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온천축제 시조문학상 신인상 당선작
1. 수안보 벚꽃 길에서
김복희
실버들 휘늘어진 석문천 둑길 지나
선잠 깬 하얀 꽃잎 터널 이뤄 피었구나
연둣빛 건강 산책로
여름 채비 서두르고
나라님 다녀갔던 명소가 여기던가
부모님 신혼여행 벼르고 찾던 온천
어쩌면 내 존재 이유
여기일지 모른다
팔각정 마루 앉아 그윽이 내려보니
월악산 휘휘 감싸 아늑한 온천 고을
따스한 어머니 품속
그 향기를 닮았다
2.
봄나물 일기
꽃망울 맺기 전에 할머니 야문 손길
풍성한 한 바구니 봄 내음 그득하다
데쳐낸 설핏 이른 봄
장남 아들 침 넘긴다
명절마다 오지 마라 핑계 삼아 건너뛴 놈
보리밥 물바가지 데친 냉이 석석 비벼
한 아름 입이 째져라
우적우적 잘 먹는다
서방 잃고 키운 자식 열 손가락 다 아프다
미운 정 아들자식 고운 정 딸자식들
풀 싫어 햄버거 타령
손주 업고 마실 간다
3.
보도블록 틈사이로
누군가 들을 거쳐 이 길을 지난 걸까
겨울 산 봄 재채기 이곳까지 날린 걸까
날 봐요 그 좁은 틈새
황새냉이 꽃폈네
사각형 블록처럼 반듯하게 살아온 길
모서리 헛디딜까 행여 딴 길 접어들까
한평생 자식들 걱정
등 굽으신 울 아버지
가진 것 없었기에 잃을 것 또한 없다
일 찾아 누비시던 눈 감고도 다니던 길
아버지 그 좁은 틈새
세월 안고 멈췄다
당선소감
김복희
먼저 수안보 온천 시조문학상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문학 초보이고 시조 초보인 제 글을 당선작으로 선택하여 주셨다니 놀란 가슴이 아직도 두근거립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에 젖어 펜을 들 마음 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한 편을 보고 감동하여 시조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당선작들을 모아 탐독하며 직장생활 틈틈이 읽고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율격을 갖춰야 하는 글짓기라 적성에 맞는 것 같았고 조상의 숨결을 이어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독학을 해왔습니다. 그 후 ‘과연 내가 쓰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면서 누군가에 평가받고자 공모에 처음 시조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큰상으로 평가해주신 수안보 온천 시조문학상 관계자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시조 공부하며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사평
제9회 온천시조문학상 신인상
인생론적 사유를 시적으로 승화
2023년(제9회) 온천시조문학상 신인상에는 김복희 님의 「수안보 벚꽃 길에서」 외 2편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시조야말로 시인의 개성과 기량에 따라 재창조될 수 있는 우리시의 정화(精華)다. 고른 수준을 보이는 세 편의 연시조가 시조의 율격을 잘 살리고 있으며, 참신한 시상으로 시조의 보법을 잘 지켜내고 있다. 시상을 이끌어가는 저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평이성을 벗어난 새로운 발상의 묘미와 함께 작품의 탄탄한 구성도 돋보이고 있다.
첫째, 「수안보 벚꽃 길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서 떠올리는 인생론적 사유를 시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연시조의 시상을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휘늘어진’, ‘선잠 깬’, ‘연둣빛’, ‘채비’, ‘벼르고’, ‘휘휘 감싸’ 등의 곱고도 유려한 우리말 시어들을 적재적소에 앉혀서 성숙한 언어미감을 표출하고 있다.
둘째, 함께 보내온 「봄나물 일기」도 세 수로 된 연시조인데, 시적 발상이 진지하며 일반적인 느낌을 시적 감동으로 바꾸어 새로움을 환기시키는 작품으로 시적 사유와 삶의 철학이 담긴 시조다.
셋째, 「보도블록 틈사이로」 역시, 위 두 시조의 수준과 결이 유사한 작품으로, 순수한 심성에 포착된 소재에서 상투적인 접근이나 흥분됨이 없이 그저 차분한 어조로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끝으로 김복희 님의 신인상 당선을 축하하며 모쪼록 계속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세로 시조 창작에 임하여 우리 시조문단을 빛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 송귀영, 김태자, 김석철(글)
(사)한국시조문학협회 이사장 이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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