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운악산 숲에 이르러 / 서공식 





  어디로 불어가나 숲을 흔드는 저 바람은 

  지긋이 눈을 감고 무거운 꿈을 끊어 보면 

  숲 밖에 혼란 있음이 믿어지지 아니하네. 



  잎새에 튀어나는 티없는 햇살 자락 

  모였다가 흩어지길 끊임없이 거듭하고 

  고요히 비운 깊이는 세월을 잡아매네. 



  너는 또 의젓하여 구름 끝에 앉아 있고 

  일찌기 마음 한번 열어뵈지 않았건만 

  머물러 고요한 중에 숲과 같이 이르나.





 * 이 달의 초대시로 서공식의 <운학산 숲에 이르러>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시조 특유의 멋진 운율을 잘 살리고 있다. 장에서 장

   으로 넘어가는 절묘하고도 유연한 가락이 긴박감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동반하면서 세련된 시어로 시상(詩想)을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적 감동과 정신적 위

   안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인이 자연을 소재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다. 

  <운악산 숲에 이르러>는 혼돈의 현실 세계로부터 오는 허욕의 꿈

   을 떨쳐 버리고 숲 속에서 깊고 오묘한 자연의 이법(理法)을 터득

   하고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욕망의 물질세계와 대비되는 숲의 겸

   허하고도 무한한 정신 세계에 동화되어, 자연을 떠난 존재가 아니

   라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기 존재를 깨닫는 깊은 경지에 이른다. 



 

백목련(白木蓮) / 최봉희 





  당신의 환한 웃음 가슴에 담으려고 

  가난한 골목길엔 꽃구름 가득하다 

  하이얀 꽃치마 입은 설레이는 봄마중. 



 

동백꽃 / 이미란 





  동배꽃 홀로 피어 새벽 여명 머금었다 

  다섯 폭 빌로드에 고이 안긴 황금 빛을 

  대관식 빛나던 금관 그 영광이 예 있네. 



*빌로드 : 벨벳(Velvet). 짧고 부드러운 솜털이 있는 실크 천. 





<뽑는 글> 



    최봉희의 <백목련>은 시상이 참신하고도 사려 깊에 나타나 있어 

 종래의 소재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초장

 의 '당신의 환한 웃음'과 중장의 '가난한 골목길엔'의 은유적 표현이 

 제시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서 높은 문학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초장의 '가슴에 담으려고'와 중장의'꽃구름 가득하다'는  주제를 심

 화시키고 시상을 전개시키는 적절한 표현으로 문학적 성취도를 짐작

 하게 한다. 다만 종장의 '하이얀 꽃치마 입은'의 착상과 그 표현이 부

 적절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이 흠이다. 



    이미란의<동백꽃>은 단시조 작품의 짜임새와 착상 그리고 시상의 

 전개가 잘 이루어져 있다. 특히 종장의 '대관식 빛나던 금관 그 영광이 

 예 있네'의 표현은 지은이의 시적 역량에 대한 믿음을 주는 구절이다. 

 그러나 초장의 '홀로 피어'의 표현은 시상 전개에 있어 효과적 표현이

 라 할 수 없고, 또 중장의 '빌로드'라는 부적절한 외래어 사용과 불필요

 한 부호 사용에도 주의가 요구된다. 





김준-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