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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2-21 09:03
 조회 : 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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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지식을 찾아서] 4. 봉암사 정광 스님
"좋은 생각 → 좋은 말 → 좋은 행동 … 이게 禪이죠"
경남 창원 출생으로 선(禪)과 교(敎)에 두루 능통하다. 선승하면 흔히 문자를 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광 스님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40년이 넘는 참선으로 조계종의 선풍을 이끌고 있다.
그가 머물고 있는 봉암사는 특별한 곳이다. 879년 신라 선승 지증 대사가 창건한 이래 한국 선의 법맥을 이어왔으며, 1947년 성철.청담.향곡.자운 등 고승들이 '봉암사 결사' 구성하며 일제 시대 피폐된 한국 불교의 중흥을 이끌어냈다. 이런 특성상 조계종은 82년 봉암사를 선승들이 참선에 전념하는 특별선원으로 지정했다.
18세에 출가, 전국 선원을 순례했던 정광 스님은 이 같은 봉암사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일반 스님과 똑같이 동안거.하안거는 물론 한달 일정의 봄안거.가을안거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12년 전 최치원이 쓴 지증대사 비문을 풀이한 '지증대사비명소고'란 두터운 책도 냈다. 중국 이상으로 선풍을 진작시킨 한국 선불교의 독창성을 밝힌 책으로 평가받는다.
#적은 욕심, 큰 만족(小欲知足)
서울에서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봉암사를 찾아가는 길은 구도자를 닮았다. 4차선 고속도로→2차선 국도→비포장 외길 등 길은 갈수록 좁아진다. 지난 17일 가은 버스터미널에서 전남 함평군 용암사에서 온 젊은 스님 한명을 만났다. 봉암사를 가는 중이란다. "왜 봉암사죠"라고 물으니 "선승에게 마음의 고향"이란 답이 돌아왔다.
봉암사는 1년 내내 수행만 하는 조계종 특별선원이다. 4월 초파일 하루만 일반에 공개되는 '성역(聖域)'이다. 정광(淨光.62) 스님은 이곳에서만 30년 가까이 정진하고 있다. 스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열흘 전 "오지 마라"는 스님의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내려갔으나 동안거를 마친 스님은 잠시 출타 중이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들고, 겨우 승락을 받았다.
봉암사 입구는 소나무 터널이다. 대웅전에서 오른쪽 산자락을 잠시 따라가니 스님이 머물고 살고 있는 동암(東庵)이 보인다.
"죄송해요. 두번이나 발걸음을 하게 해서…."
첫인사부터 편견은 사정없이 깨졌다. 스님에게선 고고한 선풍(禪風)을 느낄 수 없었다. 순박한 농투성이 인상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망상이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는 한마디에 말이 콸콸 쏟아졌다.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확신의 언어였다.
"불교의 근본 취지는 인간성 회복입니다. 물질을 구하면 이해타산에 급급한 싸움만 일어납니다. 그건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반성해야 해요. 그러면 마음의 평화와 정토(淨土)가 찾아옵니다. 요즘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김삿갓도 놀랄 세상입니다. 생수 파는 장사가 잘된다죠. 모든 게 멍들고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이라고 했습니다. 담백하게 살아야 해요. 그러면 이 세상이 반드시 이상향이 됩니다."
#생김도, 사라짐도 없다(不生不滅)
스님의 말은 계속됐다.
"오늘의 타이틀을 주겠습니다. 한 생각 맑고 청정하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생활은 향기롭고, 사회는 원만하며, 인류는 마음 놓고 살 수 있습니다."
반문할 기회다. 그런 '원론'은 책에서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산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묻는 게 항상 그런 겁니다. 일반인이 실천할 수 있는 걸 알려달라고 하죠. 그러나 선은 얼마든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선은 삼라만상의 실상입니다. 선을 여의면 결국 자신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세워야 해요. 그게 바로 생활선입니다."
-그런가요.
"몸(身).입(口).생각(意) 3업(業)을 바르게 해야 해요. 좋은 생각에서 좋은 말이, 좋은 말에서 좋은 행동이 나옵니다. 그게 선입니다. 대인관계도 그래요. 상대를 무시하고 이기려 하니 한량없는 전쟁으로 치닫습니다."
-예상외로 쉽네요.
"그게 화두입니다. 요즘 말로 표어라고 하죠. 화두 하나를 드릴까요. 하루 5분이라도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나의 진성(眞成.참된 성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세요.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마음은 허공이 될 겁니다. 선을 하면 당장 이익을 얻게 됩니다."
-예?
"선은 창조성의 원천입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추구하니 발전과 향상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려면 매일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주관적 판단, 객관적 기준을 모두 뛰어넘는 중도정견(中道正見)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회는 늘 궁핍하고 혼탁한 걸요.
"선을 갈무리한 사람은 평등을 압니다. 열심히 노력해 돌아오는 소득을 아껴쓰고 남에게 나눠줍니다. 그런데 매일 놀면서 불평만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불신이 쌓이고, 부정한 뒷거래가 성행합니다."
#쉬고, 또 쉬는 방(休休室)
앉은뱅이 책상 하나 있는 스님의 방안에 '휴휴실(休休室)'이란 글자가 달려 있다. '쉬고, 또 쉬는 곳'이란 뜻이다.
"쉬는 건 불교의 기본입니다. 쉬지 않으면 온갖 탐욕에 물들게 됩니다. 그 마음을 제거해야 진실을 깨칠 수 있어요. 휴(休)가 반복되는 건 '쉰다'는 생각마저 없앤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엔 쉬고, 안 쉬고가 없어요. 상주불변하는 평상심이 됩니다."
-차나 마셔라(喫茶去)는 거죠.
"분명 알아둘 게 있어요. 될 대로 사는 게 평상심이 아닙니다. 시시때때 변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더욱 아니죠. 그건 중심을 잃은 마음,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 뭐죠.
"매일 아침 오늘 처음 태어나는 기분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또 매일 저녁 일생을 마치는 기분으로 잠자리에 드는 겁니다. 순간순간 올바르게 살겠다고 자신과 약속하는 거죠. 그러면 누구나 선지식이 됩니다."
-저도 될 수 있나요.
"지금까지 무얼 들었습니까. '육조단경'을 남긴 당나라 승려 혜능 선사도 자신의 법문을 듣는 사람을 다 선지식으로 불렀습니다."
공연히 꾸지람만 자초했다. 스님은 선수행을 검객에 비유했다. 싸움을 앞둔 최고의 무사가 폭포 밑에서 정신통일 훈련을 하듯 우리 또한 제3, 제4의 자신을 닦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새롭게 살려는 사람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세포가 새로워지려고 하는데, 즉 일하기에도 바쁜데 어찌 죽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물며 자살은? 스님은 그것은 자신의 행동.사고를 끊는 '단견(斷見)'이라고 일갈했다. 혼란스런 시대상 묻고 싶었으나 이를 푸는 실마리는 스님이 이미 다 말한 것 같아 질문을 접었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 계곡의 잔설과 졸졸 시냇물이 또 하루 좋은 날을 노래했다.
문경=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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