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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7 23:05
우렁각시
 글쓴이 : 맹명희
조회 : 4,573  
< 우렁각시 >

맹명희

여승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슬퍼도 소리내어 울지 않고, 기뻐도 경망스럽게 웃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닮고 싶었다. 빡빡 깎은 머리도 멋스럽게 보였다. 우연히 만난 여승 하나가 내 혼을 다 빼가고 만 것이다. 그는 내 얼굴을 한참 동안 자세히 바라보더니, 중이 되면 대성할 관상이라고 했다.

그 무렵, 어느 친척의 소개로 선을 보았던 적이 있다. 내 모습이 굼실굼실살림이나 잘할 것 같아 보였는지, 상대방의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마음에 없는 눈치였다. 인물을 탓하더라는 이야기도 들렸으니, 마음에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이 나를 볼 적마다 내 손을 꼭 잡고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참고 만나곤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 그래 보는 것이라기에 이러다가도 정이 드는 수가 있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대방으로부터 서로를 위해 일찌감치 헤어지자는 내용의 편지가 왔다. 마음내키는 만남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전보다 더 외모에 신경이 쓰였다. 부모나 조상들중에서 잘난 곳은 다 제쳐두고, 못생긴 곳만 골라가며 빼닮았으니 남의 눈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성형수술 같은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체중도 늘 중량 초과였다. 뚱뚱한 사람을 표현할려면 본의아니게 내가 모델로 들먹거려졌으니 아픈 곳은 여일 찔리고있었다.

그러한 시기에 한 여승이 허전한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여승은 자주 편지를 보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린 나이에 절로 들어와 꾸준히 노력하면, 늘그막엔 조그만 암자 하나쯤 책임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속세의 번뇌를 떨쳐버리고 험난한 인생항로를 용감히 헤엄쳐 건너 오라던 늙은 여승의 편지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수없이 계산도 해보고 저울질도 해봤다. 결국, 가족들 모르게 숨겨 두었던 비상금을 모두 털어내고, 당장 입을 옷가지 등을 챙겨 보따리를 쌌다. 속세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유난히 밤이 길었다. 날이 밝으면 늙은 여승이 기다리고 있는 강원도의 깊은 산사로 들어가 승려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4시경 출발할 예정이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난데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도 못 들은 것 같은데, 부슬비는 곧 장대비로 변해 마구 쏟아졌다. 발을 동동 굴렀으나 폭우는 계속되고, 갑자기 불어난 마을앞 개천에선 바윗덩이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이렇게 험한 길을 굳이 나서야 할만큼 절박한 사연이 과연 내게 있었는가,몇 번이나 내 자신에게 반문을 해보았다. 폭우가 앞길을 막는 것은 중이 될 팔자가 아니라는 하늘의 뜻인 듯했다. 챙겨두었던 짐을 아무도 모르게 도로 풀어놓고야 말았다.

꽤 늦은 나이에 지금의 남편과 중매로 결혼했다. 남편은 훤칠한 키에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다(나에 비해서). 누군가처럼 못생긴 여자라고 탓하지 않는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남의 축에 빠지는 내 모습이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우렁각시처럼 안으로만 맴돌며 근신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삶의 바퀴는 돌고 돌아, 우렁각시는 어느새 자식들을 주렁주렁 거느린 중년의 아줌마가 됐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쌍꺼풀 수술을 해볼까, 코를 좀 높여 볼까 하는 요사스런 마음도 생겼다. 타고 난 개성을 지키며 살기로 했지만 아직도 때때로 여승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에 너무나 깊이 생각하던 일이라 여운이 그렇게 깊은가 보다.

내게는 손윗동서와 아우동서가 있다. 그들은 모두 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미인들이다. 그래서 시어머님의 며느리 자랑이 나올 때마다 나는 늘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한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동서들은 앞줄에서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는 뒤편의 남자들 사이에 끼어 서서 이마만 조금 나오게 한다.

우렁이 같던 마음도 다 퇴색해 가던 어느 날, 또다시 외모에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문우들과 함께 TV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함께 갔던 친구들은 모두 얼굴이 수려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물론이고 TV를 본 이웃집 사람들의 말이 내 모습이 제일 보기 좋더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막내가 끼여들었다. 정말 아무리 봐도 우리 엄마는 잘생긴 얼굴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긴 사람을 잘생긴 얼굴이라고 하는 줄이나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이젠 그런 것쯤은 알 만큼 자랐다며 까치발을 한다. 작은엄마나 큰엄마 같은 얼굴을 잘생긴 얼굴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으나 수긍이 안된다는 눈치다.

" 에그―! 작은엄마나 큰엄마도 예쁘지만 우리 엄마가 훨씬 잘생긴 얼굴이지."

곁에 있던 큰아들이 제 동생의 말이 맞다고 한 수 더 거든다. 갑자기 가슴에 전율을 느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시 태어나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평생에 한이 되었던 말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릴 때는 그래도 공부 잘한다는 소리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었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여자에겐 인물과 맵시가 가장 큰 재산이고 힘이라는 것을 피부로 가슴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이젠, 마음 속에 그늘져 있던 깊은 골이 환하게 밝아진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 달리 감정이 흐르고 있는 까닭에, 마음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허물도 곱게 보인다는 진리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자신 없는 외모 때문에 나는 남보다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더욱 집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껏 심성이 훈훈한 사람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나의 못난 외모 덕택이었던 것이다.

너그럽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면 관상도 너그러운 모습으로 좋게 바뀐다는 어느 심리학 교수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 보다 더 겸허한 자세로 내면을 가꾸며 참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이 우렁각시의 길임을 생각한다.*


- 1991년 11월 월간 수필문학에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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