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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7 23:46
다부동에서 쓰는 편지 /리강룡
 글쓴이 : (사)시진회
조회 : 456  

다부동에서 쓰는 편지

                     리강룡 

         

  1. 전적비   

 

 

불타는 가을산을 지켜 선 

한 채의 전차(戰車) 위에 

하늘을 돌리는 헬리콥터처럼 

맴도는 잠자리떼

아픈 몸 추스르지 못하는 

시간들을 일으킵니다 

 

청동의 또는 까만 대리석의 

꽃보다 아름다운 대안(對岸)의 얼굴들이 

선연히 다시 살아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대 뜨거운 언어 

지금 비록 멀리 있으나 

그 소리 오히려 이 땅에 불씨로 남아 

우리네 무딘 심장에 모닥불을 지핍니다 

 

여기는 물러설 곳 없는 자유의 땅끝 마을이다 

넘치는 봇물이 되어 귓가에 쏟아지는 

지축을 흔들던 함성을 온 몸으로 받습니다 

 

바람없는 가을 

도열한 깃발 앞에 서면 

도도한 자유의, 역사의 강물 소리 듣습니다

그 여름 꽃빛 노을보다 곱게 타던 목숨의  

 

   

 

  2. 산을 오르며   

 

 

바위 하나도 무심히 앉은 것 아닙니다 

구르고 깨어지며 몸으로 써 둔 비명(碑銘)

피 묻은 한 장 역사를 증언하는 빗돌입니다 

 

그저 지천으로 피는 들국이 아닙니다 

봉축도 묘석(墓石)도 깊이 감춘 이 언덕에 

가녀린 심지를 올려 달아놓은 등()입니다 

 

저기 저 풀섶 아래  녹슬어 누운 철모 하나

사상도 이념도 이제 삭아질 세월인데

오늘도 마른 억샛잎

서걱서걱 칼을 갑니다

 

그래 이 낯설은 경상도 산동네까지

     이름도 성도 없이 그대 어찌 왔던가

지금은 끝없는 뉘우침에 흐느끼고나 있는가

      

      

  3. 피의 능선에서      

 

한 밤새 아홉 번을 뺏고 또 빼앗기며

한사코 무릎으로 기어올랐을 이 능선은

섣불리 발 들이지 못할

우리들의 성소(聖所)일지니

 

나도 병사(兵士)가 되어

낮은 포복(匍匐)으로 엎드리면

푸나무 이파리에 묻은 살내음, 피내음

누우면 한가한 가을 구름에

얼비치는 그대 웃음

 

보독솔 양지에 앉아 이름 외쳐 부르면

귓가를 간질이는 결 없는 실바람이

' 조국은 영원하리라......'

물무늬 저어 돌아옵니다

 

, 여름 산계(山鷄) 울음

녹여 피운 향() 그늘에

오려 송편 신도주(新稻酒)를 살과 피라 이름하면

올려 본 구만 리 거리 글썽이는 옥빛 바다

 

산을 내리며 타는 단풍

가슴에도 물이 들면

탄우(彈雨) 맞은 자리마다  꽃잎은 또 벙그는데

빈 산을 휘모는 바람 저 뿌리를 잘라야지

 

       

  4. 산을 내려오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사(決死)의 이 전지(戰地)에도

근심 없는 포장도로 홀로

적막(寂寞)의 산을 넘습니다

피아간(彼我間) 소총수들의 이름 묻힌 고개를

 

바람이 차가울수록 선홍빛으로 불타는

()이 놀던 유학산(遊鶴山)

팔부능선 그쯤에서

이제 막 청학(靑鶴) 빛 구름 몇 점

비상(飛翔) 준비를 합니다

 

얼어붙은 반세기의

그 숱한 고지(高地)를 넘어

우리가 가늠하는 새벽마차의 기침 소리는 

지금쯤 저기 저쯤에 오고 있는 것일까 

 

문득 저만치 나가앉은 따비밭에

서로의 어깨 기대어 둘러선 수숫단들

묵언(默言)의 강강수월래가 이 언덕을 돌립니다

 

저기 저 산동네의 적요(寂寥)

찰방찰방 짚어 가는

한 줄기 맑은 눈물 같은 의미의 실개천의

투명한 저 자유의 몸짓은 피를 먹고 사는가

마른 억새 꽃대 끝 잘 영근 씨알에게

청옥빛 하늘을 닮은 풀벌레의 시린 목청에

물으며 또 물어보며 산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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