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조문학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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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13 17:24
2005년 2월 샘터시조/조종현,임춘자,석성혜
 글쓴이 : 김준
조회 : 2,061  
<초대시>

봄 하늘 아래 / 조종현



가난이 흐느끼어 물결치는 이 거리
낡은 행주치마 애화(哀話)가 구름 일듯
갈수록 명경알 같은 새빨간 가난살이.

한 삼동 겨울 밤을 문풍지와 같이 떨고
하루 한 끼 비질말정 이밥도곤 부러웠다
굶주림 칙뿌리 씹듯 부시캥캥한 얼굴들.

삼질이 내일 모래 강남 소식은 어떠할까
약산 동대 진달랜들 불붙겠나
사랑이 머진 이 하늘 봄바람이 그립다.

벼락이 떨어진듯 불기둥같은 사월혁명
저녁 하늘에 메아리같이 사라지고
이 마당 터지는 소리 봄하늘에 번진다.

지리산 음달곰은 아예 아니란 것
물같은 백성이란 있을 수 없는 오늘
말없이 앞서가는 품 사자보다 무섭지.


*이 달의 초대시로 조종현의 <봄 하늘 아래>를 추천한다. 조종현의 작품은 언제
나 현실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낭만적 이상주의와 같은 편향보다는 현실적
사실성과 구체적 개성이 뚜렷한 경향이다.

여기 <봄 하늘 아래>는 가난에 떨고 있는 한국적 비애를 절감하면서 이를 극복
하기 위해 일어섰던 4.19 의거와 이를 주동한 젊은이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뜨거운
피를 뿌렸는데도 또 한 번의 봄을 맞게 되는 오늘날까지 가난에 허덕이는 현실
앞에 당시의 위정자들을 향한 무서운 분노가 서려있다.

이 작품에 대한 특징은 첫째 수에서 세째 수까지는 가난을 통한 처절한 삶의 모
습과 가난 극복의 염원을 노래하고 있으며 네째 수와 다섯째 수에서는 가난 극복
의 구체적 방법으로서 일어났던 4.19 의거를 회상하고, 그 당시의 젊은이들의 용
맹성을 찬양하고 있다.


<추천시>

고드름 / 임춘자


산촌의 하루 해는 한 뼘도 못채우지

멧새도 제 집 찾고 문풍지 길게 울면

노을에 비낀 그림자 추녀 끝에 달린다.




겨울 안부 / 석성혜


갈 한 철 풀풀 날던 쑥부쟁이 씨눈처럼

못 지울 인연 하나 눈꽃되어 날리는 날

천리길 훨훨 날아갈 학 한 마리 접어든다.


<뽑는 말>

시조는 그 형식이 짧은 단형(短型)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복잡한 사상이나 감정
을 담기 힘들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문학의 본질은 물론이
고 시조의 성격마저도 모르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산문이 아닌 시에 있어서는
상(想)의 압축과 언어의 절제가 시의 본질에 접근하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
다.

일석(一石) 이희승은 일찍이 이 문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조
에서 형식이 짧은 것이 병이라면 수다스러워야 문학이 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시에 있어서 말이다. 고가(高價)의 보옥(寶玉)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과연 광대
(廣大)한 창고를 지어야 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임춘자의 <고드름>과 석성혜의 <겨울 안부>는 현대
시조가 지녀야 할 주제와 기법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시상의
발상이 작품의 소재로 볼 때 관념성이나 진부함에 치우치기 쉬운데 이를 극복하
고 보다 새로우면서 나름대로의 철학적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적절한 비유를 통한 시상의 전개가 생동감을 갖게 하고 주제
의 심화는 물론 신뢰감을 주고 있다. 임춘자의 <고드름>의 종장 '노을에 비낀
그림자 추녀 끝에 달린다.'의 표현이나 석성혜의 <겨울 안부>에서의 종장 '천리
길 훨훨 날아갈 학 한 마리 접는다.'의 표현은 주제 의식에 대한 뚜렷한 형상화
가 이루어졌다. 다만 <고드름>에서의 초장 중 '못 채우지'의 표현을 '못 채운다.
'로 <겨울 안부>의 초장 중 '갈 한철'을 '가을 한철'로 바꾸었으면 시상 전개에
있어서나 운율의 자연스러움에서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김 준시조시인.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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