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격과 파격에 관한 논쟁의 불씨를 주제로 4월호와 5월호에 걸쳐 비교적 장황하게 언급해 왔다.

이제 필자의 의견을 간략히 제시하면서 이 논쟁에 대한 결말을 짓고자 한다.

 

앞에서도 누누이 언급했듯이 논쟁의 초점은 정격과 파격의 기준을 음수율로 볼 것이냐, 음보율로 볼 것이냐이며, 음보율로 본다면 한 음보의 기준은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있다. 우선, 시조의 율을 칼로 무 자르듯이 글자 수를 헤아려 여기까지는 정격, 나머지는 ‘파격 내지 시조 아님’의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하여 음소 내지 음절의 수를 제한 없이 무한정으로 늘이는 것 또한 불가하니, 한 음보의 기준은 역시 음소적 단위를 헤아려 기준을 세우는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정완영 시인은 1981년 그의 책『시조창작법』에서 작품의 예를 들어 가며 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적이 있는바 필자도 그 기준을 약간 첨언하여 수용하고자 한다. 즉 초장 34(9자까지 가능), 3(4)4(9자까지 가능), 중장 34(9자까지 가능), 3(4)4(9자까지 가능), 종장 3(不動), 5(7자까지 가능), 4(5자까지 가능), 3(4자까지 가능)과 같다. 지면 관계상 더 세세히 논의를 전개할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하며 줄이거니와, 요컨대 너무 글자 수를 헤아려 교착어인 우리말의 시조를 고립어인 중국어의 절구나 율시, 또는 어순(語順)과 첨가어란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근본은 한자어인 일본의 단가나 하이쿠처럼 융통성이 전혀 없는 정형시로 만들어 스스로 구속되려 함도 문제가 있지마는, 자유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시조의 기본 호흡까지 무시하려 드는 것은 더 문제라 생각한다. 시조의 기본 호흡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시인들 자신이 익히 알고 있으므로, 이를 준수하는 것이 시조를 쓰는 우리들의 마땅한 책무라 생각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5월호의 작품을 본다. 발표된 작품 10수 가운데서 음수율의 잣대로 ‘정격’을 재어본다면 이에 딱 맞는 작품은 단 한 수밖에 없으며, 음보율의 잣대로 잰다면 맞지 않는 작품이 딱 한 수 있었음을 적시(摘示)한다. 이는 현재의 우리 시조단에서 정격 시조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대하여 시인들이 작품을 통하여 간접적인 해답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멀리 산을 밀어 낸 고향 같은 갑향리에 와서/푸른 하늘 향해 풀어놓은 품속으로/밤마다 별이 내린다는 한 그림 속에 들다//봄빛이 돋아나는 작은 돌문 앞에/새긴 이름 쓸어 보면 쑥물처럼 묻어나는/아기 방 자장가로 듣던 파도 소리 들리고//젖은 꿈길마다 뒤척이던 바다로 나가/분노를 밀어낸 속 깊은 울음이 된/바람의 그리운 섬 하나 등대의 안부를 묻다.//

 

- 김세환,「등대의 안부를 묻다」전문

 

갑향리는 전라도 담양 땅에 있는 마을로서, 얼마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의 고향으로 지상에 널리 소개된 동네이기도 하다. 멀리 소두산을 그림처럼 업고 드넓은 평야가 아름다운 갑향리, 시인과의 관계가 각별하던 분이 타계하고 함께 자라던 그 분의 혈육이 그의 어머니를 모셔놓고 날마다 그리워하며 그림으로 나타낸 표상(表象)이 ‘등대’인 것 같다. 갑향리는 지금도 별자리를 관측하는 사람들이 다녀갈 정도로 하늘이 맑은 동네이며, 시인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분이 살았던 곳이었음에 고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갑향리를 다시 찾아간 시인은 ‘봄빛이 돋아나는 작은 돌문 앞에’ 서서, 이제는 이승을 떠나신 그 분의 이름을 손으로 쓸고 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분, 파도 소리처럼 밀려와 ‘쑥물처럼 묻어나는’ 그 분의 생전의 삶의 모습들을 비롯하여, ‘아기 방 자장가’ 소리도 함께 듣고 있다. 시인은 이제 그림 속의 등대를 바라보며 그 분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를 끝맺는다. 역사를 초월하여 생사의 가름 길은 애달픈 것이고, 그것이 자신과의 깊은 관계에 놓일수록 슬픔의 감정은 더욱 깊은 것이다. 타계한 그 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갑향리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오버랩 되면서 떠나신 분을 그리는 곡진한 정이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다.

/누군들 제자리서 끝내고 싶지 않으랴/어느 날 태양계서 가볍게 사라져 간/씹다가 버린 껌 같은/비정규직/스파크(spark) 같은//

 

- 우아지,「명왕성」전문

 

명왕성은 1930년에 발견되어 태양계에서 아홉 번째의 행성으로 등록되었다가 2006년부터 국제천문연맹에 의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어, 지금은 공식 명칭이 134340 풀루토로 불리는 떠돌이별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태양 주위의 행성을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 외우며 공부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섭섭하게도 그 끝의 ‘명’을 지워야 할 판이다. 명왕성이 ‘어느 날 태양계서 가볍게 사라져 간’ 이 사실을 ‘씹다가 버린 껌 같은’, 특히 비정규직 스파크(spark) 같은‘ 현상으로 파악한 것은 시인의 탁견(卓見)이다. 단수 시조의 본령인 ‘맥 짚기’에 성공한 작품이다.

/저렇듯이 대나무가/공손히 하는 인사/지나는 바람에도/허리를 굽실굽실/환하다/대통 속에서/피어나는 웃음 있다//

 

- 문제완,「대숲 시편」(1/2)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보면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는 소리를 지니지 않고’라 하였다. 이는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는 것’을 말함이니 ‘대’의 풍모가 선비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대’는 예로부터 4군자의 하나로 선비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몸을 굽히는 대숲의 모습에서 시인은 겸손의 미덕을 읽고 있다. 겸손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 꼬이지 않고 ‘대통 속’처럼 확 트인 사고(思考), 그리고 환하게 피어나는 웃음이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둘째 수 종장에서 ‘소소(笑笑)히 일어서는 댓잎’은 웃을 소자(笑字)의 상형(象形)에서 ‘대’가 허리 굽혀 웃는 형상을 발견한 것도 재미있다.

/외딴 들녘 푸나무들/군자라면 어떠할까/뿌리 내린 곳곳마다/비록 누추해도/옹색한 빈자리 골라/초당 채들 지었네.//때때로 바람결에/가갸거겨 익히고/남이야 알건 말건/스스로 꽃 피운 채/멀리서 찾아온 친구/저리 기뻐 반기니!//

 

- 지종찬,「군자」전문

 

사람이 돌아보아 주지 않는 외진 들녘에 사는 푸나무들을 군자에 비견한 독특한 발상의 작품이다. 풀꽃들은, 물주고 김매어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피어나지 않아도 스스로 ‘옹색한 빈자리 골라 초당 채들 지었’다고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가는 풍모를 논어의 학이(學而)편 첫 문장을 인용하여 군자의 도, 학문의 길에 결부 시키고 있다. 초장의 ‘때때로 바람결에 가갸거겨 익히고’는 ‘學而時習之不亦說乎’를, 중장의 ‘남이야 알건 말건 스스로 꽃 피운 채’는 人不知不慍不亦君子乎를, 종장의 ‘멀리서 찾아온 친구 저리 기뻐 반기니!’는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를 시로 읊은 것이다. 그렇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고 찾아주면 언제라도 향을 치며 반기는 풀꽃의 삶이야말로 사람에 비긴다면 진정한 군자의 풍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풀꽃의 삶의 모습에서 군자의 모습을 발견한 눈이 예리하다.

잎새 죄 내려놓고 풍장에 드는 나무/속살 비운 자리마다 네모 세모 집을 짓고/옥탑방 다락방까지 아낌없이 내 준다//초롱이끼 불 밝히고 수정난풀 꽃 피운다/딱따구리 건넛방엔 새둥지 튼 박새 부부/산 빛도 나누며 사는 한 지붕 밑 이웃이다//천년을 쌓은 탑이맺힌 매듭 풀어낸다/제 살 저며 살찐 흙집 산 벚꽃 빛 화사한데/가슴 골 빠개 젖히고 꽃씨 하나 심는다.//

 

- 김봉집,「속살이 붉은 나무」전문

 

숲속의 큰 고사목을 바라보며, ‘자연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대 주제를 무리 없이 시적으로 잘 승화한, 감칠맛 나는 작품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죽는 모습은 가히 ‘풍장’에 들었다 할 만하다. 비바람에게 속살을 다 내어주고 텅 빈 그 자리에는 딱따구리, 박새 부부를 비롯한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초롱 이끼, 수정난풀도 뿌리 내려 꽃을 피운다. 모두가 ‘산 빛도 나누며 사는 한 지붕 밑 이웃이다.’ 세 수의 작품을 통하여 시인은 삼라만상의 생멸(生滅)의 법칙을 아름답게 시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설상환의「지족」, 류희걸의「조춘」, 김원태의「따뜻한 손」, 이난숙의「순천만, 펼치다」, 조용상의「봄의 미소」등을 언급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