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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0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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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외곽 내지 내장의 보수 공사-장지성<월간문학 1999년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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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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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외곽 내지 내장의 보수 공사' - 장 지 성(시조시인)
한국시조시인협회의 ’99 여름 세미나가 8월 14~15일 양일간 서울에서 「시조의 그 변용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정기 행사를 가졌다.
지나온 천년을 마감하고 21세기를 준비하는 뜻 깊은 행사였다.
한춘섭·김종 두 시조시인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김민정 외 여러 시인들의 질의와 답변 순서로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기는 뜨거운 분위기였다.
두 주제 발표자의 공통점은 사설시조 분야를 더욱 확대 개발하여 새 천년을 맞이하는 시조로서의 새로운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논거였다.
한춘섭 시인은 사설시조의 태동은 음주종사(音主從詞)의 노래말로 비롯되어 극히 제한적인 계층의 고시조로 남았으나 육당의 「국풍4수」, 가람의 「풀벌레」, 조운의 「구룡폭포」 작품으로 문학 형태의 모습을 갖추었고 현역 시인으로는 김상옥, 장순하, 김제현, 서벌, 윤금초, 김상묵, 김종, 조주환 시인 등의 작품과 논작으로 사설시조를 확대 자리매김하는 데 공적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서를 붙여 ‘평시조라는 틀을 유지시켜야 될 것이라는 고정불변의 전통 의식을 고집한다면 의견 충돌은 어차피 끝나지 않는다’고 정형의 지속을 평가 절하하기도 하였다.
또한 김종 시인은 ‘서구적으로 길들여진 우리 문학 현상 가운데 고독할 만큼 홀연히 솟아난 하나의 섬’이라고 시조의 비운을 규정 짓고 시조의 시대적 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첫째, 시조의 허구화와 둘째, 시대 정서에 맞는 언어적 미각의 발굴 및 셋째, 시조의 둥지에 문학 천재들이 찾아 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도 평시조의 자수율을 주장하는 것을 보수 경향으로 평시조를 광역화시킨 사설시조를 진보적 유형으로 규정, 평시조의 이탈을 유도하였으며 부연 설명에서 첨단 문명이 도래되는 21세기를 맞는 현시점에서 모든 문학 장르의 해체, 통합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모든 문학의 성패는 장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질곡의 내용에 있음을 우리 모두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두 발표자의 평시조 회의론 제기는 요사이 화석화되어 가는 일군의 비시조 경향에 경종을 주는 울분 토출과 ‘변용’이라는 세미나 주제에 집착,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며 극히 제한된 3장 6구의 틀 속에 정보화·세계화로 가는 급변하는 시대적 욕구와 분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일부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학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처절한 고통이든 죽음이든 결국은 미적 추구인 것이다.
방대한 소설이나 진리의 성서나 오천년 한민족의 역사도 한 편의 시로 표출할 수 있고, 한 편의 단수로 용해시킬 수 있는 그 저력이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자부심이 아니겠는가.
정형의 구조 속에 모든 시조(사설시조·엇시조·평시조·동시조·양장·홑시조 등)의 외곽 내지 내장의 일대 보수 공사를 모색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요 숙명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형의 구조물 속에 보수 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박기섭의 작품이 『현대시조』 가을호에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글쎄, 바람기라면 참 기막힌 바람기랄까
우리 나라 오월쯤의 못 견딜 그 햇볕 속에
서늘한 버들빛 같은, 그런 기찬 바람기랄까
홀낏 한 번 보구서야 어찌 아누, 그 속내를
그넷줄에 감겨 오는 몹쓸 꿈도 꿈이다만
척하니 안겼다 풀리는 그런 몸짓 같은 것
물길이라도 이내 온몸을 휘감아드는 물길로는
차마 못 건너네, 헛헛한 저 인연의 강
마음속 한 채 절간을 지었다간 또 허물고
― 「잦은 난봉가」 전문
무장 슴슴하구나, 저 냇둑 개복사낡이 참 천연덕스런 마음으로 듬성듬성 찍어 놓은 엷은 분홍 꽃물이
지천의 자부름 속에 마냥 겉거죽이 부풀어오르는 세상, 이맘때면 그냥 아무렇게나 구겨 놓은 마음의 현도 스르릉 소리를 내고
안 뵈는 누군가 넌지시 건너다보고 있음이여
― 「시나위 詩篇」 중 「和平」 전문
작품 「잦은 난봉가」는 평시조이고 「시나위 詩篇」의 4수는 사설시조로 엮은 것이다. 평시조나 사설시조나 작자의 감각과 기량에 의하여 같은 무게를 실을 수 있음을 입증해 주는 작품이다. 「잦은 난봉가」는 빠른 톤으로 편승되지 않는 시대적(불확실성) 조류에 방파제를 쌓는 역설적 언어의 구사가 강점인 동시 밑줄 친 상의 중첩 및 음수율은 어쩌면 엇시조 형태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설시조로 엮은 「和平」 또한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서 여기에서 등장하는 시어의 ‘개복사낡’은 가면성을, ‘자부름’은 자만을, ‘겉거죽’은 허상을, ‘세상’은 현실을, ‘현’은 울분과 냉소를 표출한, 그러면서 종장 처리의 화자는 작자일 수 있고 민초임을 암시해 주는 참여시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의 주목되는 시인으로서 정형의 이탈과 변용의 차이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자기 확신도 가지리라 믿는다.
다음은 『월간문학』 9월호에 발표된 작품들을 살펴본다.
푸름 속 젖는 마음, 산의 말 그 알래라.
사(世事)ㄹ 듣고, 흘린 눈물 개울 실어 내리는데,
오늘도
내, 등에 기대
칭얼이는 山 응석!
― 鄭韶坡 「산기슭 살다 보면」 첫째수
미수(米壽)를 앞둔 鄭韶破 시인의 끊임없는 시력에 경의를 표한다. 앞의 「雪窓夜曲」과 함께 인생무상을 그린, 부연 설명을 허용치 않는 작품이다.
종장의 ‘오늘도/내, 등에 기대/칭얼이는 山 응석!’ 시구(詩句)는 시인 자신이 40년 젊어지는 기교가 넘치는 절구이다.
그대 뜯는 가락/그 가락이 시름겨워/羽調로 다둑인 정/내부로 영글어라./가만히/달빛 안으니/꽃봉오리 버는 소리.
― 鄭泰謨의 「開化」 전문
읽는 이로 하여금 대뜸 이호우의 명시조 「개화」가 떠올린다.
단수의 묘미는 그야말로 삼단논법이 절실히 요구되는 절제된 상의 집약과 압축미가 살아날 때 생명력이 있는 만큼 많은 시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에 있는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가장 위험한 것은 안주(安住) 내지 정체성이다.
거듭날 수 있는 끝없는 실험 정신만이 곧 문학의 프로 정신이라 떠올려 본다.
쓸어쓸어 한평생을/짜리 몽땅 늙었는가?//그저 보고 그대로/버리고 가려다가//내 몰골/너를 닮아져/다시 두고 싶어라.
― 박재곤의 「빗자루」 첫째 수
빗자루를 의인화한 발상과 시도는 좋았으나 외골수 의미에 치우친 나머지 작품 전체가 박제된 느낌이다. ‘짜리 몽땅’, ‘내 몰골’, ‘어디메’, ‘신세’, ‘연신(?)’, ‘덧없는’, ‘백사만사’ 등 이미 오래 전 용도 폐기된 언어들을 어디서 주워 왔을까.
앞에서 언급했듯 어느 장르의 문학이든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미적 추구에 있다. 그야말로 김종 시인이 주장한 시대 정서에 맞는 언어적 미각의 발굴로 위 작품의 든든한 구조물을 보수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 밖에 文漢宗의 「無忘碑를 보고」 작품은 지면 관계상 짧게 언급하여 본다. 청령포에서 단종을 그리며 쓴 3수로 엮은 평시조이다. 각 수 중장마다 왕방연의 시를 인용, 골격을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의 수용 문제로 사설시조 광역화를 외치고 있는 현시점에서 3장 6구의 좁은 안방에 외간남자가 버티고 있음이 바람직한 것인가.
읊조리는 시조 형태는 오래 전 고사되었음을 종을 쳐서라도 알리고 싶다.
『현대시조』 가을호에 서경 묘사를 담은 김광수의 「소양호에서 Ⅱ·Ⅲ」와 은근 슬쩍 시사성이 내포된 박옥위의 「안개」 외, 부산문인협회에서 발간되는 『문학도시』 가을호에 수록된 황다연의 「소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변방의 달」 등 돋보이는 작품이 지면 관계상 언급되지 못함이 마냥 아쉽다.
<월간문학 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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