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 돌이여  /감태준  

 

이 심심하고 구석진 억새밭 강변까지 왔으면

떠돌이여,

여울이 아니라도 강을 보아라.

 

강은 자루같이

한없이 늘어나는 자루같이

일렁이며 밀려오는 물결 다 받아주는 것을.

 

별이 박히기 시작하는 지금껏

고개 숙일 줄 모르는 떠돌이,

이젠 나직이 저 강물에 어리어 나를 놓아라.

 

나는 이 저녁

가야 할 길을 가족 사이에 두고 왔다.

 

  

얼굴 /감태준

 

못물에 듣는 빗방울마다

동그라미를 터뜨린다.

동그라미 터져나가는 연못 바깥은

앵두꽃 피는 철.

 

꽃들은 하얀 꽃봉오리들은

빗속에 올망졸망 앵두 얼굴 만들 때,

좁은 못에 줄줄이 쏟아지는 빗방울

엎치고 덮치는 동그라미

정신없이 깨어져 뒹굴다 못물에 갇힌다.

못물에 갇혀 허둥댄다.

 

터널에 그득한 사람들,

어른어른 비치는 못물에 얼굴 묻은 빗소리

어디 가서 앵두 방울방울 동그라미 터트릴까

 

 

파도/감태준

 

 

한없이 일렁이고 뒤척대기만하는 생은

얼마나 눈물겨운 형벌인가 .

부서지고도 한참 더 부서지고 싶었다 .

 

옴몸을 방파제에 쳐서 부서뜨리고도

다 부서지지 않으면

남은 힘으로 포구에 들어가

뱃전을 들이받고 부서졌다 .

 

그러고도 다 부서지지 않으면

바람에 잔물결에 부서뜨리고 다녔다 .

 

내 아직 건재하다고 하지만

어떤가 .아침에 만난 파도

흔적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