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생명 그리고 시조

                                       이정자

순서

1. 들어가기

2. 시조의 생명

3. 바다의 숨, 나의 숨

4. 시조와 한국어, 모라

5. 나오기 

1. 들어가기

생명 자연 그리고 시조에 대해 상고해 보고자 한다. 생명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연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자연에서 생명이 자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이다. 풀 한 포기에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육신 또한 태초에 자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생명이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람은 자연을 보호한다. 자연이 훼손되면 거기에 사는 생물이 훼손된다. 그래서 자연 파괴는 곧 생명의 파괴이고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지구의 한 쪽을 멍들게 하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유지의 소산 일뿐 아니라 문화유산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문학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문화와 문학 자료가 자연에서 얻어지는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논자는 자연의 그 많은 소산 중에서 바다의 숨소리, 자연의 숨소리와 관련하여 시조의 생명과 자연 그 탄생에 대해 시조시인의 시각에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새 생명

아빠의 손 위에서 엄마의 손 위에서

아가는 평온하게 꿈나라 여행하네

아가는 천지를 안고 새 세상을 열었네.

생명의 봄

나목은 초록빛깔 고운 옷 갈아입고

햇살은 대지위에 온화한 기운 쏟아

만물은 구각을 벗고 새 생명을 잉태하네.

2. 시조의 생명

2013년 10월 29일 『문학의 집 서울』에서 ‘2013 ’서울문학인대회‘가 있었다. 그 주제가 「시조의 생명을 생각하다」였다. 시조 단체에서 하는 세미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학의 집, 서울』에서 한다는데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심포지엄에 기꺼이 참가했다.

기조발제에는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김학성(성균관대 명예교수)교수가, 제1주제는 이근배 시인(예술원 회원)의 「겨레시의 드높은 가락과 향기」, 제2주제는 장경렬 교수의 (문학평론가,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시조의 세계화 그 가능성을 찾아서」, 제3주제는 한분순 시인(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의 「현대시조 100년, 한국시조시단의 현황과 당면 문제」가 발표되었다. 시조의 밝은 미래를 점쳐보는 유익한 시간이었고 참석자들 또한 시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일신한 것으로 보였다.

심포지엄과 병행하여 기념문집까지 예쁘게 만들어 1권씩 받아 왔다. ‘110인 문인이 읊은 감성노트’ 『시조 한 수의 사랑』이다. 집에 와서 밤늦도록 차근차근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일반 독자로서의 소설가, 시인,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등 각 장르의 작가들은 시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있을까 하고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어 나간 것이다. 거의 모든 필자들은 시조에 호의적이었고 시조를 써 보고 싶다는 반응도 보였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아직도 고시조 몇 편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시조가 그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도 하리라. 현대시조 단시조 보급의 필요성을 새삼 느꼈다. 그 가운데서도 몇 몇 시인의 시조가 눈길을 끌었다. 작품도 좋았고 감상 또한 적절했다.

또 하나 한 권을 다 읽고 허전하고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시조에 대한 형식조차 제대로 모르는 문인이 있다는 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고등학교를 통하여 옛 시조 한두 편은 외울 것이고 시조가 3장이라는 것쯤은 다 알 줄 알았는데 이를 놓치고 있는 사실에 내가 도리어 얼굴이 뜨거워 왔다. 시조는 시조이다. 한시 절구를 4행으로 그대로 번역한 것 같은 4행시는 시조가 아니다. 또 가사투의 몇 행 글도 시조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온전한 시조를 초장과 중장만 옮겨 양장시조 같이 한 것 또한 작자에 대한 큰 실례이다.

한시 절구를 행 단위로 그대로 번역하는 것과 시조형식에 맞추어 번역하는 것은 그 표현 방식이 다르다. 다음을 살펴보자.

破屋凉風入(허름한 이곳저곳 찬바람 불어들고)

空庭白雪堆(빈 뜰에 적설들이 멋지게 쌓였구나)

愁心與燈火(근심 속 내 마음과 저 등불 함께하여)

此夜共成灰(이밤도 일심동체로 재가 되어 가는구나)

- 김수항(1629-1689)

한시 절구를 시조형식에 맞추어 번역할 때는 3행(轉)과 4행(結)을 시조 종장에 맞추어 해석하면 온전한 시조가 된다. 

허름한 이곳저곳 찬바람 불어들고

빈 뜰에 적설들이 멋지게 쌓였구나

수심은 등불 더불어 이 밤 함께 재가 되네.

그래서 시조가 한시절구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외래 연원설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재래연원설로 귀결됐다. 위 한시 번역에서 보듯이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이다.

다시 언급하면 2013년 10월 29일 ‘서울문학인대회’「시조의 생명을 생각하다」에서「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김학성 교수가, 「겨레시의 드높은 가락과 향기」를 이근배 시인이, 「시조의 세계화 그 가능성을 찾아서」를 장경렬 교수가, 「현대시조 100년, 한국시조시단의 현황과 당면 문제」를 한분순 시인이 각각 발표했다. 시조의 밝은 미래를 점쳐보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조의 생명은 첫째 시조이어야 한다. 곧 내용과 함께 시조의 형식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처음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형식이 익혀지면 자연스레 시조의 형식으로 시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잘 알려진 고시조 20-30편 정도만 외우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시조의 격을 갖춘 우수한 작품을 번역하여 세계를 향해 나아가면 시조가 하이쿠를 능가할 날이 오리라는 꿈을 꾼다. 꿈은 이루어지니까.

3. 바다의 숨 나의 숨

어느 해 겨울바다에 간적이 있다. 여름바다와는 확연히 다른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묵묵히 서있었다. 철썩이는 파도를 응시하며-. 주기적으로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다 내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가만히 나의 숨소리의 주기와 파도의 주기를 비교해 보았다. 파도는 나의 숨과 똑 같은 주기로 철썩이고 있었다. 곧 그 주기가 동일함을 알았다. 파도는 바다의 숨소리이고, 바다의 날숨이었다. 어찌 바다뿐이랴. 우리가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여 그렇지 우주 삼라만상이, 풀 한 포기도 주기적으로 숨을 쉬며 리듬을 타고 생명을 이어간다.

우리가 날마다 구사하는 언어 또한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우리말은 대개가 2·3음절로 구성되었다. 2음절이 반복하여 4음절이 되고, 2·3음절이 합하여 5음절이 되고 ... 이 언어 또한 반복하여 읽으면 리듬을 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책을 소리 내어 노래하듯 읽었다. 천자문이 그렇고, 가사가 그렇고, 시조가 그렇다. 우리말은 대개가 2.3 음절로 구성된다. 이것은 한국어의 언어학적 특성이다. 이를 활용하고 곡용하면 3.4.5 음절이 된다. 여기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시조형식이리라 .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시가뿐만 아니라 산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국문학 시가 운율의 기본적인 형태를 3.4.조니 4.4.조니 하는 주장은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라며 정병욱은 이점을 음보율로 극복하려 했다. 그래서 그 이론의 타당성을 학계에서 인정받아 현재는 음보율 중심의 율격론이 지배적인 입장이다. 하여 한국 시가를 구성하는 율격의 기본 단위는 음보이며 이 음보가 3~4개 씩 모여서 하나의 시행을 구성한다. 우리 시가의 전통적인 율격은 보통 2·3·4·5음보격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3·4음보격이다.

**3음보의 민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3/3/4)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3/3/4)

나를/ 버리고/ 가신님은(2/3/4)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3/3/4)

-/은 음보, 숫자는 음절 수-

**4음보의 시조

이런들 / 어떠하며/저런들/ 어떠하리(3/4/3/4)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어떠하리(3/4/4/4)

우리도/ 이 같이 얽혀/백년까지 /살아보세.(3/5/4/4)

-* /은 음보, 숫자는 음절 수-

위의 시행들은 /로 구분된 마디의 연쇄로 읽힌다. 여기서 /표로 구획된 소리마디가 곧 음보(音步)로서 한국 시가 율격의 기본 구성단위가 된다. 곧 음보란 통사적 분절과 율격상의 분절에 의하여 경계표지를 가지는 '호흡상의 실체적 단위' 라 하겠다.

일찍이 정병욱이 밝혔듯이 전통적으로 한국 시가의 율격 형태로는 2음보격, 3음보격, 4음보격이 일반적이다. 2음보격은 두 개의 음보로써 한 행을 이룬다. 2음보격이 둘씩 이어지면 위 시조에서처럼 4음보격이 된다.

4음보격은 네 개의 음보로써 하나의 시행을 이루는 율격으로, 균형 잡힌 안정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여유를 갖고 유장하게 읊조리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4음보격은 시조와 가사, 상당수의 민요에도 쓰였으며, 판소리 등에서도 기본적인 율격으로 활용되었다.

3음보격은 「아리랑」과 같이 대체로 선율적 표현성이 강한 서정 민요류에 많으며, 특히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의 문헌에 실린 고려 속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 시대 시가의 지배적인 율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 시대 향가의 경우에는 3음보격과 4음보격이 공존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김대행도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밝혀 보았듯이 우리 시가의 전통적인 율격은 보통 2·3·4·5음보격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3·4음보격이고, 시조는 4음보격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시조형식의 생명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