정작 그
형태조차 시인지 시조인지 구분되지 않는 작품이 허다함은 하루속히 시정되
어야 할 우리 시조문단의 현안문제인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시조
시인들의 허다한 작품들이 시조로서의 형태만은 갖추었으나, 정작 그 문학
성과 예술성에 소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조는 엄연히 한국문학의 한 장르
이며 언어예술이 아닌가. 그러기에 마땅히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시조 작
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시조의 특성인 시조의 틀에 율격을 살리면서
참신한 착상, 참신한 시어로 탄탄한 구성을 꾀하여야 한다. 물론 내용상으로
도 함축성, 간결성, 내포성, 상징성, 시대성, 풍자성 등을 갖추면서 주지와
주정의 교합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한정된 지면에 시조다운 시조에 대한
얘기를 이루 다 말할 수는 없다. 어떻든 시조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는 한없는 정성으로 갈고 닦는 절차탁마의 공을 들여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
다. 일찍이 이호우 시인께서 “개화”라는 단수 한편을 10여 년에 걸쳐서 완성
했다는 말이 귓전에 울린다.

그러면 계간 『시조문학』 봄호에 게재된 시조작품을 중신으로 편집순서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시조문학 소시집>란의 작품이다.

재채기 한 번 하니 세상이 경기한다
그렇게 고개 숙여 발밑을 보랬더니
남의 말 귓등으로 듣다 귀싸대기 맞는다.
- 김명호 『폭풍』 전문

김명호 시인의 단시조와 연시조 30편중에서 한편을 골랐다. 충무공 이순
신 장군의 ‘유비무환’이란 경구가 떠오른다. 사실 폭풍은 그 위력을 사전에
미리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안보불감증이란 말도 많이 유행하
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웬만해선 놀래거나 자극조차 받지 않는 타
성이 생겼다. 심지어 북한이 금세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상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대부분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폭풍이나 홍수 같은 일
기 예보에도 사전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허나 실
제로 막상 큰 재앙을 당하고 난 후에야 울고불고 법석을 피우는 건 유별난
우리 국민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말 귓등으로 듣다 귀싸대기 맞는다.” 촌철살인의 정곡을 찌르는 형
국이다. 폭풍은 그야말로 폭풍인 것이다. 단수의 묘미가 있다. 매사에 사전
대비를 신중하고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며,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선 후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전 대비를 소홀히 하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
하는 단시조로서 비유와 상징의 교훈적인 주제가 깨우침을 던져주고 있다.

다음은 <신작 특집>란에서 몇 편을 골라 보았다.

모두가 떠나버린 고요한 밤거리
그대는 아는가 어둠의 적막함을
앙상한 가로수 아래 겨울바람이 세차다

날개는 부러지고 둥지는 날아가고
그대는 아는가 비둘기의 울음을
승지들 환호 너머에 패자는 눈물짓는다

세상은 세상은 그런 거라 하지만
그대는 아는가 울어버린 내 마음을
겨울 밤 바람이 차다 어디서 한 잔할까
- 2002년 겨울 자정 넘은 길거리에서
- 강만수, 『그대는 아는가』 전문

강만수 시인의 연시조 세 수다. “그대는 아는가” 설의법 표현의 제목으로
암시하는 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누구에게든 뜻하
지 않는 실패의 경우나 낙담의 처지에 놓이는 수가 있을 것이며, 어느 때는
일이 꼬여서 설상가상으로 더 어려운 일이 겹쳐 앞이 안 보이는 절망에 빠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우리의 삶은 굽이가 있고 기복이 있기 마련이 아
니던가. 옛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고 본다. 이 시의 시적화자는 어느 추운 겨울 자
정이 넘은 길거리에서 거듭거듭 “그대는 아는가”라는 절실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야말로 “날개는 부러지고 둥지는 날아가” 버린 절망의 상황에서 어
쩔 수 없이 현실도피의 출구 모색을 갈구하고 있다. 더구나 ”겨울밤 바람이
차다 어디서 한 잔 할까“ 막상 오라는 데도 갈 데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그냥 취기로라도 모든 걸 잊고 싶은 것이다.

내 마음
활주로에
너는 뜨고 내리는가
시간의
하얀 촉루
밤하늘을 닦는 동안
가슴엔 별이 돋았다 그리움이 커갔다.
- 김민정, 『그리고, 별』 전문

김민정 시인의 이 단시조는 충만한 감성으로 창조된 소우주라 할 것이다.
마음의 활주로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과 사연들이 뜨고 또 내린다. 낮
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별도 뜨는 것이다. 제목 “그리고, 별”은 이 뜨고 내리
는 수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유독 “별”에 머무는 상념을 강조한다. 이 작품에
서의 “별”은 그리움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리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정서
가 아니던가. 첫째 연의 “너”는 “별”이며, “그리움”의 대상이다. 상상력의 깊
이가 있고 시적 창조를 이룬 작품이다. 김 시인은 등단 30여 년에 가까운 중
견인데도 <시작 노트>에서 “아직도 작품 앞에서는 낯설다.”라고 겸손하게실
토하고 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눈썹 가려운 날
그게 뭐 중요하냐.
바람에
홀씨로 날아온
봄날 같은
이 해후.
- 김세환, 『첫눈 오는 날』 전문

김세환 시인의 서정적인 단시조다. 초장은 한 행으로, 중장은 두 행으로,
종장은 네 행으로 배행하는 의미구조를 취하고 있다. 견고한 서정과 삶에의
연민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첫눈이 오는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
게나 가슴을 설레게 된다. 해마다 맞는 첫눈이지만 해마다 반갑고 새롭기만
하지 않던가. 추운 겨울이어도 분분이 내리는 솜털 같은 첫눈은 그야말로 봄
날 같은 해후라고 할 것이다. 김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등단 40년 넘게
매달린 ‘시조공부’라고 했다. ‘시조창작’이라고 말하지 않고 ‘시조공부’라고
한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이 얼마나 겸손한 자세인가. 오늘날 시조를 한낱
저급한 문학 양식으로 터부시하는 일부 문인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사실 시조의 문학성을 알게 되면 누구나 시조야말로 진짜 우리시요, 한국시
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성근 바위 해초들이 빌붙어 살자하니
커나면 커날수록 파도 날도 거세진다
젊을 때 이 같은 역경, 딛고 서야 크나니.
- 김영환, 『역발상逆發想』 전문

김영환 시인의 작품 『역발상逆發想』이다. 정격 단시조에 비유의 시적 표현
으로 우리 젊은이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대를 살아
가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고 또 역발상도 요구된다.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하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가녀린 해초들이 성근 바위에 빌붙어 살아
가려면 거센 파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겠는가. 사실 수목
들도 춘풍추우, 북풍한설을 이겨내며 자란 나무라야 결국 튼튼한 나무가 된
다. 젊을 때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해야 된다고 했다. 어려움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낸 사람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날파람 스친 가지 다소곳이 여운 일고
여울물 하얀 소리 파란 바위 맑은 울림
눈 시린 차가운 길목 잠을 깨는 시냇버들

쪽문 연 몽실아씨 부드러운 민얼굴로
그 누굴 그리 그려 얼음 디딘 맨발인가
차분히 내리는 애정 끊임없는 벗이어라.
- 박동인, 『버들강아지』 전문

박동인 시인의 연시조다. 올봄은 유난히도 늦은 걸음으로 찾아오고 있다.
지금은 절기상으로 우수 경칩도 지나고, 곡우를 맞는 4월 하순 무렵인데도
곳곳에 봄비 대신 봄눈까지 내리고 있으니 이상기온이 그 도를 벗어나고 있
는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마땅히 햇병아리 솜털처럼 포근한 봄날씨여야 하
는데 올해는 그게 아니다. 봄의 전령인 “버들강아지”는 “버들개지”와 함께
쓰이는 말인데, 물가에 하얗게 피어 솜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특징이 있
다. 부드럽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버들강아지에는 따스한 애정이 담겨있다.
청각의 시각화, 시각의 청각화 등 공감각적 심상으로 시적 표현의 묘미를 살
리고 있다. 참신한 착상으로 평이성을 탈피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그 상상
의 폭이 넓고 깊다.
“쪽문 연 몽실아씨 부드러운 민얼굴로/ 그 누굴 그리 그려 얼음 디딘 맨발
인가” 그야말로 눈 시린 차가운 길목, 잠을 깨는 시냇버들이다.

유실물
가슴 덜컥
너 뭔가 두고 왔지
그래 참 그랬었나
어디다 뭘 말이야
작은 건 아닌 것 같고
생각나야 말이지.

더한 일 그르칠라
그런대로 그냥 가자
가노라면 또 나온다
왕백
왕천
왕만리역
그 때는 거기 어디서
문뜩 생각 날거야.
- 박종대, 『왕십리역 유실물센터』 전문

박종대 시인의 두 수 연시조다. 각수마다 종장만을 별도의 연으로 처리하
여 강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박 시인은 시조의 율격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종래의 배행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운율과 의미, 이미지
의 기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시각적 기복적 표기 방식을 취
하고 있다. 고유의 여백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뇌랄까 속성의
일단을 보여주는 두 수의 시조에서, 현실적 상황과 내면적 의식상황이 이중
구조를 이루는 가운데 해학과 풍자, 상징으로 포장한 사색의 밀도는 박 시인
만의 개성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박 시인은 보편적 가치와 뛰어난 안목으로 현실에 대한 진단
과 처방을 내리되 이를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나름의 솜씨가 있다.

흐르는 물입니까?
아니면 꿈입니까?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입니까?
이 하루
이십 사시를
바람에게 묻습니다.
- 조성국, 『무엇이 세월입니까?』 전문

조성국 시인의 단시조다. 대부분 제목에 문장부호나 물음표 사용을 자제
하지만 조 시인은 과감하게 고정관념을 깨뜨려 강한 호소력을 얻어내고 있
다. 반복된 “〜입니까?”의 정답은 진정 무엇일까? 우선 제목에서 “무엇이 세
월입니까?”라고 단호하면서도 절실한 질문에 독자들도 나름대로 한참동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제목에서 “세월”에 함축된 사유의 공간
은 넓고도 깊기만 하다. 시의 화자는 오늘도 심각하게 하루 종일 바람결에
묻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세월입니까?

감당 못할 그 뜨거움 내게로 다가와서
이 진심 우려내는 그대는 누구신가
여민 맘 풀라하시는 그대 정녕 뉘신가.
- 최언진, 『작설차』 전문

최언진 시인의 삼장시조다. ‘작설차’는 갓나온 차나무의 어린싹을 따서 만
든 좋은 차가 아니던가. ‘작설차’에서 착상된 시상은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
와 진심을 우려내는 사람, 여민 맘을 풀라하시는 사람으로 그 의미가 확대
되고 있다. 여성적인 정서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중장의 “그대
는 누구신가”와 종장의 “그대 정녕 뉘신가”는 점층적 설의, 반복법 표현으로
강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특히 초장의 “감당 못할 그 뜨거움”, 중장의 “이
진심 우려내는”, 종장 “여민 맘 풀라하시는”의 시구들은 작설차의 이미지 형
상화에 기여하며 시적 감동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다음은 <단시조 특집>란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따스하이
빈 냉골에 번져오는 온돌같이
긴 터널을 막 벗어나
밝아지는 얼굴같이
어둔 밤
헤집고 나온
새벽노을 빛깔같이
- 산 강, 『납매臘梅』 전문

산강 김락기 시인의 단시조다. “납매臘梅”는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다. 이
작품을 음미하여 보면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각 장을
“〜같이”의 부사어로 종결하여 참신성을 살리고 있으며, 그 의미의 축약 효
과도 거두고 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시상을 구조화하고 내적 정
서를 드러낸 작품이다. “납매臘梅”에서 감지하는 바, 추위 속에서의 따스함
과 어둠을 뚫고 새로움으로 탄생되는 메시지가 다분히 희망적이며 미래지향
적이다. 일상의 소재에서도 이 같이 깊은 영적 호흡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납매는 바로 김 시인의 따스한 인품의 상징이 아닐까.

계절의 민감하던 소녀는 오지 않고
노을처럼 번져오는 그리움의 그 사연을
한 잔의 그윽한 향이 내 마음을 다스리네
- 이지연, 『감국차』 전문

이지연 스님의 단시조 『감국차』는 시적 착상이 참신하며 물흐르듯 자연스
런 율조가 미적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소녀 - 그리움 - 그윽한 향”으로
전개되면서 감국차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 스님은 오
랜 동안 불도에서 자기 견인과 내적 심화의 역량을 쌓은 중견시인이시다. 근
원적 그리움의 정서가 담긴 소박한 ‘감국차’, 갑자기 필자도 감국차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소녀의 꿈을 접어
띄워보낸 강가에서
사랑하는 아우와 벗
흘러간 이 강가에서
멍이 든
가슴 보듬고
나도 흐를 강가에서.
- 정위진, 『강가에서』 전문

정위진 시인의 단시조다. 제목에서부터 각장의 종결을 “〜에서”로 처리하
여 각운을 살리고, 반복법 표현으로 강조의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아
울러 시적 함축미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흘러가는 강물은 시적화자
의 삶이며, 세월이 아니겠는가. 인생의 참 의미와 근원적 애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강가에서 추억하고 사유하며 성찰하는 삶! 강가는 많은 상념을 생
산하고 저장하는 한없이 넓은 영역이다.

다음은 <봄 시조단>에서 세 편을 골라 보았다.

이른 아침
획배달에
갸우뚱
열어보다
달디 단
사탕부케
문득 스친
환한 얼굴
아하! 참
오늘이 그날
쉰 계절의
신세대
- 이가은, 『화이트데이』 전문

이가은 시인의 단시조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장별로 연을 구성하고 음
보별로 배행을 하고 있다. 누가 시의 행과 연은 강력한 시그널이라고 했던
가.여백에 담긴 뜻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렇게 시상을 포착
하고 구성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둘째 행의 “휙배달”은 외래어인 “퀵서비스”
를 우리말 표현으로 고친 것이라는 각주를 달고 있다. 재치 있는 신조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검증을 거친 단어가 아니라 직관력에 의한 깨달음의 시
어인 것이다. 종장에서도 시조적 묘미를 한껏 살리고 있다.

꿈길 속 그린 언덕 낯선 풍경 이미지에
나래 치며 나는 철새 섧게도 우짖는 강
석양을
짊어진 노을
나를 돌려 세운다.
- 장효순, 『비단강의 추억』 부분

장효순 시인의 두 수짜리 연시조 중에서 둘째 수를 뽑아본 것이다. “비단
강”은 “백마강”을 이르는 말이란다. 백마강이라면 흥망성쇠의 시대상이 깃
든 역사의 공간적 배경이 아니던가. 단순한 풍류객의 노래가 아니기에 비유
와 상징에서 심원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탐미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역사 인식의 장으로 삼고 있으며, 시적 대상으로부터 일정거리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엿볼 수 있다. 평서형으로 종결한 문장이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적막이 드리워진
법당에 홀로 앉아
손바닥 금을 지워
올리는 기도 소리
그 한 몸
애가 타도록
촛불도 울고 있다.
- 조영희, 『촛불의 기도』 전문

조영희 시인의 단시조다. 법당에 홀로 앉아 손바닥의 손금이 지워질 정도
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촛불”로 환치되어 “그 한 몸/ 애가 타도록/
촛불도 울고 있다.” 그렇다 촛불이 켜져 있는 동안은 촛불도 울고 있는 것이
다. 경건한 기도와 빛나는 은유를 만나게 되는 형국이다. 시적 표현이란 이
렇게 정서반응의 언어에 은유의 옷을 입혀야 제 멋이 난다.

이번호의 계간평은 ‘상상력의 깊이와 시적 창조’의 측면에서 짚어 보았다.
작품평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건전한 정신세계와 보다 바람직한 창작방향을
짚어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번 호엔 유독 많은 단시조 작품
들을 언급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응축’의 미가 미흡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시조에서의 ‘응축’이란 생략과 비약을 다 포함하면서도 핵심적인 최
고한도의 성분으로 압축하여 전체를 암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
라, 또 몇몇 시조시인들의 작품에서는 시조로서의 구비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교착어인 우리말의 특성상 시조의
기본형에서 한두 글자의 가감이 없을 순 없지만, 언어의 조탁과 알맞은 시어
에 대한 피나는 노력 없이 너무 가볍게 창작했다고 느껴지는 시조들이 더러
발견되었다. 율격이 맞지 않는 그런 작품들은 우선 형태면에서 시적으로는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시조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본란에서의 언급
을 제외하게 됐음을 밝혀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