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사랑방 > 이정자 > 다시 읽고 싶은 시조 : 눈 오는 날/ 오영호

눈 오는 날 /오 영 호

천지간

하얀 말씀

소곤대며 하강한다.

순백의

진실들이

화선지에 눈을 뜬다.

온갖 것

더러움 묻고

강물 되는 목숨들.

시인은 눈을 하늘과 땅 사이를 소곤대며 내려오는 하얀 말씀으로 이미지화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하얀 말씀은 종교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이것은 중장에서 순백의 진실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종장에서는 지상에서의 모든 거짓되고 더러운 것들을 다 묻어버리고 강물로 흐르는 순수함이다.

‘문은 곧 그 자신’이라 한다. 글은 곧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다. 무심히 쓴 한 줄의 글속에도 이미 그의 인생관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말이 씨가 되고 한 번 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 공간 어딘가에 살아 있다가 어느 순간 어느 때가 되면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말은 아무렇게나 내 뱉어서도 안 되고 부정적인 말과 안 좋은 말은 삼가 하라고 옛 어른 들은 일러준다. 말을 언어기호로 나타낸 것이 글이다. 그러니 말이나 글은 같은 효력을 갖고 나타난다.

위의 시는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고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시이다. 누구나 또 언제나 이런 고운 마음만 지닐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시를 감정의 유로로 보든 작가의 지각, 사상, 감정에 작용하는 상상력의 산물로 보든, 시는 마음과 감정에서 울어난 순수한 표현이다.

󰡔서경(書經)󰡕 ｢순전｣에 의하면 ‘시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고 ‘노래는 말을 가락에 맞춘 것’(詩言志歌永言)이라 했다. 󰡔詩經󰡕 ｢大序｣에서는 ‘시는 뜻이 가는 바를 표현한 것’으로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詩者志之所之也在心爲志發言爲詩) 그러니 시는 곧 개인의 뜻이고, 정서이다. 그래서 ‘문은 곧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정자(시인, 문학박사)

_ 시조문학 2012.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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