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젖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하이힐로 또박또박 아스팔트위에 점을 찍으면서 가방을 둘러매고 오늘 있을 하루 일을 상상하며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에게 미래가 보였고 건강한 젊음이 보였고 행복이 보였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나도 아침이면 핸드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9센티나 되는 높은 구두를 신고 예쁜 다리를 자랑삼아 너무도 당당하게 걸었었다.  어제 입은 옷은 절대 오늘 다시 입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매일 다른 옷을 코디해서 입고 나가기 위해서 저녁이면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꺼내서 준비까지 해 놓는 철저함도 있었다. 

네 자매가 자라면서 고만고만한 몸매에 네 옷, 내 옷 구별이 없이 살아야했던 한에 월급타서 적금을 부고는 거의 모든 것을 치장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아침이면 거의 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어제입지 않은 새로운 옷을 입고 액세서리까지 완벽하게 챙긴 후 그렇게 세상을 향해 출발을 했었다.  누군가 무슨 귀걸이가 그렇게 크냐?  목걸이는 몇 개를 한 거야?  지금은 누구나 개성시대이니 뭐랄 사람이 없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조금 튀긴 했었다. 

공통된 내 대답은 간단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서 바람 불면 날라 갈까봐 무게를 맞추느라고 그래.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뚱뚱한 아줌마는 누군가?

매일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  빨래하기 귀찮아 입기 전에 냄새를 맡아보고 땀 냄새 안 나면 오늘 하루도 다시 몸에 꿰차는 이런 게으름.  늘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다니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식구들 음식에 머리카락 떨어질세라 늘 꽁지머리로 묶어버려 살찐 얼굴이 축구공만큼이나 동그란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부럽다.

세월은 어쩜 이렇게 성큼 다가와 내 앞에 황혼을 성급하게 보여주려 하는지.

처서가 지나 세월이 가을 문턱에 들어서며 내 인생도 가을로 접어 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