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 해는 꽃잎처럼 떨어지고 건들마에 날개 접고 흰 나비 노루잠 드네 구름이 흩뿌린 소식 산등 타고 내려올까.
봄은 가고 손병호
도라지 반 연보라 속속들이 물 들이고 복사꽃 남은 향에 실바람 졸던 오후 감자씨 눈 뜨는 소리로 이슬비가 옵니다.
<뽑는 글>
민달의 <가을비를 기다리며>는 어떤 감정의 과잉에서 오는 과장이나 격정도 없이 먼저 평범한 심정으로 시상을 정돈한 뒤, 상징적이고도 실감 있는 비유를 통해 자기미학의 시상으로 재생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가령 초장의 '꽃잎처럼 떨어지고'와 중장의 '건들마에 날개 접고/ 흰 나비 노루잠 드네' 그리고 종장의 '구름이 흩뿌린 소식/ 산등 타고 내려올까'와 같은 표현은 시조의 미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가장 압축과 절제로 이루어져야 할 단형시조의 형태 속에 불필요한 설명을 늘어놓거나 표현의 꾸밈도 억지스럽지 않고 주제의식의 도출과 시상 전개의 치밀함과 그리고 뚜렷한 상황묘사의 형상화에 그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제목 '가을, 비를 기다리며'에서 ','는 불필요하고 '가을비'와 같이 붙여써야 한다. 손병호의 <봄은 가고>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같은 서정의 세계를 남의 흉내에 따르지 않고 개성적인 상념이나 감각으로서 능숙하게 표현함으로써 그의 시적 재능을 알 수 있다. 초장의 '속속들이 물들이고'와 중장의 '실바람 졸던 오후' 그리고 종장의 '감자씨 눈 뜨는 소리로 이슬비가 옵니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잘 닦여진 한국적인 느낌을 가장 멋스러운 한국적인 운율로서 시조의 단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율과 격이 시조의 근본임을 알고 있는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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