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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4-29 07:01
 조회 : 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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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조의 한 고찰
- 신진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
김 병 희
1. 21세기의 현대시조
2. 현대시조의 형식을 실험하는 시인들
3. 현대시조를 관통하는 몇 가지 주제
4. 현대시조의 위상을 다지기 위한 과제
1. 21세기의 현대시조
현대시조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꾸준히 맥을 이어오고 있다. <시조문학>이 창간된 지 50년에 이르고, 배출된 시조시인들이 문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꾸준히 창작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본고는 현대 시조의 양상을 형태적, 주제적 접근을 통하여 탐구해 보고자 한다. 현대 시조의 미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조에 나타난 정형성과 자율성, 그리고 소재와 주제에의 천착 등에 주목하여 시조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일궈내려는 노력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2003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시조문학> “21세기 포커스”및“21세기를 여는 시인들”에 선정된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시조의 형태 및 주제 접근 방식에 주목하여 현대 시조의 정체성과 그 위상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오늘의 시점에서 시조의 양태를 이해하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
본고의 대상이 된 시인은 여영자(2003.여름), 김상선(2003.가을), 이차남(2003.겨울), 김영덕(2004.봄), 손수성(2004.여름), 최길하(2004.가을), 김보영(2004.겨울), 정정조(2005.봄), 권갑하(2005.여름), 김광순(2005.가을), 김민정(2005.겨울), 이상목(2006.봄), 박구하(2006.여름), 심응문(2006.가을), 이정환(2006.겨울), 김인자(2007.봄), 유상용(2007.여름), 장청(2007.가을), 한선희(2007.겨울), 이전안(2008.봄), 심석정(2008.여름), 김락기(2008.가을), 정정배(2008.겨울), 나순옥(2009.봄), 고두석(2009.여름) 시인 들이다. 각 시인마다 15편의 자선 시조작품을 수록하고 해설을 덧붙였는바 특징적인 시조의 형태와 주제를 가려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 현대시조의 형식을 실험하는 시인들
시조가 정형시임에 힘입어 우리 고유의 정서를 우리만의 형식으로 노래해 온 터이지만, 시간의 흐르고 많은 시인들이 가세함에 따라 새로운 변화의 욕구를 반영하기도 하고, 시인 특유의 일탈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에 탄력을 받아 그 외관이 다소 유연해진 게 사실이다.
현대시조 시인들은 고시조의 단시조 형태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음보별로 또는 구별로 끊어 세로로 행을 배열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초장 ․ 중장 ․ 종장 별로 다시 휴지를 두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연시조인 경우는 고시조의 배열과 마찬가지로 초장 ․ 중장 ․ 종장을 배열하되 첫째 수와 둘째 수, 둘째 수와 셋째 수 사이에 휴지를 두어 연을 구별한다. 그러나 한 수 한 수가 독립적이기보다는 각 수의 내용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연시조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시가 형태를 지니게 된다. 결국 시조라 불리는 근거를 초장 ․ 중장 ․ 종장 3장으로 구성된다는 길이의 측면, 3.4.3.4./ 3.4.3.4./ 3.5.4.3.이라는 글자 수에서 찾아야 할 형편인데, 그것도 몇 자 범위에서는 일탈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시조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하나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고, 시조만의 독특함을 주장하기도 힘이 달리는 형편이다.
1) 단시조
단시조형로서 가장 많이 창작되는 형태는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된다. 고시조의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과 3장을 2행으로 나누어 6행으로 완결 짓는 방식, 마찬가지로 초장 ․ 중장 ․ 종장을 각각 여러 개의 행으로 나누어 7행 내지 10행까지 배열하는 방식이다. 6행과 7행 그리고 9행의 형태가 주로 사용되며 시인에 따라 좀 더 세부적인 변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형시조가 원래 3장으로 되어 있어, 아무리 분화한다고 해도 12행을 넘는 경우가 없으며, 3장을 통합하여 이어 쓰지 않으므로 3행 미만의 작품도 눈에 띄지 않는다.
① 3행 배열
고시조의 형태로 초 ․ 중 ․ 종장을 3행의 형태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그 내용 또한 고전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룰 때 많이 취하는 형식으로 신진 시조시인들이 즐겨 사용하지 않은 형태가 되었다. 다만 연시조의 경우는 압도적으로 이 형태를 선호하며 두 수 이상 여섯 수까지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절간도 다 타버린 외로 남은 塔 한 채,
밤새 아무도 몰래 눈이 내려덮이고
동자승 샘물 길러 가 길을 잃어버렸다.
- 최길하, <백자 연적 1> -
백자 연적이라는 물건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이미지 속에 이야기를 엮어 우리를 상상의 시공간으로 이끌어 간다. 언젠가 어딘가에 있었으리라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와 공간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신비함이야말로 요즈음 대중을 매혹시키는 환상문학과 맥이 닿아있다.
때로는 별이다가 눈 시린 웃음이다가
그대와 나 사이에 연줄 끊긴 기억이다가
지금은 그윽한 심연 흩어지는 물그림자.
- 심석정, <물수제비> -
<물수제비>에서는 조밀한 행간 속에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사려놓고 있다. 결코 어려운 시어나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으면서 삶이 빛을 발하던 절정으로부터 그 추억들이 심연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순간까지를 담담하고 사려 깊게 보여준다.
② 6행 배열
시조의 초장 ․ 중장 ․ 종장을 각각 2행으로 나누어 여섯 행으로 배열하고, 각 장마다 휴지를 두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서 초장 ․ 중장 ․ 종장 사이에 휴지를 두지 않고 6행을 이어서 배열하기도 한다. 신진 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형태 중의 하나다.
의암에 홀로 서서
남강을 둘러보니
위로는 촉석루에
뱃전 아랜 푸른 물결
사방을 아니 둘러도
논개 얼이 서렸다.
- 정정조, <진주 의암에 서서> -
남강의 물은 여전히 푸르고, 촉석루는 7번의 중수를 거쳤다지만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정조 시인은 짧은 시편을 통해 역사의 현장과 그곳에 서린 선인의 숨결을 요란하지 않으면서 엄연한 진실로 표현해 내고 있다.
능선에 얹은 시선
저녁노을 배웅하고
땅거미 내려 올 때
피어나는 저 꽃 좀 봐
조용히 쪽문을 열고
걸어오는 외씨버선.
- 장청, <달맞이꽃> -
장 청 시인의 <달맞이꽃>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언술을 피하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살그머니 엿보듯 달맞이꽃의 이미지를 띄워낸다. 다른 꽃들이 몸을 움치는 저녁에 마치 몰래 세상구경을 나온 듯 몸짓이 조심스럽다.
부라린 눈, 떡 벌어진 몸
변강쇠 같은 힘이다.
불감증 세월이면
꼿꼿하게 날을 세워,
언 땅에 오옴씬 옴씬
오르가즘 올리는 놈!
- 김상선, <봄의 뿌리> -
김 상선 시인의 역동적 세계가 극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겨울의 끝자리에서 사력을 다해 봄을 밀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뿌리의 역동성을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휴지를 두지 않고 행을 이어 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③7행 배열
6행 배열과 마찬가지로 초장과 중장을 각 2행으로 배열하고, 종장은 3행(3/5/4+3)으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정갈히 마음 비우고
부름을 기다린다
미련 담긴 그대 육신
무겁게 벗어나는 날
편안히
피안으로 모실
나룻배로 떠있다
- 나순옥, <낙엽 한 잎> -
<낙엽 한 잎>에서는 모든 생리작용을 멈추고, 이승에서의 삶을 가볍게 비워낸 뒤에 피안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낙엽을 통해 홀가분한 자유를 그려낸다. 낙엽의 자유로움은 소박한 대신 지극히 평화롭다. 행의 배열 또한 여유롭고 느긋하다.
때로는 7행 배열을 휴지 없이 이어 쓰기도 한다.
물오른 가지마다
고개를 치켜든채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
맞이하는 자유평화
초록빛
청아한 숨결
풀어놓은 솔향기
- 김인자, <비오는 날의 솔숲> -
김인자 시인은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해 능숙하게 독자를 자신이 원하는 공간으로 이끌어 간다. <비오는 날의 숲속>에서는 시청각적 요소에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결합해 전달효과를 배가시킨다.
그밖에도 종장을 4행으로 배열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그럴 경우 총 8행으로 마무리 된다. 시인의 호흡에 따라 종으로 길게 배열하는데, 단 시조의 경우 간결하게 끊어 휴지를 표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풀빛 그, 이면 뒤로
저문 길 드리울 적
꺾인 꿈 그마저도
숲 향해 나부껴서
적멸에
다가서려는
은밀한
반란이다
- 한선희, <갈잎 둘> -
시인은 외마디 소리처럼 내어뱉고는 주춤 멈추었다가 다시 한 마디씩 토해내며 호흡을 조절한다. 구구한 설명으로 전달하기보다 숨죽인 여백으로 호소한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실물보다는 이미지로서 각인되어 있는 존재를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시인이 원하는 독특한 시공간을 연출해 내고 있다.
④ 9행 배열
9행 배열은 초장 ․ 중장 ․ 종장을 각 3행으로 나누어 배열하는 방식이다. 한 장을 3/4/7로 나누어 배열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이다.
실안개
허리 감고
야생화 안겨 온다
웃자란
잡초 속에
예초기 요란하고
아버지
불러 보지만
메아리만 허망하다.
- 정정배, <성묘길 > -
<성묘길>에서 마주하는 아버지는 이미 온기가 사라지고 없으나 엄연하게 존재하는 과거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웃자란 잡풀도 우리를 쓸쓸하게 하지만, 정갈하게 다듬고 매만진 묘소 또한 망자의 고독을 생생하게 자극한다. 행간에서 못 다한 아쉬움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펼치면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지요
오므리면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되지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살지요
- 김민정, <마음 한 장> -
마치 한 편의 동시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은 지상의 희로애락을 한 몸에 감수하면서 그 사이에서 작은 행복을 엮어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듯하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들 앞에 자칫 초라해지기 쉬운 오늘날 우리들의 곤고한 귓전에 대고 시인은 속삭이며 등을 토닥여 준다.
그런가 하면 종장을 4행으로 배열하여 10행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엄밀하게 4행 배열로 가야 하는 당위성보다도 여운을 살리려는 시인의 의도로 보인다.
무어라고
열심히
답을 쓰긴 썼는데
다 쓰고
다시 보니
거꾸로 쓴 답이었네
시간의
종은 울리고
답안지는
앗기고
- 박구하, <인생2> -
종이 울고 답안지를 빼앗겼다는 시인의 낙담에 참담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자조적인 푸념이 되레 우리를 여유롭게 만든다. 다시 되돌릴 수 없음에 절망하기보다는 이런 극한의 진단에 이르지 않도록 자중하라는 권고이리라.
⑤ 기타
단시조에서는 이외에도 몇 가지 다양한 형태가 눈에 띈다. 정형화된 틀에서 다소 이탈하고자 하고픈 욕망 때문인지 시인들의 창작 본능 때문인지 엇박자를 놓는 일에 매우 익숙하다. 단순히 시조의 행을 재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각적인 형태를 고려해 행을 배열하는 경우도 있어 시조의 형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미워할 그 아무도 없는 여기, 우리네 길
얼마큼의 하세월도 흘러가니 무명인데
이 홀로
우뚝 선 시방
그대로가 지존이여
- 김락기, <우리네 길> -
알고 보면 대단할 것 없는 우리네 삶이지만, 그러기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높은 이상일 수 있다. 스스로를 북돋우고 얼싸안고 포효하는 역동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이다. 느슨한 흐름을 종장에 와서 꾹꾹 눌러 마무리 한다.
구절초 핀
구월쯤엔
동학사에 가보아라
파리한 비구니의 삭발한 두상(頭上)으로
하늘이 그곳에 내려와
또 한 송이
꽃피운다.
- 김광순, <하늘이 그곳에 내려와 2> -
김 광순 시인의 <하늘이 그곳에 내려와2>는 마치 화살표 모양으로 행을 배열하여 시각적 효과를 배가한다. 물론 가운데 위치한 중장의 호흡을 느슨하게 처리한 다음, 극적으로 마무리 하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비구니의 두상으로 내려와 꽃을 피운다는 이미지들의 동원이 이채롭다.
자유시라면 그 자유의 영역이 어디까지라고 범위를 제한하기 어렵겠지만 시조는 고유의 정형성을 본질로 정체성을 유지해온 터라 시조 형태의 탐구와 확장 가능성에 대하여 숙고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본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시조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그 장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모색하는 것도 시조의 본령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2) 연시조
연시조는 단시조의 행 배열을 반복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행이 길어지기 때문에 고시조의 형태인 3행 배열을 반복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나 2연으로 종료되는 경우 6행 배열이나 7행 배열 9행 배열을 두 번 반복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참으로 그 산골처녀
색향 짙기도 해라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깊은 산속에
저리도 만만치않은
미인이 있었다니
저 홀로 그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발소리에 놀랐구나
화들짝 깨어나
그토록 반기는 재주
어디서 배웠니
- 이차남, <산국화> -
깊은 산 속에서 색향 짙은 미인을 발견한 시인은 유난히 눈에 띄는 가을 국화꽃이 오히려 자신을 반기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이 작품을 대하며 한 떨기 국화꽃을 떠올리는 데서 나아가 꽃을 만난 반가움에 들떠 즐거워하는 시인의 표정까지 읽어낼 수 있다.
젯상에 올리려고 정성껏 밤을 친다.
지난 날 껴 입었던, 화려하던 내 욕망도
오늘은 쳐 내야하는,
껍질 위에 얹힌다.
껍질을 벗겨내며 속살까지 잘라내며
가슴 속 어둠을 쳐 모가 선 삶을 꿈 꾸지만
세월은 늘 다른 일들을
덧옷처럼 껴 입힌다.
결국 어둠을 치는, 수도승은 되지 못한다
이따금 냉수에다 찌든 가슴만 헹구다가
오늘도 주름진 이마를, 아아
제물로 또 올린다.
- 손수성, <밤 치는 사내> -
손수성 시인은 초장과 중장은 각각 1행으로 유지한 채 종장만 2행 배열의 형태를 취한다. 종장에서 속도를 빨리해 확실하게 종결짓는 방식이다. 중년의 남자가 방 한 곁에서 밤을 깎고 있다. 제상에 올릴 물건이고 보니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껏 껍질을 깎아내면서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던 욕망들마저 쳐내야 한다고 말한다. 단호한 의지를 짧은 종결구로서 표현하고 있다.
세 수 이상 이어지는 연시조에서는 형식에 대한 모색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한 수 한 수 독립적인 소재를 다루기보다 연을 진행하면서 주제를 확장 심화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스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음 좋겠다
눈길을 받기보단 눈길 주는 그런 사람
울 밖의 매화 꽃잎 같은 그런 나였음 좋겠다.
폭풍우 친 다음날 시름에 겨운 이에게
땅 끝을 부여잡고 보란 듯 웃음 짓는
낮은 곳 붉은 채송화 나였으면 좋겠다.
잊었던 정감들도 나를 보면 푸근해져
잠시 서서 명상케 하는 그런 꽃이 되고 싶다
햇살에 간지럼 타는 길섶의 구절초처럼.
바람 부는 긴 겨울밤 그대생각 부풀릴 때
서재의 한켠에서 발등에 툭 떨어지는
지난날 네잎 크로바 나였으면 좋겠다.
- 심응문, <바램> -
시인의 소망이 한편으로는 매우 추상적인 듯 보이지만 지극히 소박하고 잔잔하다. 또한 시인이 상정하고 있는 자기 존재의 위상들은 모두가 상대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타적인 가치로써 가늠하려 한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가혹한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인이 반복해서 떠올리는“좋겠다.”라는 종결어미는 한 수 한 수 독립적인 듯 보이게 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심화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대부분의 시인들이 연시조 형태의 작품들을 수록하였다. 행이 길어지고 시상이 확대될 때는 시조의 고전적인 형태의 차용하는 게 주된 흐름이었으며, 3 ~ 4연을 중심으로 5연 또는 6연까지 구성하는 종종 보인다.
현대시조 시인들은 시조의 형식에 대하여 고민하고 실험하는 자세를 보인다. 같은 시인의 작품이라도 동일한 형태가 아니라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곤 한다. 구를 배열하고 호흡을 조절함에 있어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적확하게 감정을 표현하고자 애를 쓴다.
시조가 정형시라는 인식이 충분히 알려져 있는 터에 시인들이 제각각 자율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인간의 감성도 그에 발맞춰 움직이기 마련인지라 어느 정도의 파격을 수용하고 모색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전해 내려오는 한국 전통의 정형시가가 유일하다 보니 최소한의 규격을 지니는 것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견해가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글자 수나 행 배열의 사소한 부분까지 들먹여 시조의 요건에 맞느니 아니니 논란을 하기보다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과정을 거쳐 시조인들 사이에 어느 정도 적절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3. 현대시조를 관통하는 몇 가지 주제
시조가 읊는 개념에서 읽는 장으로 조금씩 옮아가면서 시조가 포용할 수 있는 범주가 크게 확장되었다. 짧고 단아한 단시조 형태를 비롯하여 얼마든지 감정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연시조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형식적 제약은 거의 무디어져 버렸다. 시조의 형식으로 담아내지 못할 이야기나 심상이 거의 없고 그런 만큼 시인들이 참신한 작품을 내놓으려는 움직임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시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지배를 받는 것인지, 현대시조는 대체로 몇 가지 한정적인 주제 영역을 선호하고 있다.
1) 역사와 유적지 고찰
시조의 고색창연한 이미지는 내용적 측면에서 강하게 각인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시조를 표방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이루고자 하면서도, 대상이 이른바 명승고적이나 역사적 위인들의 역사적 자취에 눈길을 돌리게 되면 저절로 내용에 맞는 그릇을 가져다 받치게 되는가 보다. 고풍스런 어휘, 말투, 느린 호흡과 종결로 독특한 하나의 영역을 구축한다. 어찌 보면 현대 시조의 한 영역에 굳건히 자리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소재로 오인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이전안 시인의 <청해진과 장보고>, 정정배 시인의<당항포 해전>, 여영자 시인의 <맹사성 고택>, 정정조 시인의 <운곡 시비 앞에서>, 박구하 시인의 <북간도>, 이상목 시인의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등의 작품들을 대하며 그러한 단상들을 확장하고 심화시켜 하나의 대상을 심도 있게 천착하는 방법적 묘를 살렸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본다. 기왕에 관심을 기울이고 운을 떼었다면 치열하게 접근하여 일가를 이루려는 모색이 뒷받침되어도 좋겠다는 바람이다.
2) 자연 경관과 기행시조
기행시조는 생활시조의 한 분야로 서경적 표현이 많아서 친근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만큼 시인들의 시심을 자극하는 제재로 등장하곤 한다. 이전안 시인의 <섬진강에 와서>, <월출산 경포대>, 손수성 시인의 <우리들의 해금강>, 고두석 시인의 <해질녘의 탄천>, 김민정 시인의 <지상의 꿈-용문사 겨울은행>, 심석정 시인의 <서운암에 가면> 등의 시조 작품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연루된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밖에도 많은 시인들이 기억에 남는 여행경험이나 탐방 결과를 시조 작품으로 갈무리해 두었다. 지나간 사진첩을 꺼내보 듯 추억을 반추하는 고유한 유산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자와 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경험,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하여 숙고하는 일이 절실하다. 시인만이 알고 있는 곳, 개인사와 얽힌 고유한 감정적 고리들을 나열하는 등 개인적 감상과 인상에 치중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정서가 요구된다.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는 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마는, 풍경도 감상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할 때 작품도 빛나고 소통 가능한 살아있는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계절과 자연물
계절과 자연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많은 시인들이 계절과 자연물로부터 시심을 획득하고 풍요로운 시상을 전개해 나간다. 김상선 시인의 <겨울나무>, <매미>, 이차남 시인의 <봄날의 연가>, <산국화>, <잔설>, 최길하 시인의 <뻐꾸기 소리는>, <연밭에 와서>, 권갑하 시인의 <별>, 김광순 시인의 <고목 앞에서>, <백미-늙은 감나무>, 김민정 시인의 <바다>, <백로 떼 날아오르는>, 이상목 시인의 <부추꽃>, 박구하 시인의 <풍매화>, 심응문 시인의 <아지랑이>, <개나리동산에 올라>, 이정환 시인의 <자목련 산비탈>, 김인자 시인의 <봄비>, <도시의 민들레>, <제비꽃>, 유상용 시인의 <잡초>, <황소>, <물의 기행>, 장청 시인의 <달맞이꽃>, <해바라기>, <지렁이의 노래>, 한선희 시인의 <갈잎 둘>, <갈잎 셋>, 심석정 시인의 <봄 산>, <봄비>, <꽃치자 향기>, 김락기 시인의 <소쩍새 울음소리>, <산에 취하여>, 정정배 시인의 <홍매화>, <일출>, 나순옥 시인의 <낙엽 한 잎>, <번개>, 고두석 시인의 <새벽4> 등등 실로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계절과 자연물은 시인들의 시세계를 점거하고 있다.
각 계절별로, 각각의 자연물별로 작품들을 분류해 비교하면서 작품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 독자의 입장에서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평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작품들 사이의 유대, 시인들 사이의 감정 공유가 가능하도록 관심을 고무시키고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4) 고향 그리고 가족
그 외에도 여러 항목을 설정할 수 있겠으나 특히 고향과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상목 시인의 <아버지의 거울>, <어머니>, 한선희 시인의 <아버지의 배>, 심석정 시인의 <고향>, 정정배 시인의 <어머니>, 나순옥 시인의 <고향> 등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감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인의 연령이 높아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묘사되는 제재가 된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종류의 그리움, 외로움, 서러움, 위로 등등 우리의 가슴속을 휘어잡고 있는 감정의 물줄기들이 시인의 혀끝에서, 펜 끝에서 살아나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정지해 있기보다는 살아서 시대를 호흡하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골들을 재현하는 고향과 가족들이 탄생하기를 염원한다. 이제 대상과 고정관념처럼 연결되는 심상을 딛고 그간 놓치고 지나왔던 감상들을 추슬러 내는 예리한 시선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5) 실험적 접근들
예술에서의 일탈과 파격은 오히려 환영받거나 칭송받는 예가 많다. 시인들이란 창의적 실험적 에너지로 뭉친 사람들이다 보니 시조의 영역에서도 역시 그런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시어나 소재, 주제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감성과 호흡하려는 시도들이 낯설기는 해도 신선하다. IMF나 지하철 참사를 다룬 시인, 오존주의보를 다룬 시인, <시조의 오벨리스크를 누가 세운담> 이라는 제목을 내세운 시인 등 형식과 주제에 구별 없이 모색하고 도모하는 열정이 뜨겁다. 시조 시인들의 일반적이 연령이 다소 높은 게 사실이나 문학을 추구하는 정신은 그와 상관없이 날카롭다. 뾰족하고 독특한 감상을 시조의 형식에 사려 넣을 때, 거칠고 투박하게 던져두기보다는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미덕을 발휘하는 것도 독자와 공감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4. 현대시조의 위상을 다지기 위한 과제
지금까지의 일련의 고찰을 통하여 현대 시조와 시인들의 한 단면을 짚어보았다. 현대 시조는 그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여 여러 면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정형시라는 타이틀이 그렇고 전통시라는 인식이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다수의 시인들이 열정적으로 시작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시조에 대한 애정도 매우 끈끈하다.
먼저 현대 시조의 형식을 고찰함에 있어 단시조의 형태를 정비하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짧은 시 형식을 변형한 들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시조 외부에 시조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항시 직면하게 되는 질문들, 시조가 시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묻는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윤곽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시 장르를 세우는 일도 반드시 논의해야 할 분분이라 사료된다. 특히 단시조 형태의 다양한 변형을 수용해 일련의 합의를 일궈내는 작업은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해 두고 싶다.
현대시조의 주제적 접근에서는 공감대를 염두에 두는 작업에 관심을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자족하기 위해 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시조를 매개로 소통하고 문학적 교류를 이끌어냄으로써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또한 시인들의 맡은 바 역할 일 것이다. 생활 시조로서의 친근감, 보편성과 대중성을 담보하는 배려와 절제가 시조의 영역을 굳건히 하는 밑바탕이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나아가 시조문학의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요청된다. 쉽게 함께 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전달의 용이함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시조인들만이 공유하는 장르가 아니라 남녀노소 공히 인정하고 참여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이 절실하다. 백일장 같은 방식이 있어왔으나, 이벤트성 접근 방식 혹은 대중매체를 이용한 전파 방식 등 새로운 통로를 모색하는 일도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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