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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12 14:09
 조회 : 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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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신비한 작용 ● 구 상(시인, 예술원회원)
언령(言靈)이라는 한문 숙어가 있다. 그 어원을 자세히는 모르나 우리는 무속적(巫俗的)차원에서만 쓰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이미 언어학, 특히는 심미적 언어 즉 시어의 고찰에 자주 쓰이는 말로서 언어에 내재한다고 믿어지는 신령의 힘을 뜻한다.
가령 오늘의 어느 시인이 윤리적 의지나 구체적 체험이 없이 능란한 솜씨와 찬란한 언어를 구사하여 우리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든가, 또는 필리핀의 호세 리잘(Jose Rizal:1861~96)의 옥중절창인 <마지막 고별> 같은 시를 만들었다(지어냈다)해도 그 시는 마치 무정란(無精卵)과 같아서 독자들에게 감동이라는 새 생명을 부화(孵化)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시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상대방이 아무리 교묘하고 번드레한 말을 해도 진실이 느껴지지 않으면 공감을 불러이르키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날 자유민주화시대에 말의 풍성한 잔치 속에 살지만 그 말에 감동하기 보다 불신과 혐오 속에 산다. 날마다 언론매체를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사회각계의 지도자들과 각 전문분야 지식인들의 그 옳고 착하고 거룩하기까지 한 말이 액면 그래로라면 우리 사회는 금방 이상사회로 변하고 우리는 그것을 누릴 것이라고나 하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 세상살이가 고쳐지기는 커녕 날로 난장판이 되고 막말로 막가판이 되어갈 뿐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이나 말을 듣는 사람이나 가책과 개전(改悛)은 없이 말만 말대로 공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말을 천성의 직능으로 삼고 있는 우리 시인들의 언표마저 많이는 치장만 번드레하고 아름다워 보이고 또 그런 조련에만 몰입들 하여 실제 우리 삶에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언어학의 전문적 용어를 빌리면 의미 수여(授輿)와 의미 부여(賦輿)가 없는 기경(奇驚)과 현란에 나아가고 있다면 과언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말들이 특히나 우리의 시가 참된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미 글머리에서 밝힌대로 바로 언령(言靈)으로써 그 말을 지탱하는 내면적 진실, 즉 그 말이 지니는 등가량의 인식과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10악중의 하나인 기어(綺語), 즉 비단같은 말도 바로 언령(言靈)이 결한 말을 뜻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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