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집 

**이름을 안 쓰고 작품만 심사위원들께 보내어 작품평을 부탁했다. 그리고 최우수 작품평을 월하시조문학상으로 선정했다. 선정하고 보니 월하문학상 수상자는 시조이론가로서도 매회 발표했고 시와 캘리그라피로 시조문학 앞면을 장식 해준 작가임이 밝혀졌다. **

2023. 연말 작품상 심사평

힘찬 서정으로 기발한 서정의 묘미

현대 시조에서 요구하는 함축성과 상징성은 물론 시어의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창출한 이미지와 서정성은 매우 신선해야 한다. 시인의 사고는 구태를 벗어난 현대 시조에 새로운 장을 여는 현대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시조를 맛깔나게 만들고 매력을 느끼게 한다. 시조의 필수 요소가 회화적이고 형식적이어서 의미적 요소가 필요한데 여기에 상상력이 동원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예술의 본질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그 역할이라면 시조는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시조가 언어예술로 사람의 생각이 밖으로 나와 우리네 삶을 기쁘고 신나게 하는 사유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시조가 정형성을 요구하는 언어 예술로 형식을 완벽하게 지키면서 내용은 현대적 시각의 표현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면밀히 검토하여 2023년도 한국시조 문학협회가 수여할 각종 문학상의 심사 대상에 올라온 작품들은 우리 시조 문학 시조 단을 밝히는 최량의 작품들이 상당수였다. 견고한 사유와 감각을 담아내고 다양한 미학적 완숙도와 시어를 충실하게 형상화하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작품마다 내재한 상상의 품과 개성을 부여하는 유연성의 견지와 스케일의 밀도가 잘 어우러진 결실이라 하겠다. 앞으로 우리 시조 문학상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고취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각 작품의 형상화와 주제 의식의 성취에, 완결성과 가능성을 비롯한 개성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되는 사례들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2023년도 월하 시조 문학상에는『대금 운(韻)』을, 시조 문학상에『군자란 부부』와 작품상에『아름다운 길』,『그대 –어머님 사진첩에서』,『어머니』,『첫눈』,『옥정호수』, 『풍란의 노래』, 등 여섯 편을 높이 뽑아 들었다.

월하 시조 문학상의『대금 운(韻)』에서 역시 시조의 백미는 단시조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재와 주지가 되는 것은 소리의 떨림과 구슬픔을 흥청거리는 가락으로 여과시킨 구두점의 효용 기능이다. 그림자 비추지 않는 구풍 연지 누각을 오르는 다리 밑에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와 종신을 감싼 연꽃무늬 에밀레종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온천지에 알린다. 적막한 속에서 구슬픈 대금 소리를 무영탑의 적막과 에밀레종 소리의 구슬픔을 환치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중장 및 종장인 오동잎 한 장과 적막도 찾아 쫓겨 가는 구름 한 장에서 “오동잎 한 장과 구름 한 장”을 시어로 차용한 것이 이 작품의 높고 낮음에 울리는 공양 된 아기의 울음을 중생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자비로 은유하고 있다. 모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나서 참으로 행복한 한편이다. 

시조 문학상에 선정된『군자란 부부』는 시적 무대공간의 소재가 시제처럼 군자란과 부부로 지배적 내용을 기호화하고 그 생장에 감각적 대상인 외부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감명의 자극을 받게 한다. 수선화과에 속한 군자란이 기화 원예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향기로운 꽃으로 고귀한 자태와 우아한 모습은 고결하기까지 하다. 이름이 난의 뿌리를 닮아서 군자란으로 지칭하여 부부간의 금실을 은유한다. 부부란 꽃길 같은 행복을 꿈꾸며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늙고 병들면 자식도 필요 없으며 오로지 곁에 있어 줄 존재는 아내와 남편뿐이다. 이 시편에서 부부가 군자란을 사랑스럽게 거두고 있는 언어로 그린 그림의 모습이 선하며 아무리 부부라도 돌아누우면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읊조린다.

작품상의 첫째 작품『아름다운 길』은 인간이 살아오면서 고락이 동반하는 삶을 노을에 빗대어 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들이 한 참 바쁘고 힘겹게 살다 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때로는 기대감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때로는 소박하게 살아가면서도 기쁨과 희망의 빛을 보고 어떤 때는 슬픔과 절망의 골짜기를 한없이 헤매기도 한다. 화자는 기쁜 일과 아픔들은 강물에 흘러서 보내고 소박하게 사는 길이 아름다운 길이라며 삶에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둘째 작품『그대』는 “어머님 사진첩에서”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세월이 흐른 뒤 홀로 앉아서 그윽한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찍은 달랑 한 장 남긴 어머님의 흑백 사진이다. 어머니의 “가물한 청상의 기억 부질없는 연(緣)이여” 라 함은 미수(米壽)에 홀로 앉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의 힘으로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온 주름진 사진 속 가물가물한 어머니다. 어머니는 분명 과거의 존재이므로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것은 사진첩에서 과거의 회상을 의미한다. 화자의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한 사랑의 믿음이 내재한 내용에 함축 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셋째 작품 『설악동 겨울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소재가 시제처럼 결빙한 음계를 타고 있는 어스름한 겨울의 설악동이다. 공릉 능선을 어깨에 메고 겨울 산야에 쌓인 어두운 설악동이 품은 고요의 청정함은 무섭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가 겹겹이 쌓인 동시에 현재 삶의 모습이다. 원래 서정시의 요체는 축약과 긴축으로 그것을 통하여 의미 맥락의 탄력감을 빚어내는 데 있다.

심사위원들은 형상화 역량과 주제 의식의 성취에서 올곧은 개념이 녹아있는 이 작품을 주목하였다. 대체로 견고한 사유와 감각을 글로써 담은 다양하고도 원숙한 미학적 언어를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

완결성과 개성의 진정성이 두루 담긴 것이 판단되어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넷째 작품『어머니』역시 역풍이 불어와도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돛을 달아주고, 어머니는 수많은 선생에 필적하며, 자식에게 천국은 어머니의 발아래에 있음이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위로와 그리움의 향을 뿌리고 무한한 사모와 감격을 갖는다. 그래서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온몸에 짜릿하게 흐르는 견딜 수 없는 정과 뜨거운 전율을 느낀다. 다행히 화자는 구순이 된 노모를 뵐 수 있고 자식에 대한 올바른 길의 등불을 밝히고 있으나 언젠가는 이승을 떠날 때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기를 염원하는 사모곡이다.

 다섯째 작품『첫눈』은 생자필멸의 정서가 담긴 이 시조가 단형 시조의 간결한 형식과 정서의 긴장감을 첫눈에서 순결을 찾아내게 한다. 자연의 현상에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고, 삶의 모습을 강렬한 형상으로 동반한다. 그래서 시인은 첫눈이 은유로 찾아오며 천사 같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순결을 주면서 사라지는 마침표를 찍는다고 노래한다. 하얗게 흩날리는 첫눈의 눈발이 지독히 차분하면서 온화한 느낌이 순결로 오래도록 시인의 가슴에 쌓여 박힌다.

 여섯째 작품『풍란의 노래』는 내재율의 의미를 감상하기에 앞서『풍란의 노래』라는 제재가 특이한 인상으로 시선을 끌게 한다. 풍란은 우리의 일상에서 휩쓸리는 단순한 바람으로 인식되지만 삶을 불규칙하게 뒤바꿔 버릴 수 있는 큰 힘을 지닌다. 아주 거대한 실체의 시조는 억양의 침묵을 넘어선 투사로 율격과 음률에 파장의 뚜렷한 의도를 이입시킨다. 화자가 일상에서 행한 모든 행위의 바탕에는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 의식이 깔려있다. 변하지 않는 신념 또한 뚜렷이 자리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이 작품의 종장에서 “순백의 화음/ 어진 가락 펼친다.” 로 율격과 음률에 파장을 증명하고 있다.

 일곱째 작품 『화계 장터』는 세수로 된 연시조로 첫수에 시제의 화계 장터가 남도 대교를 잇는 교통 요충지에 자리함을 그렸고, 둘째 수에서 팝과 오페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에 장르와 같이 유행가 가사처럼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위치를 그렸으며, 셋째 수에서는 화계장터의 인심을 절묘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남도 사람들의 인심을 우려낸 재첩국과 파전 도토리묵에 시장기를 달래가며 박장대소하는 푸짐한 인심을 시조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여덟째 작품『그것이 가을이더라』는 ‘디카 시조’ 이다. 사진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는 화자는 시인으로서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한 끼의 끼니처럼 생활화 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보잘 것 없는 떨어진 잎 하나도 거기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가을이라는 무형물에 희망을 창출해 낸 작가의 긍정적 인생관이 묻어난 결과물이다. 이 작품에서 시를 읽는 것도 화자에게 끼니를 때우는 일과 진배없다.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에도 시상(詩想)이 전개되고, 사색하는 계절인 가을을 맞닥트린 시인은 영성 회복의 의지를 살피도록 유도해 낸다. 시인의 잠재의식을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하여 시를 읽는 “그것이 가을이더라”며 환유로 의도를 숨기고 있는 작품이다. 

각 문학상 심사 위원들은 이번 수상자들이 우리 시조 문학 시조 단에 힘이 되어줄 원군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음 문학상에는 더욱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믿는다. 수상을 거듭 축하드리고 수상을 계기로 더한층 견고한 서정과 인식으로 한국 시조의 크나큰 진경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수상작 작가들의 힘찬 정진을 재삼 당부를 드리면서 건필을 소망해 본다.

한국 시조문학 협회 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사위원 : 이정자, 김석철, 김태자, 송귀영(대표 집필) 

**『대금 운(韻)』(신웅순), 『군자란 부부』(박영숙),『아름다운 길』(임만규), 『설악동 겨울 이야기』(김인자),『풍란의 노래』(이남식), 『그대 –어머님 사진첩에서』(김신아),『그것이 가을이더라』(이서연), 『첫눈』(구충회),『화계장터』(왕나경)『어머니』(정용현) **