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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오케스트라는 1999년에 탄생되었다.
연주가 끝난 후 우리는 케잌을 앞에 놓고 둘러 앉았다. 그 케잌에는 촛불 하나가
타고 있었다. 실제의 나이는 일곱살이나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한살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7년을 사는 동안 나르바나 오케스트라의 가슴은 멍이 들대로 들었다. 부처님을 향
한 그리움이 되려 깊은 상처로 남고 따듯한 부처님의 가슴은 멀고도 먼 곳에 있었다.
그런데 니르바나 오케스트라에게 후원회가 생긴 것이다. 그것이 벌써 일년전의
일이 되었다. 그리고 후원회원들을 모시고 오늘 연주회를 가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산사에서 하루밤을 머물면서 세상의 고요와 명상 그 속에서 존재
하는 나를 찾는 그런 연주여행을 하는 첫날이다. 두달전 부터 준비하고 또 준비한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무대는 대웅전 앞마당인데 그 곳에는 하루종일 내린 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니르바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날에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까닭을
안다.
'그런거야 그런거라구!"
" 그리움에는 눈물이 없을 수 없는거라구"
. 7년동안의 그리움, 그 그리움이 서글픔이 되어 이렇게 비로 내리는 까닭을 어찌 모
를 것인가?
단청의 빛이 바랜지 오래된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대웅전을 가진 내소사
앞마당. 우리는 그 곳에서 부처님과 음악 그리고 비와 만나는 것이다.
언젠가 한 스님이 말씀하셨다.
" 산사를 제대로 느끼려면 비오는 날에 산사를 찾아라."
주룩 주룩 퍼 붓던 비구름이 작은 연기가 되어 뒷산 능가산 기슭을 오르면서 비가
스스르 멈춘다. 조계사 문화강좌 요가반을 지도하고 계신 윤성희 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숨쉬기 요가를 가르친다.
숨쉬기는 요가의 기본이다. 부처님께서 요가를 통해 깨침을 얻으 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께서도 요가의 기본자세에서 부터 수행을 시작하심으로써 불가에서도 요가
는 각광을 받는 것이다.
활짝 문을 열어졎힌 대웅전 처마밑과 설선당 처마밑에도, 그리고 법당 안 부처님,
문수 보현보살님도 함께 자리를 했다. 절 마당에 밤이 이슥해지자 고요가 가득히
들어찬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채려면 우리는 먼저 고요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이 세상은 복잡하고 시끌시끌거려도 그 속내는 모두 고요라는 것을 말이다.
20여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서 만든 무대는 봉래루다. 예전에
는 스님들의 공부 강당으로 쓰여지던 곳이 바로 절의 누각이었지만 오늘은 무대가
되었다. 빗속을 뛰어다니느라 자원봉사자들의 옷이 모두 젖었다.
아름다운 다뉴브의 강물이 흘러나오자 산사는 더욱 고요해진다.
꽃구름도 비에 젖어 흐른다.
묵직하고 아름다운 첼로의 선율이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안고 비에 젖은
석탑을 따라 밤 하늘로 날아간다.
이날에는 국악유목민이라고 하는 국악인들과 함께 했다. 국악 유목민이라....
유목민이란 삶을 위해 떠도는 사람들을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악이 유목민
이 되었을까? 하지만 김성태씨의 대금가락을 들으니 국악 유목의 애절함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산사의 돌담, 나무, 종, 처마, 풍경, 이름모를 둘풀들까지 모두 귀를
세운다.
임소아씨의 염불 도드리의 시조창과 대금이 한데 어울어지고 최여울님의 25현의
가야금 소리를 들으니 그야말로 이제는 고요마저 놓아야했다.
고요도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그저...그저.. 마음을 그대로 놓고 텅 비워두어야
했다.
산사는 그렇게 밤을 넘어가고 있다. 석탑에는 여전히 비가 뿌리고 마당에는 비에
맞은 가슴들만 가득했다.
시조시인 이인자씨는 자작시조 내소사에 피는 꽃을 낭송했다.
"까치발 딛고서서 다투어 피는 꽃이
대웅보전 문틀 속에 꽃살을 새겨놓고
새 세상 천년을 여는 아기처럼 웃는다..."
단청이 벗겨져 속살을 그대로 내놓은 대웅전의 연꽃과 국화꽃살들이 오늘 우리와
함께 가장 깊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 세상 천년을 여는
아기처럼 웃고 있는 것이다.
대마침 문규현 바오로 신부가 연주회를 찾았다. 그는 신부인가 스님인가?
평화는 경계를 두지 않아야 비로소 찾아온다. 그에게는 종교의 경계를 찾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평화를 찾아주기 위해 죽기살기로 자기의 삶을 버리는 그에게
서 오늘 밤에는 그토록 극악스러운 전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사의 음악회는 이렇게 고요 속에서 명상과 평화를 얻는 일인 것이다.
나는 저 대웅전을 기억한다. 5년전 미국으로 정처없이 길을 떠나야했을 때 저 곳
에서 밤을 새우곤 했다. 그 밤을 부처님과 새우지 않으면 도무지 일어설 기력도
없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마당에 서서 음악과 함께 부처님과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부처님들이 마당에서 처마밑에서 법당에서 설선당에서 무설당에서
고요를 듣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떠나는 1호차 버스를 전송하기 위해 서울 불교방송 앞으러 나갔다. 그곳
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을 때의 강형진 단장의 얼굴을 기억한다. 혼자서 그토록 애
써왔던 7년간의 애씀이 오늘 저녁 또 비로 힘겨워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밤을 보라.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비오는 산사의 밤 그리고 그 선율들.
그것들을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것인가.
부처님은 무설(無說)의 법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열반에 이르기전 아난에게
묻는다.
'내가 가르친 바가 있느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신 바가 없습니다."
"착하구나 아난아. 나는 가르친 바가 없다"
바로 이것이 무설의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는 말로써 가르칠 것이 없는 것이다.
강단장은 음악으로써 무설의 가르침을 앞으로 멋지게 선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친 법은 지혜와 자비다. 올바른 지혜를 가지려면 끝없는 자비심을
보일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연민이라고도 부른다. 연민은 평화의 기본이다. 연민없
는 지혜는 모래탑위에 성일 뿐이다.
오늘 밤이 이토록 환희로운 것은 바로 고요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스님인 진원스님도 한마디로 압축된 법을 말씀하신다.
"오늘 내소사에 오셔서 자기를 보고 고요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비가 옵니다.
비오는 산사에서 마음껏 자기를 보세요"
연주회는 끝났다.
어느새 밤은 가고 새벽을 알리는 느릿한 도량석 목탁 소리가 새벽비에 젖는다.
법당의 촛불은 그렇게 타오르고 우리들은 밤새 모은 고요를 두손에 모아 합장
으로 기원한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것을,..." 알게 해주세요.
내소사의 해안선사는 마지막 말씀을 이렇게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삶과 죽음이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生死於是 是無生死)
서암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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