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서공식


시절을 유배당한 아릿한 침묵으로
선운산 감아 내려 산문으로 내달리는
천년을 품어 젖어온 자욱한 저 비구름

비는 또 내리붓고 계곡은 범람하여
서둘러 낮게 낮게 하루를 지치는데
허기진 산새 한 마리 물살 끝을 노린다.

나와 너 버힌 가슴 예다가 묻으련다
탈속한 담쟁이가 끌어안아 달래주는
쓰러진 고목 등걸에 겁을 이은 바람들

일어선 비구름이 능선을 치 올릴 때
동백꽃 망울 속에 핏빛 속내 떨궈놓고
돌아서 돌무덤 위에 마음 두 개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