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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4 12:13
영등할매 오시면 꽃샘바람 몰아친다
 글쓴이 : 임재해
조회 : 4,603  

           < 영등할매 오시면 꽃샘바람 몰아친다 >

                                                                        임 재 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어김없이 꽃샘바람이 분다. 봄옷을 성급하게 꺼내 입었다가는 감기 들기 딱 알맞다. 옛말에 '2월 물독이 업어 터지고 꽃샘바람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고 했는데, 바로 꽃샘추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3월의 꽃샘바람은 2월의 영등바람과 만난다. 옛말의 2월,3월은 다 음력이다. 바람신인 영등할매가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한참 머무는 까닭에 봄답지 않게 꽃샘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친다. 영등할매가 내려오면 열흘이나 보름 동안 머물다가 올라가므로 그 동안 사람들은 행동거지를 삼가며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한다. 바람이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할때는 으레'우순풍조(雨 順風調)'를 빈다. 비바람이 순조로워야 농사도 순조롭다.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도 하늘에서 내려올 때 우사(雨師)와 운사(雲師),풍백(風伯)을 거느리고 왔다지 않는가. 바람신을 섬기는 전통이 역사적으로 매우 뿌리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바람이 심하면 농촌보다 어촌이 더 문제다. 배를 띄울 수 없어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 자연히 어촌에서는 영등굿이 더 드세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는 제주도 영등굿은 특히 유명하다. 잠녀(해녀)들이 해산물을 풍부하게 채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며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영등굿을 했는데, 요즘은 영등이 내리는 날과 올라가는 날에만 굿을 한다. 물질하는 잠녀들이 영등할망을 정성껏 섬기는 굿이기도 하지만 잠녀들 스스로 신명풀이를 하는 한판 축제이기도 해서 영등굿을 잠녀굿이라도 한다.

   초하루에 영등맞이굿을 하는데, 이때 영등할매는 혼자 오지 않고 늘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온다. 맑은 날씨에 바람만 살살 나부끼는 때는 딸과 함께 오고, 비바람이 어지럽게 몰아치는 날에는 며느리와 함께 온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딸의 분홍치마가 아름답게 보이고 비바람이 사나운 날에는 며느리의 치마가 젖어서 흉하게 보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며느리에 대한 시어미의 심술인가 하면, 딸을 둔 어머니의 모정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봄날씨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바람신을 굳이 여신으로 은유하는 것은 변덕스러운 꽃샘바람에서 연유된다. 영등신을 동신이나 산신, 용신처럼 늘 한 곳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며칠 지상에 내려왔다가 올라간다는 점을 눈여겨보면, 영등내리기와 영등올리기 또는 영등맞이굿과 영등전송굿이 짝을 이룬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영등굿은, 하늘과땅.산과 바다.바위와 나무등 모든 자연물을 섬기며 이와 공생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우리 굿문화의 자연친화적 전통 속에 놓여 있다. 그러면서 사철의 계절 변화와 삼한사온의 주기, 2월의 꽃샘바람 등 날씨의 변동을 읽는 기상학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문화이다.

꽃샘바람이 부는 / 이유를 잘 몰랐다 / 꽃피는 것을 시샘하는 / 심술꾼이라고 / 미워한 적도 있다 / 그런 내가 사랑의 꽃을 피웠을 때 / 꽃샘바람의 혹독함을 알았다 // 실한 꽃을 피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 구순자 시, 꽃샘바람

   꽃샘바람은 꽃만 실하게 피우고자 하지 않는다. 봄기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을 한껏 흔들어 나뭇가지와 뿌리를 실하게 하는 구실도 한다. 겨울잠을 깬 나무들은 꽃샘바람에 몹시 흔들리는 까닭에 뿌리를 더 넓고 깊게 뻗치면서 땅의 속살들을 꽉 껴안게 되어, 여름에 거센 태풍이 닥쳐도 끄덕없이 자란다. 마디 없는 대나무가 없듯이 갖은 풍상을 겪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도 성숙되지 않는다.

   지금 이 봄이 시릴 만큼 극복하기 벅찬 시련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실한 삶을 꽃피우기 위한 인생의 풍상을 겪는다고 여긴다면 주어진 현실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 먹으면, 비오는 날 딸을 두고 며느리와 함께 내려오는 영등할매의 심사도 읽을 만하다.

- 우리 문화 산책 /샘터.2003년.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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