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를 향한 초흔가
                                                             - 월하 이태극론-

                     1. 머리말

  이 태극 선생은 1913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아호는 월하이다. 일찍이 춘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문과를 중퇴,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1950)를 졸업했다. 30여 년 간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정년 퇴임 후에는 여러대학 강단에서 시조 이론과 창작을 지도하였다.
  그가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한 것은 1935년 경이나, 본격적인 창작활동은 1950년 무렵부터이다. 시조 창작에 열정을 쏟았으며, 시조론의 학문적 이론 정립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학구파였다. 당시 시조 문학은 이론적 볼모 상태로서, 가람, 노산에 의해 산발적으로 시조 이론이 발표되다가 그의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으니, 오늘날 시조 문학 연구의 주춧돌을 놓은 셈이다.
  그가 우리 시조 문단에 끼친 공적은 무엇보다도 시조 중흥을 위한 헌신에 있다. 유일한 시조 전문지인 <시조 문학> (1960)을 창간해서 오늘날까지 속간되도록 뒷받침하였으며, 전체 시조인의 단결을 도모하는 한국시조작가협회 결성에 앞장섰다. 또한, 일간 신문 신춘문예 현상 모집, 문예지 심사 위원으로서 많은 신인을 배출하는 등 시조 문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태극선생께서 지난 밤 별세하셨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부음을 접하고 보니 황망스럽고, 추모의 정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 문학의 건립과 지평 확장에 일생을 바치신 뜻을 이어받고 실천해야 할 시조인으로서 실로 어깨가 무겁다. 본고에서는 월하 선생의 시조 문학 사랑과 시조 문학에 끼친 업적을 조명하고, 작품을 통해 나타난 시조 창작에의 열정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시조와 더불어 일희일비하신 그분의 삶은 곧 시조를 향한 초흔가였다. 

2. 시조 문학 이론의 정립

  시조의 중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조에 대한 학문적 이론이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론의 바탕 위에 시조가 창작되어질 때 문학으로서의 생명과 가치를 지니게 되기 떄문이다. 시조에 대한 이론은 육당, 춘원, 자산, 위당에 의해 단편적, 수상적 형식으로 발표되다가 노산, 가람에 의해 부분적인 정립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월하의 학문적 연구와 시조 운동으로 시조 문학에 하나의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시조 개론>은 안 자산의 <시조시학>이래 가장 본격적인 시조 개론으로서 시조의 기초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시조 전반에 관한 지침서이다. 이 책은 모두 4편으로 구성되었다. 제1편에서는 시조 발달의 여건을, 제2편에서는 시조의 원론을, 제3편에서는 시조의 연원, 성립, 성장, 발전, 쇠잔, 부흥 등 여섯 시기로 구분하여 사적으로 고찰하였다.
제4편에서는 시조 창작에 관한 이론과 시조 감상의 목적 및 의의, 방법 등을 다루었으며, 부록으로 가집 해설, 시조 악보, 색인도 함께 실었다.

  신문학 이후로 부흥된 시조는 낡은 형태 문학이라는 이유에서 그 이후 거의 반세기 가까운 오늘날까지 그 존부의 이론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한 속에서도 면면히 생명은 흘러 작금 또 다시 경향 각지에서 이것을 아끼고 옥석간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은 시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당면한 문학상에서도 특별할만한 사실의 하나인 것이다. (중략) 시조는 우리 사상과 감정을 토로하는 우리가 만든 유일한 연모로 고금을 살아왔다. 이제 이러한 우리의 시조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단계가 왔다고 보아 이 개론을 시도하여 보는 것이다. (<시조 개론>,'서문' 중에서.)

  시조가 낡은 형태의 문학이라는 이유로 그 존부를 논의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시조 중흥을 위한 선봉장으로서 시조론을 문학사적 측면에서 정립한 학자였다.
<시조 연구 논총>은 1920년대부터 신문,잡지 등에 발표된 논문 40여 편을 수집하여 분류 정리한 책으로, 후학들의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될 시조 문학사상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그의 <시조 형태론>, <시조 부흥론>, <현대 시조의 작품관>, <현대시조 작법> 등 허다한 이론은 현대 시조의 운명 타개를 위한 활력소가 되기에 족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시조론을 통해 시조의 현대시조로의 발전 가능성과 그 모색을 주장하여 "시조 현대화의 기수요, 그 옹호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3. 시조 부흥 운동

  시조 운동은 시조의 의의를 부정하는 몰지각한 인사들의 계몽, 좌절감에 빠져 있는 시조인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자극, 그리고 동호인 획득이라는 몇 가지 측면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당시 시조인들은 작품을 발표할 전문지 하나 없는 상태에서 간혹 일간 신문이나 문예지에 한정된 몇몇 시조 시인만이 작품을 발표하는 형편이었다.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현상 모집에는 시조 부문이 빠져있기 예사고, 문예지의 추천마저 자유시에 포함되어 시조인이 아닌 시인에 의해 선별되는 등 역량 있는 신인 등단의 기회를 잃은 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단의 여건 속에서 월하의 끈질긴 노력으로 신춘문예 현상을 통한 신인의 배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일은 <시조문학>지의 탄생이다. 1960년 6월 시조 전문지인 <시조문학> 창간지를 발간하면서 창간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떄 그 생명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원하며, 그 지속되는 생명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지금 창간하는 이 <시조문학>지도 1호, 2호, 3호 거듭되어 감에 따라 우리의 시조가 새로운 문화의 생명을 상징하는 표적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시조문학>은 3집 발행 후 재정적 어려움으로 폐간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는 재원 마련에 노력하는 한편, 박봉을 보태면서까지 발간에 힘썼고 장구한 세월을 이어오며 147집이라는 노력의 결실을 가져오게 되었다.
 <시조문학>을 발간하면서 선생은 오직 시조 발전을 위한 역사적 발전을 잃지 않았으며, 주요 일간 신문의 신춘문예 현상의 심사 위원으로 많은 신인을 배출하는 데도 전력을 다하였다. 또한 서울의 각 대학생들로 구성된 최초의 시인 동인회라 할 수 있는 '새솔회'(1959. 5. 12. 발족), '울림회'(1964. 6. 발족) 활동을 이끌면서 학술 강연, 시조 낭송의 밤을 갖는 등 발전적 활동을 주도하였다. 오늘날 시조 시단이 이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공로는 지대한 것이며, 시조를 위한 전면적인 업적은 시조사에 기록될 만하다. 

4. 시조 창작에의 열정 

   월하 선생은 시조 창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시조는 자연관을 기반으로 일상적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자연 풍물을 소재로 한 향토적 서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시조가 갖는 특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조화시켜 원시주의에 복귀하려는 휴머니즘 사상의 소유자였다.첫 시조집 <노고지리> 서문을 보면 그의 시작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 수록한 작품들도 시조 본래의 가락과 멋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로서의 지향을 바라 힘써 지어낸 것임을 천명하여 두려는 터이다. 즉 그것은 내 사념과 생활의 고백들이요, 현실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의 금선들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율조나 시어들에서 옛스러움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 나이 탓인지 모를 일이료, 또한 옛 시조를 자꾸 만지다 보니까 자연 그렇게 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조는 어디까지나 시조로 살아가도록 할 줄로 믿는 바이다. 이것을 자유시에 편승시켜 시조의 본질까지도 이탈시켜 버릴수는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는 시조 창작에 있어 자연과 현실의 관계에서 유추된 사념의 고백을 시조의 전통성에 접맥하려고 노력한 시인이다. 시조가 시로서 자유시에 대결하는 길은 시조 본래의 형식을 파괴하고, 생경한 언어를 사용하는 기형적인 실험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시조가 현대시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된 형태 속에 시적이고도 현대적으로 표현되는 건강항 시정신 때문인 것이다. 시조 이론을 정립하고 시조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열정 못지 않게 창작에 있어서 월하 선생의 시조 사랑 또한 극진하였다. <시조송>은 1955년 작품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조문학에 대한 선생의 절실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묶는 듯 율의 자윤
내일 바라 벋어나고

부풀어 말의 자랑
갈수록 되살아나

이 너래 청사를 감넘어
보람쩍게 크리라.
         - <시조송> 일부.

  선생은 시조를 시작한 것에 대해 과장하지 않는다. "시조가 하도 좋아/ 나도 얽어 보던 것이// 그 벌써 한 이십년/ 어제론 듯 흘렀구료" 하면서 시조를 쓰는 즐거움을 서술한 후 시조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세월을 감내하고 작품을 축적해 가는 동안 빛나는 자취를 얻게 되리라는 극진한 소망이 <시조송>이 되어 울려나오고있는 것이다.

욕을 먹으면서도
시조문학 내는 일에

내 마지막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은

늙음은 그 한계마저
지켜주진 않는 듯
                             - <요즘의 심정> 일부.

  1994년 4월, <요즘의 심정>이란 시를 보여 주실 때 선생의 시조에 대한 사랑을 다시 보았다.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그 섭리 가운데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는 시점에서 시인은 관조적 자세를 갖게 된다. 시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면서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정신적 평정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휴머니즘 시정신의 도달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과 합일된 인간 본연의 삶에 도달하기 위해 그다지도 시조에 집착하고 공을 들였던 것이리라.

5. 맺음말

  월하 선생의 시조 발전을 위한 노력은 시조의 생활화 운동으로 이어져, 현재의 시조 시단과 같은 활기찬 실효를 거두었다. 시조에 대한 이론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시점에서 그에 의해 이룩된 학문적 업적은 시조를 창작하는 이에게나 연구하는 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토대로서 그 공로를 널리 평가받고 있다. 그는 우리 민족 문학인 시조의 개화를 위해 영면에 이르는 그 날까지 스스로 부목의역을 자청하였으며, 시조문학의 중흥을 가져오기 위해 온갖 신수지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조문학>을 거의 독력으로 이어오면서 수많은 역군을 길러내는 등 시조 문단 육성의 오늘의 공로 또한 그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시조 창작에도 정진하여, 시조집 <꽃과 여인> (1970),  <노고지리> (1976),  <소리, 소리, 소리>  (1982), <날빛은 저기에>  (1990),  <자하산사 이후> (1995),   등을 출간하였으며, 2000년에는 시조 선집 <진달래 연가>도 출간되었다. 월하의 작품 세계는 향토적 서정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 정신에 있다. 그러한 휴머니즘이 때론 동심의 세계에 대한 향수로 이어지고 때론 원시주의에의 복귀나 자연친화 사상으로 접맥되어 건강한 시정신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생경한 형식을 도입하지 않고 한자어를 탈피하면서 순수한 우리말의 유려한 시어를 통해 현대시조의 진면목을 보여 주려 노력해 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오늘날 현대 시조가 시로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