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촌부일기(村婦日記) / 김보영 



 가슴에 이는 바람

 텃밭에 묻으면서

  

 밭두렁 들꽃인 양

 허드레 핀 풀꽃 되어



 이른 봄

 봉당 볕 쬐며

 한가로이 쉬고 싶네.



 잡초의 억센 꿈이

 갈퀴손 꼭 잡으며



 거친 숨 풀으면서

 구름 한 점 보라 하네.



 때로는

 귀를 열고서

 냇소리도 들으라 하네.





* 이 달에는 김보영의 <촌부일기>를 읽는다. 시가 남에게 읽혀지고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혀끝이나 손끝으로 쓰인 작품이 아니라,절

  실한 체험에서 우러난 가슴으로 쓰인 것이라야 한다. <촌부일기>

  는 어떤 심오한 사상이나 논리가 아닌, 가슴 뿌듯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의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김보영 시인은 소백산 자락 두메산골에 살면서 손수 밭일을 하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시심을 체득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시인은

  농촌 생활의 단면을 피상적으로 다루는 일은 넘어서 직접 씨를 뿌

  리고 땀 흘려 일하는 삶의 체험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흙을 떠나서는 생존해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흙을 믿고 그 고

  마움을 아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진실로 인간다워지는 길이자 진정

  한 생의 의미를 찾는 방편임을 이 시를 통해 깨닫기를 바란다.





 

봄 / 송일영 





 화라락

 꽃이 피듯

 말린 잎 춤을 추다



 은은한 

 향내 내며

 내 가슴 덥히더니



 마알간

 초록빛 향기에

 빠져버린 내 마음





 

낮 달 / 권택진 



 향나무 우물가에 낮달이 어른거려

 두레박 내려 보내 살며시 길어 올려

 새 아씨 시린 가슴에 남몰래 숨겨 두네.





뽑는 글

 권택진의 <낮달>은 시상의 상상력이 고전적인 느낌에 닿아 있어 동화적

 호기심을 낳는다. 단형시조의 틀을 깨뜨리지 않고 독창성을 확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인데,향나무 있는 우물가와 물 긷는 새 아씨의 관계

 설정에서 낮달의 이미지가 성공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초장의 '어른거려'와 중장의 '길어 올려'에서 '려'가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낮달이 어른거려'를 '어른거린 저 낮달을'로 

 바꾸면 완성도가 높아지리라 본다.



 송영일의 <봄>은 기성 작가다운 면모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작품 행간

 에 누벼진 특이한 감수성과 세련미는 부단한 자기 응시와 수련의 결과라

 여겨진다.

 초장의'화라락/ 꽃이 피듯/ 말린 잎 춤을 추다'의 신선하고도 격조 높은

 비유에서 종장의 '마알간/ 초록빛 향기에/ 빠져 버린 내 마음'의 결구로

 이어진 부분은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원숙미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김 준 - 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