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의 제3행에 나오는 ‘나와 영’의 영은 육영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녀는 그곳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 ‘나, 영수’라고 써두었다는 애틋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중략- 그런데 이 시는 박정희의 시선이 언제나 원경으로부터 근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경에 이르면 ‘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영’또는 ‘고인도 찾더라니’처럼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도 노를 저어 누벼볼까나’라고 한 것처럼 행동에 관한 표현으로 끝을 맺는다. 이처럼 박정희는 신혼 시절의 아내에게 보내는 정감있는 편지에서조차 3단계 인식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림도 잘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림에서 표현되는 원근법이 시에서도 적용되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무관으로서의 박정희만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도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첫 딸 근혜가 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때 제3군단 포병단장이었던 박대령은 포병단 창설의 임무를 띠고 광주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육 여사도 딸과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창설된 포병부대가 훈련을 마친 7월 경 다시 강원도 양구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동하기 전날, 딸을 안고 곤히 잠든 아내 육영수의 모습을 보며 이런 시를 썼다.

밤은 깊어 갈수록 고요해지는군/대리석과도 같이 하이얀 피부/복욱(馥郁)한 백합과도 같이 향훈을 뿜는 듯한 그 얼굴/숨소리 가늘게, 멀리 행복의 꿈나라를 거니는/사랑하는 나의 아내, 잠든 얼굴 더욱 어여쁘군/평화의 상징!/사랑의 권화(權化)!/아! 그대의 그 눈, 그 코, 그 입/그대는 인(仁)과 자(慈)와 선(善)의 세 가닥 실로써 엮은/한 폭의 위대한 예술일진저.//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길이 빛나고 길이 아름다워라/나의 모든 부족하고 미흡한 것은/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 이 찰나가/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써 인생 코스가 되어 주오/그대의 안면(安眠)의 모습을 바라보고/이 밤이 다 가고 새날이 오도록/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이/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1952.7.2. 밤)-“영수(英修)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내에게 바치는 이 헌시(獻詩)에서도 험한 세상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이지만 남자로서 안락한 가정을 일궈주는 아내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존경심이 매우 깊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사건으로 떠나기 석 달 전 아내의 소원이라 쓴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를 보면 대통령직을 그만 둔 후 노후에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달빛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대화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런 미래는 육영수 여사의 피격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온 전국에서 애끓는 마음으로 영부인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못다 이룬 사랑의 마음과 어떻게 풀어낼 수 없는 애통한 심정을 시로 남긴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몇 번이고 다짐했건만/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그 우아한 모습/그 다정한 목소리/그 온화한 미소/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당신의 그림자/당신의 손때/당신의 체취/당신의 앉아 있던 의자/당신이 만지던 물건/당신이 입던 의복/당신이 신던 신발/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소리/“이거 보세요”“어디 계세요”/평생을 두고 나에게/‘여보!’한번 부르지 못하던/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 년간/하루같이/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 온/현모양처의 덕을/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1974. 9.4)-“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이 시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육영수 여사는 평생 남편에게 ‘여보’라는 부르지 못하고 항상 조용히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하였다. 남편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신뢰했던 아내가 그리울 때 박정희 대통령은 육여사의 영정과 마주 앉아 대화를 했다.(『나의 어머니 육영수』26쪽)

 그리움의 무게가 세월 속에 더 무거워지는 건 박정희 대통령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고 기품있는 여인이었고, 현명하고 지혜롭던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며, 전쟁후 세계에 나라의 품격을 올려 놓은 국모였던 사람을 잃은 그 자리의 공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외에도 해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를 썼으며, 특히 가족과 함께 쉬었던 진해 앞바다의 저도를 갈 때마다 육영수 여사가 없는 빈자리가 허전해 시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해마다 여름이면/그대와 함께 이 섬을 찾았노니/모든 시름 모든 피로 다 잊어버리고/우리 가족 오붓하게/마음껏 즐기던 행복의 보금자리/추억의 섬 저도(猪島)./올해도 또 찾아왔건만/아, 어이된 일일까/그대만은 오지를 못하였으니(1975.8.9.) -“저도 해변에서”중에서

박근혜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이별을 위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어머니를 보내야 했던 마음에 큰 슬픔에 빠졌고, 자식에게도 풀어버리지 못한 그리움으로 시를 통해 혹은 일기를 통해 남몰래 삭이곤 했다는 말을 했다.(『나의 어머니 육영수』24쪽)”는 것으로 보아 육영수 여사를 잃은 박정희 대통령의 애통함은 정제된 듯 풀어낸 글에서도 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절절한 그리움은 세월로도 지울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보여 진다.  

마무리하며

 『陸英修女史』 진혜숙 편저 48쪽에 보면 어느 날 육영수 여사의 예수 동생이 문학에 뜻을 두고 작가가 되려는 꿈을 언니에게 피력했을 때 “작가나 시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거야, 독창적인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얼마나 힘드는 일이겠니?”하며 충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가 어린시절부터 작가를 얼마나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라 하겠다.

또한 육영수 여사 추모 사진첩 『영원한 그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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