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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4-10 16:13
 조회 : 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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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찌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겠는가
말치재 밑 사계봉 아래 월곡마을
종갓집 돌담 아래에서
봄볕을 쬔다.
찬바람 일던 늦가을부터
설한풍 칼바람으로
절망에 몸부림치던 칠흑같던 밤
새벽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수런거리는 이웃들
우리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소한 대한의 겨울공화국
숨죽이고 엎드리던 세월
저만치 실개천으로 흘러가고
청명 한식 봄볕
이리 살가운데 이깟
사월 서리쯤이야
천국이 따로 없지
종갓집 돌담 양지녘에서
쑥 질경이가 봄볕이랑 함께
논다.
봄바람은 장난꾸러기
쑥 질경이 겨드랑이를 자꾸만
간지럽힌다.
담장 안에서 굽어보는 목련이
하얗게 웃는 아침
밤나무 가지 끝 까치가 날아올라
새봄은 잠을 깬다.
살다보면 어찌 봄바람 부는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겠는가
(2004. 04. 05)
......................................
오늘 같은 날 / 만은 김종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은 인간의 스승입니다.
지난 청명 한식 연휴에 산새들의 지저귐에 산골에서 맞은 아침은 놀라운, 우리 자연의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5월초까지 봄 서리가 내린다는 장수 지방에 그 날도 서리는 하얗게 내렸지요. 그런데 그런 서리를 맞고도 종갓집 돌담 아래의 풀과 쑥 질경이 들은 전혀 굽힐 줄을 몰랐습니다.
'그 칼바람 불던 북풍한설도 참아 냇는데 이깟 4월 봄서리쯤이야' 하는 듯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생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더 신이나서 몸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앞날이 보이지 않을 칠흑같은 밤을 참아 내면 이런 봄날이 온다고 참을성 없는 못난 인간들을 일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햇볕과 쑥 질경이 그리고 봄바람이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담 너머로 지켜보던 목련은 하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웃는 얼굴에 그 누가 침을 뱉을 수 있겠습니까? 까치도 깍깍 울며 날아올라 따뜻한 새봄을 축하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일이 꼬여 앞이 캄캄하십니까? 소리없이 봄을 맞기 위해 칠흑같던 밤을 준비하던 쑥과 질경이의 삶에서 생활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리없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하며 참는 자들에게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니까요.
...........<2004. 04. 10(토) 아침 만은 드림>..........
* 김종원(1949 - ) 시인. 호 만은(晩隱). 전북 장수 출생. <시조생활> 신인문학상 당선, <한맥문학>.<문학세계> 시 추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 투철한 시를 주로 씀. 시집 <그대 마음밭에 사랑 씨앗 심는 뜻은> 등. 홈페이지 주소 http://kjw.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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