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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8-08 17:49
 조회 :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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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산행기/월악산
(2003.8.5/단독산행/양주동→오두현갈림길→정상→용하9곡→용하휴게소)
*1. 문수봉 가는 길
*2. 미개발의 청정 계곡 용하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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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수봉 가는 길
한국에서 18번째로 지정된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제일 높은 산은 어느 산인가? 1,093m의 월악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의외로 1162.5m 문수봉, 1,115m대미산, 1099.5m의 매두막 등 3개나 더 있다.
이 부근은 옛날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로 군사적 요충지며 격전지였으나, 지금은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이용하거나, 겨울의 수안보온천과 함께 여름을 식혀 주는 용하구곡과 더불어 중원지역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문수봉은 산은 험준하나 단조로운 편이었다. 월악산보다 키는 크지만, 정상 부분이 석성(石城)을 두른 듯한 거대한 암봉으로 그 빼어난 날카로운 월악산의 산세로 산(山)의 이름마저 내어 주고 봉(峰)으로 만족한 무명의 산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들어 문수봉이 품고 있는 계곡 용하구곡(用夏九曲)의 아름다움 덕분에 갑자기 알려 지기 시작한 산이다.
그 이름 문수봉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문수(文殊)가 아니다. 글월 文(문), 수놓을 繡(수) 문수봉(文繡峰)이다. 그러니까 글로 수놓은 봉우리라는 뜻인데 그 어원은 어느 곳에도 없다. 옛부터 용하구곡의 뛰어난 절경을 귀소 문으로 듣고 전국에서 찾아든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어 시를 읊조리면서 글로 수놓은 산이라 해서 문수봉(文繡峰)이라 한 것 같다.
이 문수산을 찾는 등산객이 드문 것은 등산로 입구에 이르기에 교통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문수산을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충주에서 30분 간격의 덕산행 버스를 타고 와서, 거기서 하루 4번밖에 없는 양주동 마을(도기리) 버스로 다시 바꿔 타고 와야 한다.
자가용 편을 이용하려면 용하 마을에서 긴 계곡을 타고 청벽대에서 등산로를 타고 정상에 올라와 선미대로 돌아와야 하는 원점산행이 되는데 그 거리가 지나치게 길다.
아뭏든 이곳은 산보다 계곡이 더 유명한 곳이다.
초행의 낯선 산길을 혼자 오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의 일정에 맞춘 듯이 서울에서 온 산악회가 있어 그 뒤를 따라 가기로 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입산통제란 푯말이 있어 아뿔싸- 하고 보니 봄철 가을철의 산불조심 기간이라 마음이 놓인다. 아무리 좋아서 찾아서 온 산이라 해도 등산도 스포츠의 하나요, 그러기에 지켜야 할 룰이 있거늘 어찌 법을 어기면서까지 산행을 즐길 수가 있겠는가.
산딸기를 따먹으며, 난생 처음 보는 작은 오이 만한 수입 고추밭을 지나 상수원이라는 개울을 넘으니 숲 사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3km, 1시간 30분을 가면 문수봉이다.
이정표도 없고 오솔길 같은 등산로도 풀이 우거져서 끊기듯이 이어진 길을 오르다 보니 원시림 속을 헤매는 것 같아 겁이 더럭 난다. 나무와 잡초 등이 뒤섞인 길로 더위를 피해 반바지 소매없는 샤스를 입은 처지이고 보니 긁히는 곳이 많았다.
장마 뒤끝이라 길은 질었으나 젖은 솔잎이 걸음걸음을 쿠숀처럼 푹신하게 하여 주는 것이 월악산과 같은 주위 산들과 달리 육산(肉山)이었다.
하늘을 온통 가린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숲으로 꽉 막힌 답답한 길을 팍팍하게 오르다 보니 앞서 가는 사람이 나무를 캐고 있다. 가시가 있고 잎이 다섯인 이 나무 이름이 오가피나무라 한다. 그걸 보고 앞서가는 여인이 이상한 풀이나 꽃을 만날 때마다 그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꽃이죠? 이게 무슨 풀이지요?', 그때마다 그의 대답이 한결 같다.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어떤 생물학 교수가 제자와 함께 식물 채집을 가는 후배 교수에게 선배로서 이렇게 한 마디 하더래요. 학생들과 채집 갈 때는 반듯이 앞서 가라구-. 가다가 모르는 식물이 나오면 발로 비벼 버리면서-.'
앞서 가는 사람도 주위가 꽉 막힌 데다가 길 같지 않은 오솔길이 지루하고 심심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노인들이 왜 눈이 어두운 줄 아세요? 예절(禮節) 밖에서 사는 자식들을 만나면 잔소리하지 말라고 가까운 걸 잘 안보이게 했대요. 왜 귀가 어두운 줄 아세요? 건강에 해로운 귀찮은 마누라 잔소리 듣지 말라고 귀를 어둡게 한 거구요.' 하하 일리가 있는 이야기로구나.
바람 한 점 없이 둘러볼 주위의 경관이 꽉 막힌 답답한 숲 속을 더위와 싸우며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능선에 올라섰으나 역시 바람이 없다. 여기가 안부인 오두현으로 갈림길이다.
남쪽으로 울긋불긋한 리본이 요란하다. 이 리본을 따라 가면 정상을 거치지 않고 청벽대를 향하게 된다.
정상을 향하여 암릉이 나오고 산죽 길을 지나면서 정상인가- 하면 다시 새로운 오름 길이고, 또 정상인가를 되풀이 하다가, 이제는 안 속는다 안 속아- 할 즈음에 하늘을 가렸던 나무들이 사라져버리고 파란 하늘이 확 트인 곳에 수런수런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곳이 정상이다.
앞서온 사람들이 문수봉 정상이라 쓰인 자그마한 정상석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양주동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는 동안 오직 단 한 번 만난 이정표요 표지였다. 그것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문경 산들모임에서 세워 놓은 것이다.
발 아래 황장산과 남쪽으로 뻗어 나간 능선 끝에 대미산(大美山)이 보인다. 원래는 검푸른 물감 黛(대) 눈썹 眉(미) 대미산(黛眉山)이라 하던 것을 퇴계 이황선생이 산이름으로 좋지 않다하여 대미산(大美山)으로 고쳤다는 산이다. 북쪽 멀리 대두막이 있고, 동북쪽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아득하게 소백산, 운봉산, 주흘산이 있는데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월악산 영봉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월악산이 월형산이라고 불리던 신라시대에 이 산을 중심으로 도읍지가 들어서게 된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러던 소문이 '와락' 미끄러져서 헛소문이 되어 '와락산'이 된 '와락'이 '월악'으로 되었다. 'ㅏ와 ㅏ'의 동음 반복 회피 현상에 따라 앞의 '아'가 'ㅓ'로 변한 것이다. 이런 민간에 전하는 비과학적인 전설을 민간어원설이라고 한다.
이보다 더 유식하게 말하면 달 月(월)은 고구려어로 山(산)이란 뜻이고, 岳(악)은 큰 산이니 월악(月岳)이란 큰산이란 뜻일 게다.
정상에서면 언제나 느끼게 되는 것이 자유에의 포만감이다. 우리의 체중에다가 배낭의 무게를 더하여 칠 팔십 kg의 무거운 몸으로 한여름에 서너 시간 이상이나 계속 산을 오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 고행이 일시에 멈추고 등산(登山)이 하산(下山)으로 바꾸기 시작하는 곳이 정상이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의 가장 높은 끝에다가, 자기 키를 더하고 서서, 몰려오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맥들과 우리가 살아오던 조그마한 마을들을 바라 볼 때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얼마나 산꾼을 행복하게 하던가. 거기 서있는 봉의 높이와 이름을 어루만져 본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감격이고 행복이던가.
아, 살아있는 기쁨이여! 이런 때는 서로가 우리들 되어 축하를 해야 한다. 축하는 술로 하는 것이다. 나는 문수봉 정상석 앞에서 정상을 정복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준비해간 정상주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스코트랜드의 시인 예츠의 시다.
'여인보다 사랑하던 술이여! 섹스보다 좋아하던 술이여∼' 옛날 금주할 수밖에 없었던 병상에서 울면서 노래하던 나의 시를 암송하면서-.
연분홍 리본 쪽으로 하산을 한다. 길이 외길인 줄 알면서도 홀로 가다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의심이 자꾸 불안한 마음으로 바뀐다. 게다가 암릉 지대를 만나면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하는 길이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 있다. 길은 습기가 가시지 않은 낙엽 깔린 미끄러운 길이다. 이 근처에 탄광이 있다더니 검은 탄의 모습이 곳곳에 무더기로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수목이 길을 막아선다. 나무 하나가 작히 전봇대를 두 세개 만들 수 있는 높이의 나무다. 적지 않은 전국의 산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곧게 크게 자란 수림의 나라는 처음 만나 본다. 나무만을 팔아도 캐나다 국민을 150년이나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캐나다 로키산맥 속을 헤매는 듯한 착각을 일게 하는 이 나무 이름은 무언가. 전나무 같다.
늦은 1시가 벌써 지났건만 반대편에서 역(逆)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두 무리밖에 못 만나보았다.
*2. 미개발의 청정 계곡 용하구곡
상쾌한 계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눈앞에 전개되는 장엄하고 거대한 반석 위로 맑은 물이 미끄럼 타듯이 흐르고 있다. 여기를 보러 밤잠을 설치며 내가 달려온 것이다.
용하계곡은 그냥 깊은 산골에 V자로 흐르는 계류가 아니었다. U자로 흐르는 피오르드의 세계도 아니었다.
평평한 수백 m이상의 하나의 바위가 반석이 되어 그 위로 맑은 물이 미끄러지듯이 소리내며 흐르는 계류였다. 산길에 지치고 땀에 범벅이 된 이 노 시인의 마음을 세월을 뛰어넘어 철부지 아이들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그런 계곡이요, 물이었다. 그 맑은 물은 어디서 마셔도 약수보다 더 청정의 샘물이 되었다.
이렇게 미개발의 계곡 용하구곡의 억겁을 두고 감추어 두었던 절승이 그 참모습을 하나 하나 드러내고 있었다.
용하구곡(用夏九曲)에서 용하(用夏)란 '여름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대미산(大美山)에서 발원한 용하수(用夏水)는 강서대, 활래담, 수용담, 선미대, 청벽대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만수봉에서 발원된 계류는 수문동폭포, 병풍폭포, 관폭대, 수곡용담을 이루어 하나의 "용하구곡"의 절경을 빚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산하는 길이라 여기서 거슬러 올라가야 볼 수가 있는 용하구곡의 모두를 아쉽게도 볼 수가 없다.
흘러내려 가는 물 따라 물이 만들어 놓은 기암괴석을 찾아내려 가면서 거대한 반석 위를 미끄러져 내려 용하휴게소를 지나 저 아래 충주호로 유입되는 것이다.
어떤 중년의 여인은 옷입은 채로 그 맑은 물에 선녀처럼 뛰어들고, 어느 여인은 탁족을 하기도 하는 그 모습을 저 아래 거북바위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멋있는 경치를 만나면 선경 같다고 하고, 때가 지금 같은 여름이고 거기에 소(沼)가 있는 경치라면 우리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연상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동기야 어떻던 간에 나무꾼은 부도덕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미역감는 여인의 옷을 훔쳐서 장가를 가는 것은 몹쓸 짓이다. 오늘날에도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부도덕한 이야기가 미화되어 비판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는지 참 이상하다.
그런 선녀가 목욕한다는 곳이 선미대(仙味臺)이다. 선미(仙味)란 고상한 취미를 뜻하는 말이니 그 취미의 주체는 목욕하던 선녀란 말인가. 선녀의 옷을 탐하던 나무꾼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탐하던 나와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 선미대 안내판에서 말하기를 '옛날 선녀가 하강하여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하며 산수가 아름답운 반석 위로 물이 흐르다가 바위로 부서져 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 하였다.
개발되지 않은 곳이어서 아깝게도 등산로는 계곡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 아니다. 숲으로 가다가 가끔씩 만나게 되는 것이 이 계곡이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대피소 같은 빈집이 있고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것 같은 위치에 청벽대(靑壁臺)가 있어 나의 시심(詩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다섯 개 큰 바위 켜켜이 층계구나
굽이도는 맑은 물 소(沼)를 이룬 선경이네.
푸른 벽
선비들처럼
풍류 한 번 흉내낼까.
덧붙이는 말: 아름답게 보낸 하루를 기뻐하며 용하 휴게소에 이르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나가야 할 길이 굳게 다쳐 있어 문 아래로 기어 나왔다.
휴식년제를 모르고 이곳까지 편안히 온 것이다. 등산 시작지점인 양주동 마을에서는 분명 없었던 것이다. 여기 가실 분은 확인하고 아름다운 산행을 계획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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